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당신 인생에 더 편했으니까
“당신. 내가 힘들었다는 걸 몰랐다고? 내가 말하지 않아서 몰랐다고? 그렇게 말할 거지?”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삼켜왔던 말들을 쏟아내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정이 북받친 듯한 표정. 마치 물을 가득 머금은 구름처럼,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그걸 보며 죄책감이 들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을 터였다. 오히려 너무 오래 참았던 마음에서 순수한 악의가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말해. 날 외면했잖아. 그게 당신 인생에 더 편했으니까.”
그도 고통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상처를 받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왜 나만 고통받아야 해? 왜 나만 괴로워야 해? 왜 나만 당신을 향해 배려해야 해?라는 마음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억눌렀던 마음이 잡초처럼 무질서하게 돋아났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마음이 들끓었다.
“정말 아니야. 난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어.”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듯 피식 웃었다.
“우리 모두? 거기에 나는 없었겠지.”
“네가 왜 없어.”
그는 나의 대답이 답답한 듯했다. 조금 더 삐딱한 시선을 보태면, 심지어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은 고작 이게 억울해? 고작. 고작. 고작.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정제되지 못한 채 그에게 쏟아져 내렸다.
“왜? 억울해? 나 만큼 억울해?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은 뭘 잃었어? 나는 지금 다 잃었어. 내 모든 생활이 엉망이 됐어. 이게 사는 거야? 사는 거라도 말할 수 있어?”
이 모든 상황 중에서도,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시가도, 반복된 유산도 아니었다.
“말해봐. 당신은 뭘 잃었어?”
그를 내가 서 있는 벼랑 끝으로 몰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했다. 잃어버린 존재들에 대한 너무 많은 감정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그 존재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은 어쩌면 내 몸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이 죄책감. 미안함. 불안. 두려움 등과 같은 감정과 더불어 책임. 사회적 의무들이 내 마음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나는 항상 생각했어.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잘 됐을까. 유지되었을까. 낳을 수 있었을까. 당신은 그렇게 생각 한 적 있어? 유산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내 잘 못 일까. 생각해 본 적 있냐고!”
유산 후 스스로를 탓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허무함과 공허함은 억울함과 과 분노로 표현되었다. 세상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끝없이 이어졌고, 그 모든 끝에는 다시 임신과 출산이라는 집착이 되돌이 표처럼 돌아왔다. 이번엔, 내가 끝까지 잘 지켜 낼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내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출산과 유지라는 두 글자만이 남아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그 순간. ‘내가 나를 잃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자각한 그 순간이 가장 무서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잃은 게 없으니, 말할 게 있겠어?”
그를 향한 명백한 비아냥. 목적 없는 집착.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원망하게 되는 나 자신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감정이 다시 요동쳤다. 고요해 보이던 바다가 몇 척 남지 않은 배를 끝내 삼킬 듯 으르렁거렸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고? 위선 떨지 마. 솔직히 말해봐. 나 하나 참고 넘기면 집안이 조용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적 있잖아. 전에 당신이 그랬잖아. 1년에 몇 번 뵙지도 않는데, 그냥 그런 분이시니 이해해 달라고. 그 말이 무슨 뜻인 줄은 알아? 나 보고 입 다물으란 소리야. 그 상황에 아무런 불만도 가지지 말라는 소리라고.”
그는 내 말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아 보였지만, 생각이 말로 정리가 되지 않는 사람처럼 입술만 꾹 다물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는 사람 처럼 굴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다시 돌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가 배였다면 모를까. 어차피 나의 파도는, 그라는 돌을 부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참는 게, 날 위한 거야? 내가 전부 이해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게, 그게 정말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해? 나는 당신 하나 믿고 이 결혼을 한 거야. 아무도 내 편이 아닌, 이 집에 온 거라고. 그리고… 내가 어디 가서 다른 남자와 임신해서 온 거야? 여태껏 잃은 아이들은, 당신 아이기도 했어. 근데 왜, 당신은 안 슬퍼 보여? 정말 안 슬퍼? 내가 이상한 거야?”
나의 질문을 끝으로 그도 나도 아무런 말하지 않았다. 서로의 사이에 맴도는 그 무언의 침묵이,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결심한 듯 입을 뗐다.
“… 나도 슬퍼. 당연하지. 나라고 그게 왜 안 슬프겠어. 나까지 슬퍼하면 안 될 것 같았어. 우리 둘 중 누군가는 버텨야 할 것 같았어. 그냥… 나는 잃은 아이들보다도, 네가 너무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모습이 더 슬펐어. 그게 더 신경 쓰였어. 정말 아니야.”
처음 듣는 그의 진심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바닥을 내어 보여야, 그는 자신의 마음을 그제야 꺼내 들었다. 수많은 생각으로 들끓었다. 나는 함께 슬퍼해주길 바랐다. 너의 슬픔과 상처에 공감한다며 안아주길 바랐다. 이 마음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고민하며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 내게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는, 아이보다 네가 더 중요하니까.”
네가 더 중요하니까. 그 말에 울컥하고, 꿀떡꿀떡 목구멍 아래로 삼키던 마음이 눈물이 되어 터졌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우는 걸까. 그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오점을 남긴 것 같아서? 아니면 내가 기울였던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혹은… 상처받은 그의 얼굴이 안쓰러워서? 미안해서? 그것도 아니면, 슬픔과 죄책감. ‘결혼’이라는 단어에 얽힌 이제 이 모든 것들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안도감? 그 모든 감정이 위태로웠던 배를 파도가 덮쳤다. 파도는 내가 아니라 그였던 모양이었다. 선장은 방향을 잃지 않으려 키를 붙들었다. 파도에 휩쓸리면 살 수 없음을 오랜 시간을 견디며 알아냈으니까.
“미안해. 나는… 더는 못 견디겠어. 당신이 싫어진 게 아니야. 하지만, 당신과 이혼하지 않는 이상… 나는 자유로울 수 없어.”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 어머니와 계속 연락해야 하고, 무엇보다 더 이상 유산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아. 그만하고 싶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고개를 젓지도 못한 채 말했다.
“임신 안 해도 돼. 난 괜찮아. 아이 없이 살아도, 난 괜찮아. 제발 다시 생각해 봐. 아직 몸도 다 낫지 않았잖아. 내가 뭘 하면 돼? 어떻게 해야, 이혼 생각 접을 수 있어?”
어떻게.
어떻게…?
그의 ‘어떻게’라는 말에, 나는 순간 멈춰 섰다. 죽느냐, 이혼하느냐. 그 외 다른 선택지는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말이, 마치 또 다른 선택의 문 하나를 연 듯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있었구나. 그 생각에 미치자 철컹하고 목에 매여있던 줄이 끊어졌다.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혼하지 않고,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멈추지 않는 눈물을 쏟으며 그에게 말했다.
“어머님과… 연락하고 싶지 않아.”
“그래, 그렇게 해.”
“핸드폰 번호 바꾸고 싶어. 연락 안 받고 싶어.”
“안 받아도 돼. … 이혼은 없던 일로 하는 거지?”
“… 없었던 일로는 못 해. 생각은 해볼게. 하지만, 만약 바뀐 번호가 어머님한테 넘어가면, 나도 장담 못 해. 그땐 뒤도 돌아보지 않을 거야.”
나는 더 이상 목줄에 묶인 개가 아니었다. 한 걸음만 떼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그 경계에. 죽지 않아도, 이혼을 하지 않아도 나로 살 수 있다고? 그런 가능성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하자.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내가 쏟아낸 말들에 분명 상처를 입었을 텐데도, 그는 나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묵묵히, 따지지도 않고. 그제야 비로소,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유산을 했어도, 한없이 무너져 내린 내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여전히 나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유지가 안 되는 나, 자신의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는 나를 버리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저기 한구석에서 눈치도 챌 수 없게 곰팡이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버려지지 않기 위해 먼저 그를 버리려 했음을 그 순간 알았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가해자였고 동시에 피해자였다.
이번 일엔,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둘 다 피해자에 가까웠다. 가해자가 빠진 싸움. 그 안에서 피해자 둘이 싸운 들, 결론이 날 리 없었다. 승자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고 싶었다. 단절되고 싶었다. 세상과의 단절은 나를 천천히 회복시켰다. 하지만 문득문득 울컥하고 찾아오는 슬픔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울고, 또 울었다. 어떤 포인트에서 울컥울컥 슬픔이 밀려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무 특별할 것 없는, 그냥 그런 날이었다. 세탁기 완료 알림이 울리고, 빨래를 널기 위해 세탁기를 열던 순간, 나는 이마를 세탁기에 대고 눈을 감았다.
아…
‘이런 멍청이…’
분명 분류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두운 옷 사이에 흰 티 한 장이 섞여 있었다. 흰 티는 청 사이에서 얼룩지고, 물이 들어 있었다. 중얼이며 그 흰 티를 꺼내 그 티셔츠 펼쳤다. 어디서 오는지 모를 슬픔이 또, 울컥하고 올라왔다. 얼룩덜룩해져서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할 것 같은 그 흰 티가 꼭, 나 같아서. 세탁기 앞에 주저앉아, 나는 또 한참을 울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슬퍼하라 말했다. 그만 잊고, 그만 털어내고, 이젠 웃으라고. 하지만 이미 겪은 일은 없는 일로 만들 수 없었다. 얼룩진 흰 티를 갖은 방법으로 다시 세탁했을 때 얼룩을 조금 사라질 순 있겠지만, 다시 처음처럼 새하얘지지 않듯이. 그 일들도, 그 상처들도 그저 희미해질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생각나고야 마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혼 서류는 이미 오래전에 적어둔 상태였다. 주부인 나에게, 이곳. 집이 곧 직장이었다. 말이 이혼 서류지, 어쩌면 나는 여느 직장인처럼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사표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생각 끝에 나는 이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서류는 아직까지도 늘 내 서랍 안에 있다. 그 이후 나는 이사를 갈 때마다, 새로운 집 주소와 인적사항을 다시금 정성스럽게 손 글씨로 써넣었다. 각오를 다지듯. 그리곤 마지막 내 이름 ‘강이서’ 세 글자 옆, 빨간 인감을 꾹 눌러 찍었다. 나의 의지를 표현하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더 이상 목줄에 묶인 개가 아님을, 내가 내 삶의 선택권을 쥐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저 ‘견디는 것’과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감각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 작은 차이가 나를 조금 더 버티게 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렀다. 나는 조금 덜 슬퍼졌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게 될 때쯤 다시 임신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다섯 번째 임신도 결국 종결로 끝났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힘들었던 건, 산부인과에서 유산 판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주차장에 세워뒀던 우리의 차가 뒷좌석부터 앞 범퍼까지, 쭉 긁혀 있는 걸 발견했을 때였다. 차량 뺑소니. 차를 바라보며 실성한 듯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신이 있다면, 분명 나를 시험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 나야. 하.. 주차장에 누가 긁고 갔네? 앞범버, 앞 좌석 문짝, 뒤 쪽 일자로 다 그였어. 경찰서에 신고하고, 관리 사무실에 물어볼게.”
하혈을 하며,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관리 사무실의 허락을 받아 경비원 사무실에서 CCTV를 돌리기 시작했다. 임신 이후로 나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고, 그 역시 일요일 저녁에 마지막으로 차량을 확인해야 했기에 거의 일주일 치 CCTV를 모두 뒤져야 했다. 며칠 동안 그가 떠난 이후부터 CCTV를 돌려 본 지 3일째. 하루 종일 경비실에 앉아 있는 것도 민폐 같아 저녁이 되자, 아파트 동 주민들에게 하나하나 벨을 눌러가며 물었다. 동에 학생들 중 한 명이 화요일 오전 11시에는 차량 긁힌 것을 보지 못했고, 또 다른 한 명이 수요일 오후 1시쯤 컴퓨터 학원 가다 긁힌 것을 봤다.라고 말해주어 그 덕에 시간대를 좁힐 수 있었다.
22일 오전 11시 이후, 그리고 23일 오후 1시 이전. 찾아냈다. 이 동네 차량도 아닌 낯선 차 한 대가 23일 새벽 괜히 들어왔다가 나가는 길에 우리 차를 긁고 사라진 것이었다. 더 황당한 건 경찰이었다. 가해자에게 내 연락처를 넘겨버린 것이다. 그 남자는 곧바로 내게 전화를 걸어 ‘별로 크게 그은 것도 아닌데, 신고를 왜 하냐’ 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미 연락처가 넘어간 상황이라 차분히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더니, 사진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순순히 사과했다.
한 여름, 나는 유산한 몸으로 경비실 에어컨 아래에서 하루 종일 CCTV를 돌려본 그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주차 뺑소니 사건 덕분에 그 시간을 별생각 없이 흘려보낼 수 있었다. 절망의 한가운데. 그 차량 뺑소니 사건은 나에게 집중할 ‘과제’를 안겨주었고, 그 과제를 붙들고 있느라 조금 덜 아팠던 것 같았다. 그 일이 없었다면, 그가 오기 전까지 울컥울컥 밀려드는 슬픔에 헤매고 있었을지도. 신은 나에게 살 수 있는 숨통을 틔워주었던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