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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Jan 07. 2023

버티는 삶에 관하여

2022년이 지나갔다. 잘 지나갔는지 잘 못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나는 갔다. 매년 12월과 1월 사이에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성과나 노력을 배재한 채 그냥 어쨌든 지나는 갔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일.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시기가 다가왔다.


‘지나갔다’는 단어는 기묘한 단어다. 누군가는 지나갔음에 안도를 하고, 누군가는 지나갔음에 서글퍼하며, 누군가는 지나갔음에 아쉬워한다.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 한국어가 지닌 맛인가 싶으면서도 생각해보면 ‘지나갔다’라는 단어 이외에는 이 정도의 너비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단어가 또 있나 싶다.


2022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생각해봤다. 몇 번의 인연들이 지나갔고, 몇 번의 기회가 지나갔으며, 몇 번의 힘든 시간이 지나갔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냐 묻는다면 그랬다 대답하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어찌됐든 그 모든 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노력은 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버텨낸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가치가 되었다.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던 20대가 지나가고, 나를 둘러싼 세계는 점점 벽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바닥은 얇은 얼음이 낀 계곡으로 변한다. 한 발만 잘 못 내디뎌도 나를 지키던 바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버텨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결국 버텨내다보면 무탈히 지나가는 것은 내가 속한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큰 가치가 된다. <‘지나간다’는 말 안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웅크리고 있는지. 세상은 모르는 그 애의 최선을 나는 안다>라는 문장은 그래서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잘 지나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욱 발버둥을 쳐야한다. 그리고 그 발버둥은 오롯이 나만이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다. ‘잘 지나갔다’는 얘기는 그제서야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그마한 보상 같은 존재다. 견디고 버티며 존재해야 겨우 잘 지나갈 수 있다는 것. 서글프면서도 받아들여야 할 차가운 현실이다.


세 번의 큰 이별을 했다. 두 번은 사람과, 한 번은 일과. 잘 지나왔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끝내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무너져야 했고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올리는데는 몇 갑절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니, 걸리고 있다. 새해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희망이 아니다. 무너진 자신을 수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안 TV 속에서 해는 그 어떤 존재보다 밝게 뜨고 있었다.


‘새해는 다를거야’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12월 31일 23시 59분에서 1월 1일 00시 00분으로 시계가 돌아간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올해도 그랬다. 여전히 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똑같이 존재하고 있었고, 스마트폰 안에서는 관습적이라 얘기할 수 밖에 없을 새해 인사가 오고 갔다. 새해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기계적으로 보내며 생각했다. 바보들아 세상은 변하지 않아. 단지 시간이 흐르고 순간이 지나갈 뿐인거야.


2023년 12월 31일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또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버텨나갔던 시간들을 반추하고 있겠지. 3년 전이 그랬듯, 2년 전이 그랬듯, 1년 전이 그랬듯, 그리고 올해가 그랬듯. 그냥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다시 내가 있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올 한 해는 꽤나 성공한 해가 되지 않을까.


어떤 일에도 애써 버텨내는 2023년이 되시기를. 그래서 시간이 흘렀을 때 잘 지나갔다며 자평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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