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일기의 가치
3년 전 오늘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는가?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억력 대장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번에 특정일에 관련한 기억을 소환해내기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이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놀랍게도 나는 모르는 어떤 하루를 일기는 기억하고 있다.
"나 자신과 일에 대해 사치스럽도록 오래 고민하며 손발이 바빴던 날들이었다. 사실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본업을 성실히 하면서도 일 외에 실현하고 싶었던 꿈들을 사부작 사부작 해나가고 싶다. 본업으로 선택하지 않은 N개의 일들을 이제는 즐겁게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은 내겐 취업해서 가장 좋은 점이다. 나조차도 나 자신을 믿지 못했을 때 무한정 믿어 준 사람들과,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따뜻한 음식과 말들로 일으켜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 이 고마운 마음들을 이제는 배로 갚아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2023년 6월 17일에 썼던 일기 내용 일부다. 나와 맞는 모양의 회사에 입사하고 싶어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취준생이 된 지난해의 봄과 여름은 제법 사치스러웠으나 지독한 계절이었다. 공부를 해도 손에 잡히는 당장의 성과가 없고 인생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마음이 자주 괴로웠다. 일기장을 입 무거운 친구 삼아 불안과 슬픔이 대부분인 여러 이야기를 털어놓던 날들이 이어지던 중, 상반기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원하던 회사의 최종합격 소식과 함께 기쁨을 적을 수도 있게 됐다. 글자 하나 하나가 행복과 감사, 희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문득, 앞 장을 뒤적여 지난 취준생 시절의 일기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성공적인 합격 수기의 진부한 구성처럼,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기록과 꿈을 이룬 현재의 기록을 견주어 극적인 대비를 맛보고 싶다는 이상한 심리가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나는 쾌감을 맛보지 못했다. 이전의 기록들이 대부분 우울한 내용들뿐이라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나는 지속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며 스스로를 응원하고 또 위로해주고 있었다. 꽤 자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과 함께.
이렇듯 일기는 내가 오해했던 나의 마음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작성한 것이니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탓할 수도 없다. 울고 웃으며 일기장과 더욱 끈끈해진 잊을 수 없는 어느 날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