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다녀온 롤링힐스에서의 추억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올해 가족여행은 처음이었다. 코로나 때문도 있지만, 신랑과 나는 그다지 여행을 선호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여행 데리고 다니기 편해진 5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여행을 가서 아이를 하루 온종일 케어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집에 있으면 장난감도 있고, 놀이터도 있고, 정 아니면 키즈카페도 있지만, 여행지에는 그 무엇도 없다. 그나마 아이들과 가기 좋은펜션, 아이들과 가기좋은 호텔 정도로 검색해서 나오는 곳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별도 놀이 시설이 없는 곳은 더더욱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게다가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어김없이 잠을 설치는 피곤한 타입이다. 예전에 출장을 그렇게 많이 다녀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잠자리를 한 동안 안바꾸다보니 이제 몸이 외부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 하다.
이번 여행은 사실 계획된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 고생한 신랑이 숙박권을 포상으로 받아와 운 좋게 가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호텔이었고, 스탠다드룸 1박에 조식 2인이 포함이었다. 성수기가 되기 전, 날씨가 좋을 때 얼른 다녀오자고해서 5월 되기 이전에 후딱 다녀왔다. 결과로서는 대만족이었다. 일단 아이를 위한 수영장과 아주아주 작긴 하지만 미끄럼틀이 있는 키즈존이 있었고, 주변 산책로도 예뻐서 낮과 밤 아이와 오붓하게 손 잡고 산책 하기도 좋았다.
낮의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이뤄지고 있었다.
결혼식 하고있네~
결혼이 뭐야?
엄마랑 아빠가 되는거야.
그럼 나는 엄마랑 결혼할래.
결혼은 남자랑 여자랑 하는거야.
그럼 아빠랑 할래!
그 얘기 아빠한테 꼭해줘~ 아빠가 좋아할거야.
나는 신랑에게 말했다.
저런 결혼식 보면 참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허례허식같고. 그냥 둘이 만나서 잘 살면 되는데. 엄마아빠를 위한 행사지.
그래? 난 행복했던 기억인데.
신랑은 어쩌면 나보다 더 감정적인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는 호텔 치킨과 맥주를 먹고 배달앱으로 버거킹에서 버거까지 시켜먹었다. 배부른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유튜브를 그만보겠다고 했다. 아이도 지루하구나.. 나는 아이와 밤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느새 아이가 커서 유모차 없이 한 시간 정도를 바깥에서 돌아다녀도 될만큼 컸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언제 크지, 언제 크지 했던 날들이 엊그제 같다. 아이는 우리 손이 닿기만 해도 쑥쑥 컸다. 아이에게 제 1순위로 신경쓴 것은 무언가를 교육하기 보다는 자신이 인생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질 줄알고, 그리고 감정적으로 편안함, 평온함을 느끼게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선택권을 주었고, 그것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한다. 그게 뭐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적 계속 엄마와 아빠, 언니, 선생님 등 누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왔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이루었을 때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주변인들은 내가 계속 그렇게 하기를 바랬고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우리아이는 나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노력하는 것은 선택을 할 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싫다면, 공부를 하기 싫을 때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악기를 배우고 싶다면 세상에는 어떤 악기가 존재하는지 알려주는 식이다.
아이는 한참 산책을 하고, 공원에서 돌멩이를 줍고, 그것을 주머니에 넣더니 호텔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졸려서 얼른 잤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에 돌아가려고 하는 참에 방에서 쉬던 신랑에게 전화가 왔고, 신랑은 아이를 보자마자 손과 발을 씻겨 주었다. 아이를 재우고, 자유시간이 생겼다. 신랑은 편의점이 닫기전에 얼른 간식을 사오겠다고 했다. 잠옷 위에 후드를 걸치고 1층으로 내려가 맥주와 탄산수, 과자를 하나씩 사왔다. 간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도란도란 수다를 나눴는데, 솔직히 맥주가 3잔 반째라서 무슨 얘기를 했는 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수다를 떠는 동안에 아이가 몇 번 잠꼬대를 했고, 그래서 신랑이 아이 옆으로 자리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각자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도 보내고, 나는 평소에 하고싶었던 마스크팩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애플워치가 측정한 수면트래킹 앱이 어김없이 숙면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역시 난 잠자리가 바뀌면 피곤해.. 부은 눈과 몸으로 어기적 어기적 옷을 주워 입고, 배고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앞에 15팀이 있다. 대기번호를 올리고 다시 공원 산책을 나갔다. 아침의 공원은 쾌청했다. 날씨가 좋아서 어디를 가도 기분 좋아질만한 날씨였다. 벌써 여름이 오려는지 햇빛 있는 곳은 더운 느낌이었다. 조식에는 크로플이 있었다. 다른건 다 그렇다치고, 크로플과 프렌치 토스트를 2개씩 먹었다. 요즘 카페에는 메뉴에 크로플이 많아서 항상 궁금했는데, 이번에 크로플을 2개 먹고 이제 당분간 크로플에 대한 갈망은 사라질 것 같다. 아이도 계란, 미역국, 만두, 메추리알, 빵까지 배부르게 먹어주어 뿌듯했다.
방으로 올라와 아이와 신랑이 수영장에 간다고했다. 수영복을 입혀주고, 나는 방에서 조금 쉬었다. 조금 누워있으니 잠이 오는것 같기도, 안오는 것 같기도 한 반수면 상태에서 호텔 베딩의 포근함을 느꼈다. 40분쯤 지나자 아이가 돌아왔다. 추운지 벌벌떨며 있길래 빨리 수영복을 벗겨서 따뜻한 물로 씻겨주었다. 아이는 머리까지 말리고 다시 키즈카페로 갔다. 2차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일간 이슬아'를 조금 읽었다. 책을 읽는데 아직 아주 어린 아가가 있는 듯한 옆 방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다. 아이가 아니라 아가를 웃기려고 애쓰는 할머니, 아빠,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사실 책은 몇 자 읽지 못했다. 그냥 호텔에서 책을 읽는 내 자신이 기분 좋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아이는 체크아웃 전까지 꽉 채워서 놀고, 나는 나머지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했다. 아이는 항상 기분 좋은 경험을 하고 나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여기 또 올거에요!
"또 데려가주세요" "또 와주세요"가 아닌 "또 올거에요!" 는 누군가에 이끌리는 것이 아닌 자기 주도의 표현이다. 내가 아이에게 항상 집중하던 영역, "자기 선택" 그리고 "선택 존중"이 작은 말 습관에서도 드러나는 것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그래그래 또 오자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져준다. 아이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니 시소 태워주느라 불이난듯 근육통이 생긴 내 허벅지도, 잠을 잘 못자 퀭하게 부은 눈과 두통의 불편함도, 호텔 방에서 여유롭게 누리지 못한 독서의 아쉬움도 다 개천의 시냇물처럼 졸졸 씻겨 내려간다. 오늘도 부지런히 우리가족의 추억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