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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Sep 04. 2022

코로나 확진 후기

이쯤 되면 지금까지 버텨온게 다행인지, 지금에서야 걸린게 불행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용케도 이번 전염병은 피해간다 싶었는데, 결국 몇 차에 걸친 파고를 꾸준히 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집에 있으니 할 일은 없고, 시간만 죽이느니 뭐라도 기록해보자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실 이 글은, 코로나 확진 후기라기 보다는 감정 토로에 가까운 글이다.


-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코로나에 걸린 자들은 '코로나인가?'라는 의문이 아닌 '와 코로나다!'라는 확신이 든다는 이야기. 다행히도 그 정도의 아픔을 겪지는 않았다. 첫날 있었던 몸살기 역시 곧장 사라졌다. 목의 붓기와 계속 끼이는 가래가 조금 불편하긴 한데, 그렇다고 다른 몸살에 대비해 압도적으로 아프지는 않다. 참으로 다행인 부분이다.


- 앞선 2년동안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에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가지지는 못했다. 코로나 확진 이후 내가 받은 것은 보건소의 전화 한 통과 확진자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페이지 링크, 구청에서 지급하는 구호물품 키트였다. 그나마도 키트는 구청별 재량이라 받지 못하는 확진자들이 많다고 한다. 구호물품 키트를 제외하면, 격리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코로나 확진 후 격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부분은 자율의 여부이다. 자유와 자율의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의 원칙'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스스로 세운 원칙 하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자율이고, 원칙 없이 자연 그 상태로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 부른다. 확진자들은 '바이러스 전파 차단'이라는 목적 하에 7일동안 집이나 숙소에 감금이 된 채 생활한다. 본인의 아픔이 아닌 타인의 위협이 존재함을 상정한다는 원칙 하에 격리를 진행하는 것이다.


- 감염병예방법에 의거해 강제적으로 격리가 진행되는 부분인데, 왜 자율을 들먹이냐는 얘기도 있을 수 있다. 실제 격리가 되어보니 관리란 온전히 개인의 의지에 의존하게끔 만드는 제도였다. 예전에 얼핏 이야기를 들었던 동선 및 자가체크 관련 어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나갈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혼란을 방지하는 것은 자율성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의지였다.


- 막상 격리를 당해보니 이 자율성을 지켜나가는 국민들이 참으로 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 노선 변경(한때 '위드 코로나'라 불리던 그 노선)과 함께 직장인은 연차 소진을, 자영업자는 일주일 간의 휴업을 격리의 댓가로 지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격리를 요구할 뿐, 원칙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지급하지 않는다. 일부 지자체에서 일정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모든 이들에게 지급되는 댓가는 아니다. '바이러스 전파 차단'이라는 같은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모두에게 그에 대한 보상이 돌아가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 자율성을 지켜나가는 국민들에게 새삼 경외심을 느꼈다.


- 집에만 있으니 통 할 일이 없었다.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한 순간에 끊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미뤄뒀던 영화를 보고 전시되어 있던 책을 집어들었다. 핸드폰을 최대한 멀리해보자는 것이 격리 생활의 가장 큰 철칙 중 하나였다. 어차피 격리가 끝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핸드폰은 울려댈 예정이었기에,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한 핸드폰은 방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 책장을 장식하고 있던 책들을 한 권씩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책을 얼마나 멀리 했는지를 깨달았다. 실은 종이로 된 활자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오랜만이기도 했다. 사는게 바쁘니 그러려니 했다라고 하기에는 꽤나 부끄러운 자각이었다. 다행히도 코로나 이후로도 꾸준히 독서할 의지가 생겼으니, 어쩌면 자가격리의 덕을 조금이라도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자가격리의 가장 큰 효용 중 하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마련했다는 점일 것이다. 의례적으로 오는 업무 카톡 이외에는, 생각보다 스마트폰이 울릴 일이 많지 않았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어디로도 떠나지 않은 채 남아있던 시간동안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책을 읽으며 떠오른 감상들을 스스로 정리하며 보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싶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휴식당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마냥 나쁘지는 않은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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