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
인간에 대한 이해, 인간다움을 위해 인문학을 강조하는 시대(사실 이럴 거면 중고등학교 때 국영수보다 인문학을 익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지만, 다른 인간보다 나라는 인간을 먼저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문득 심리학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심적으로 불안한 건 아니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보다는 '지기지피(知己知彼)'가 먼저란 생각.
책장을 기웃기웃 거리다 평이 좋은 책을 찾았다. 신고은 저자의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답게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이 총 네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저자가 경험한 일이나 소설, 영화에 등장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심리학 이론과 용어를 풀어낸 게 특징이다.
책 내용을 복기할 겸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 중에서도) 인상적인 내용을 기록해 둔다.
식탁 위에 놓인 물컵에 물이 반 정도 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물이 반이나 차 있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얘기죠. 하지만 저는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물을 더 따를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에 만족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물이 반밖에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물을 더 채워놓았겠지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았을 겁니다. 부정적 사고를 통해 경계하고 대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분명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사람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훨씬 더 가중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걸 '부정성 편향'이나 '부정성 효과'라고 하는데, 부정적인 건 주로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를 보호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슬픔, 혐오, 분노, 두려움 등 부정 정서이기도 하다. 오히려 세상을 무조건 좋게 보려고만 하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물컵 사례를 든 건 무언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자는 건 절대 아니고 부정 정서가 갖는 순기능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건 다들 아시리라. 평소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라는 긍정적 사고를 실천 중이고, 이런 사고방식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지만, 새로운 관점을 인생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문장이었다.
"물이 반밖에 없네!"의 느낌표를 물음표로 바꾸고 뒷부분에 더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덧붙이면 "물이 반밖에 없네? 물을 더 채워야겠다."라는 문장이 된다. 물론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고, 물이 반밖에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남은 만큼을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분명 개선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긍정적인 자기 최면만 믿고 사는 게 더 문제일 거다.
가끔 우리는 마치 점쟁이라도 된 듯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일이 일어난 후에 말이죠. 그전에는 사실 몰랐으면서, 알고 있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면서, 자신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요. 이런 심리를 '후견지명'이라고 합니다. 이해를 예견하는 선견지명이 아니라,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야 이미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착각한다는 뜻이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보통 여러 가지 가능성, 경우의 수를 고려하다 보니 그중 한 가지가 결과와 유사하면 '그럴 줄 알았어'가 된다는 얘기.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향후 발생할 변수를 바탕으로 플랜 B를 설정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쪽으로 활용된다면 참으로 바람직하다. 허나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나 일반화의 오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자존감 결여와 연결된다면 이보다 더 안 좋을 순 없다.
소위 자뻑모드나 꼰대와도 연결시킬 수 있는 지점이다. 마치 나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없지 않은 터. '그럼 진작 말을 하던가'라는 말이 입술 안쪽까지 절로 나오지 않는가?
대신 선경지명의 혜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건 과정에 대한 기록과 결과에 대한 분석일 거다. 현재 일하는 회사에서도 사전 미팅과 후속 미팅을 상당히 강조하는데, 이 또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잘못된 결과에 대해 '이럴 줄 알았어'가 아닌 '이렇게 준비하면 아마 이렇게 될 거야'라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되자.
우리는 이처럼 이루지 못한 것을 잊지 못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 또는 '미완성 효과'라고 부른답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어떤 선택에 대한 후회가 더 클까요? 당장에는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클 겁니다. 하지만 그 후회는 금방 수그러듭니다. 앞서도 말했듯, 우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반드시 찾아내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 중 하나가 'X팔림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하다'이다. 하지 않았을 경우 내가 놓친 것에 대한 결괏값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보다 차라리 해본 후에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우고 경험을 쌓아보는 것, 지금껏 인간이 이룬 성과(물론 개중에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도 분명 존재하나)는 설령 실패하고 후회하게 될지언정 도전해 본 자들의 몫 아니던가.
직업적으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창업가들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 '일단 해보세요'다. 물론 아무런 준비 없이 풍차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돈키호테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히 준비는 필요하지만 준비가 덜됐다는 생각에 주저하다 보면 결국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이제껏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했는가. 그런데 여전히 이렇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지 않은가. 결국 시도한 결과가 후회로 남기보다 자양분이 된다는 반증이다.
후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지만, 미래에 후회할 시간을 줄이려면 시도의 의미를 찾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는 행복을 있어 보이게 표현할 때 '주관적 안녕감'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내가 주관적으로 '안녕'한 거면 된다는 것이지요. 남에게 특별하지 않은데, 나에게 '안녕'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걸 찾아야 하는 것이죠.
누군가 나에게 “언제 행복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바로 답변할 수 있을까?
‘정의 Justice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의 Definition란 무엇인가’의 중요성. 그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건 내가 뭘 좋아하고 언제 기분이 좋은지를 깨닫는 게 우선이고 내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우선 과제이다.
소확행이건 대확행이건 내게 행복을 주는 순간을 버킷리스트처럼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언젠가 내가 자칫 행복의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 같은 지표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풍미 좋은 커피를 마시는 것, 손을 내밀면 다가와서 머리를 비벼대는 고양이들, 퇴근길 당산철교를 지날 때 보이는 한강의 저녁노을,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매달 들어오는 급여, 여행 출발일까지 점점 줄어드는 디데이까지.
너무나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안녕하세요‘를 타인이 아닌 나에게도 건내보자.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