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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jjung Aug 06. 2024

흔종의 울림

점과 실타래

선왕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흔종하러 갑니다.” 흔종이란 종을 새로 주조하면 소를 죽여서 목에서 나오는 피를 종에 바르는 의식입니다. 소는 제물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소가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렸던가 봅니다. 임금이 “그 소 놓아주어라”라고 합니다. 신하가 “그렇다면 흔종을 폐지할까요?”라고 묻자, 임금이 대답했습니다. “흔종을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 제를 지내라.”


이 소문을 확인한 신하가 임금에게 물었습니다. “왜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하셨습니까?” 임금은 죄 없이 벌벌 떨며 사지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바꾸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하는 다시 묻습니다. “그럼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양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바꾼 인색함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신영복 - 담론 中


하지만 왜일까? 소의 눈물이 더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양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우리는 때로 보이는 것만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외면한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비극이 아닐까.

자본주의의 차가운 손길이 우리의 관계를 점과 점으로 만들어간다. 얼굴 없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들 사이의 단순한 교환. 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관계의 모습일까?

소문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간다. 귓가에 속삭이는 말들, 그것을 진실이라 믿고 남을 판단하는 우리의 모습. 수오지심(羞惡之心), 그 고귀한 부끄러움의 감정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만남, 관계, 인연. 이 세 단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짧은 만남 속에서도, 소와 양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한 연민과 이해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 될 테니.

우리의 삶이 단순한 점들의 나열이 아닌, 서로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되기를.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연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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