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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Mar 25. 2019

415일만에 올리는 새 글

가장 행복했던 순간

문득 브런치로 돌아왔다. 로그인을 하고 난 다음에야 '본 계정은 휴면 계정으로 전환 예정이오니 휴면 처리가 안 되려면 반드시 로그인하십사' 하는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글이 2018년 2월 4일에 올린 영화 <염력> 글이다. 2018년 2월 4일. 지금은 2019년 3월 25일. 12시가 지났으니까 오늘 날짜로 따지면 415일 만에 올리는 새 글.


대충 퉁쳐서 1년 2개월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적지는 않은 일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생각보다 가깝지는 않았지만 문득 돌아보니 생각보다 가까웠었던 사람을 저 멀리 떠나보냈고, 슬픔을 유지하고 있을 겨를도 없이 새로운 일로 뛰어들었다.(사실 뛰어들었다기보다는 밀려 들어갔다가 맞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에 이제 겨우 적응하려던 찰나 짧은 연애를 시작했고, 차인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끊이지 않는 일의 바다에서 주말도 없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허우적이 끝날 때쯤 문득 한국이 싫어졌고, 그래서 이민을 가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면 얼마나 좋으련만, 2주간의 국외 도피 생활 끝에 다시 비슷한 일의 세계로 밀려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415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의무 교육이란 것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일들을 꽤 많이 하며 살 수 있었고, 지금 돈을 받고 하는 일 역시 그런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지난 415일간 저 명제를 피부로 느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기에는 여유가 없었고, 내가 숨 쉬는 시간의 8할 이상을 일에 쏟아부었다. 행복감이고 나발이고 이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쯤, 브런치 시작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게 꼭 415일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인생을 통틀어 너는 언제 행복했니. 란 질문을 받는다면, 다행스럽게도 준비된 답변이 존재한다. 내 기준에서 가장 글을 열심히 썼던 그때, 영화 한 편 보고 글을 쓰던 것이 연습이자 낙이었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행복한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면, 내 인생은 되돌릴 수 없이 피폐해졌을지도 모른다. 여러분 누누이 얘기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더없이 불행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지도 모릅니다.


415일 만에 브런치로 돌아왔다. 가장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을 거쳐,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수단으로 내 자신을 돌려놓는 데 기어코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415일 전의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때보다는 얘기할 거리들이 조금 더 생겼고, 생각도 조금 더 늘었다. 제로 베이스가 아닌, 약간의 베이스를 토대로 무언가를 조금 더 쌓아 올릴 수 있는 여력도 생겼다. 브런치를 쉬는 시간 동안의 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면 선물일 게다.


조금씩, 예전의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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