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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Feb 19. 2017

포토샵 하시나요

사진은 반제품

무슨 도구든, 기계든 완벽한 결과물을 내어 주지는 않는다. 다루는 사람 탓이기도 하고 도구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조금씩은 어긋난 구석이 늘 함께 달려 나온다.


머릿속에 갖고 있는 의도와 실제 손에 쥐어진 결과 사이의 오차를 잘 손질해 내것으로 만들며 살아가는게 삶이기도 하다. 사진도 그래서 결국 반제품 아닐지.


조금 비약 하자면 '원본'이라는 건 어쩌면 원래 없는 것 같다. 내 (부정확한)시지각을 통해 머릿속에 맺힌 상을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줄 매체는 없을테니.


카메라가 담아낸 이미지는 내가 본(기억하는) 장면, 혹은 내가 기대했던 장면에서 조금 어긋난 어떤 지점에 가있는 경우가 많다. 찍는 족족 다 마음에 쏙 드는 카메라를 가졌다면 그것도 큰 복이겠다. 실제로 아주 가끔씩은 후반 작업을 생략해도 충분한 사진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무보정 원본'이라며 특별 대접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진은 촬영자가 의도한 바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촬영이 대략 절반, 그 이후 현상(보정) 및 인화 프로세스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 한다. 그래서 조립이나 설치 과정이 필요한 반제품에 가깝다는 얘기다.


필름 사진에서는 현상develop 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디지털에 와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리터칭retouching 내지 보정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서 어쩐지 촬영본에 무언가 조작을 가하는 것 같은 인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디지털의 작업 역시 develop을 써야 하지 않나 싶다. 널리 쓰이는 사진 작업 도구인 라이트룸Lightroom을 보면 develop 용어를 메뉴 명칭으로 쓰고 있기도 하다.


전시 기간 동안 현장에서 "포토샵 하셨어요?" 하는 질문을 무척 자주 받았다. 걸려 있는 사진이 대부분 흐릿하고 흔들린 것들이니 이걸 원래 이렇게 촬영 했는지, 포토샵으로 가공했는지가 가장 궁금했을 것임은 충분히 이해한다. 왼쪽이 촬영본, 오른쪽이 최종 인화본이다. (이후 동일)


사진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은 인화나 게시를 고려한 미세한 색감 조정 정도를 했고 장면 자체에 대한 블러 처리는 없었다. 촬영 기법 자체의 특성상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는 경우가 많아 카메라 내부 먼지가 이미지에 찍혀 나오기에 잡티를 지우는 일을 사실 가장 많이 했다.


인화소에서는 내 사진을 화면에서 보는 것에 최대한 근접한 인화물을 내기 위한 추가 조정을 거친 최종본을 갖고 있을 것이다. '원본'은 대체 무엇인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사진의 경우는 빨간 테일램프 보다는 전체적인 가을 정취가 조금은 더 느껴지도록 하는 선에서 컬러 조정을 했고 촬영 기종이 오래된 것이라 노이즈가 많아 제거하다보니 사진이 전반적으로 조금 더 소프트해졌다.


포토샵 하셨어요? 하는 질문에는 이런 식의 설명으로 간략히 답했다.

 


여러 차례 비슷한 답변을 계속하다보니 왜 이런 질문이 반복될까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이 사진이 원본인가' 였던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고, 누구나 찍은 사진을 간단히 손질해 SNS에 게시하는 일을 일상처럼 하면서도 여전히 전시장에 걸린 사진에 대해서는 순결(?)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는 않나 싶기도 하다.


"전시장에 걸려있는, 지금 눈 앞에 걸려있는 그게 원본입니다. 이미지 작법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배제하고 보고 계신 장면 그대로 자유롭게 감상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중히 말하고 싶었지만. 조근 조근 포토샵 운운하는 설명을 해드리는 게 당시로서는 가장 정중한 것 같았다. 포토샵 했는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것도 사진 감상법의 일종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운 부분이다.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나는 행운(?)의 순간에 더 생산적인 얘깃거리가 많았을텐데. 장면 자체의 의도나 뒷 이야기라던지 구도나 색감 등 사진적 요소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질문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결국 내 사진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뭔가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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