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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비 Mar 27. 2018

그녀의핸드폰을 보다가

2017년 4월 어느 날, 내 생일을 앞두고.

* 맥심 2017년 4월호 편집장의 글 중에서. 


이번 호 맥심에 등장하는 양동근 인터뷰엔 이런 말이 있다.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숭고함을 느꼈고 위대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게 된다.”


내 생일은 식목일이다. 딱 그 날짜인 이유가 있다. 1982년 4월 4일, 만삭의 엄마가 병원에 갔다. 산부인과 의사는 그날 출산을 하는 게 좋겠다며 병원에 머무르라고 했다. 엄마는 태어날 애 생일에 4자가 2번이나 들어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붙잡는 걸 뿌리치고 어쩐지 서러운 기분에 울면서 집에 걸어왔다고 했다. 배가 동그랗게 풍선처럼 부푼 산모가 훌쩍이며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만약 내가 그 장면을 봤다면 ‘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저러나’ 붙잡고 물어봤을 것 같다. 엄마는 기어이 하루를 넘겼다. 그리고 4월 5일 아침,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낳고 바로 아침을 먹었다”고 하니 7시쯤에 내가 태어났다.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엄마가 애잔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던 에피소드. 


며칠 전, 엄마와 아버지가 조카를 데리고 서울에 왔다. 나는 마침 회사 1층 카페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조카가 뛰어 들어와 “고모!”를 외치며 안겼다. 뒤따라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잡고 “딸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막 유치원에 들어간 조카는 볼 때마다 말이 는다. 심각하게 빠른 속도로 업드레이드 된다(이런 PC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패치가 늘수록 느끼는 감정과 쓰는 단어가 다양해진다. 지금은 글씨를 읽고 조금 쓴다. 이런 조카를 신기해하면 옆에서 엄마는 약간 으쓱한 얼굴로 “너는 훨씬 빨랐다. 쟤 나이에 시를 썼다”고 말한다. <포켓몬> 비슷한 자식자랑 배틀은 손녀와 딸을 두고도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인가.


가족과 떨어져 집 밖에서 산 지 올해로 20년째다. 인생의 반 이상을 부모를 떠나 살았다. 우리 가족은 무척 화목한 편이다. 난 늘 행복했다. 내 재능과 본질 이상의 가능성을 믿고 봐준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 모든 사람은 입을 모아 내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것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희생과 인내를 요구한다는 걸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그걸 알게 된 날부터 부모의 인생과 내가 누려온 것을 비교하면 슬픈 기분이 든다. 내가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찬란했을 두 사람의 청춘을 연료 삼아 활활 태워왔기 때문이다.


햇빛이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켜놓고 조카와 놀고 있었다. 그거 아나? 요즘은 태어난 지 1, 2년밖에 안 된 인간들이 스마트기기를 쓴다. 조카는 이미 전부터 스스로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유튜브 어플을 찾아서 원하는 영상을 검지로 넘겨가며 봤다. 어린 조카가 고사리손으로 이리저리 엄마의 핸드폰을 만지는데, 내가 보기에 폰이 너무 버벅였다. 엄마는 핸드폰이 점점 느려진다고 했다. 상태를 보니 불필요한 어플이 너무 많았다. 쓰지 않는 기능을 끄고 조카 놈들이 깐 게임이나 수상한 앱들을 하나하나 찾아 척결했다. 엄마는 그것들이 어디서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마무리로 불필요한 메모리를 싹 정리했다. “내 속이 다 후련하네요.”


얼마 전에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부탁으로 폰에 왓츠앱과 페북을 깔고 아이디를 만들어준 적도 있다. 겸사겸사 자꾸만 다운되는 핸드폰의 메모리도 손봐드렸다. 살펴보니 메신저로 그녀 가족들이 보낸 영상과 사진, 쓸데없는 어플과 자동 업데이트 설정 등이 메모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날 난 좀 충격을 받았다. ‘아이디’가 뭔지도 모르고 이메일 하나 없는 그녀의 눈에 디지털 세계는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었다. 세상은 빨리 바뀌고 우리 부모들은 두 살배기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디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겐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누구보다 강한 나의 엄마, 당신의 부모는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당신보다 약한 존재다. 그럼에도 나이 든 부모들이 어려운 스마트 폰 앱을 어떻게든 배워보려고 하는 건, 얼굴조차 보기 힘든 자식들의 소식을 바로 그 디지털 기기 속에서는 만나볼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엄마의 생신에 회사 일을 이유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축하 메시지와 생일축하 스티커, 용돈을 보냈다. 나의 애정표현은 이진법이었지만 엄마는 그것도 고마워했다. 보고 싶은 딸은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몇 주 뒤, 부모님은 날 보겠다고 4시간을 운전해서 서울에 왔다. 나는 그날 밤 11시가 다 돼서야 퇴근했다. 가족들은 잠도 자지 않고 날 기다렸다. 다음 날도 난 바빴다. 부모님과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못했다. 나를 출근시킨 부모님은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는 4시간을 다시 달려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바쁠까봐 전화 안 하고 갔다는 아버지의 말이, 오늘 갑자기 미안해서 마음이 아팠다.


양동근씨가 한 말처럼 부모와 나의 관계는 거울이자 그림자, 그리고 숙명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한번쯤 부모님의 핸드폰을 살펴보길 바란다. 당신이 빠르고 커지는 동안 느리고 작아지는 그들이, 자주 못 보는 자식을 폰 배경 사진에 까는 부모가 보일 것이다. 


1982년 4월 5일, 나의 엄마로 만난 그녀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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