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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선 Dec 21. 2018

요구가 아닌 욕구를 듣는 대화

얼마 전 강화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왔다. 친구집 거실에 연한 회색의 카펫이 깔려있는 것을 보고 '이런 거 우리집 거실에도 딱이겠다' 생각했다. 연한 회색에 꽤 도톰한 그 카펫을 깔아놓으면 거실 분위기도 세련되고 좀더 안정감 있게 보일것 같았다. 카펫이 방바닥의 열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서 난방비도 덜 들겠지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어디에서 샀는지 물어서 인터넷 쇼핑몰의 링크를 받아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같이 사는 친구들의 카톡방에 링크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나 : OO네 갔더니 거실에 카페트 깔아놨더라. 따뜻하고 좋던데 우리집 거실에도 이런 거 하나 사서 깔면 어떨까? 난방비 절감 효과가 클 거 같은데. 

곧 이어 옆방사는 친구의 톡이 왔다


친구1 : OO네 카펫을 깔아서 따뜻해져서 난방비가 줄었대? 

나 : 그건 몰라. 근데 뭔가를 깔아놓으면 방이 따뜻하게 오래가니까. 

친구1 :카펫은 먼지를 잘 머금고 있어서 매일 거실 청소하고 먼지를 털어내야 비염환자들에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아(라는 내 생각이야…).

나: 자주 세탁하면 되지, 이거 세탁기에 돌리는게 가능하대. 

친구1 : 진선 이미 마음이 섰군. 옆집처럼 먼지없는 매트를 까는 건 혹시 어때? 난 카펫관리에 회의적이라. 

나 : OO네서 보고 느낌이 넘 좋아 반해버림

친구1 : 쇼핑에 있어 충동은 제 1의 주적. 일주일 후에도 사고 싶은 마음이 동일하다면 사자. 물론 다른 식구들 의견도 궁금. 

(친구 1은 국내 최대의 쇼핑사이트 직원이다)


곧 이어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의 메시지도 왔다.


친구2 : 나도 카펫은 좋은데 우리집에서 관리가 될지 걱정이네. 일주일 후에도 진선이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사는 것에 동의합니다. 

친구3 :  나도 카펫은 좋은데 우리집에서 관리가 될지 걱정이네. 일주일 후에도 진선이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사는 것에 동의합니다.2


  

                                                 (게티이미지코리아)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사람들이 하지 못하게 한다.’ 라는 마음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말로는 ‘사면 어때?’라고 의견을 묻는 듯했지만 내 마음은 ‘사자’에 가까웠다. ‘오, 좋은 걸! 그래 사자’ 라는 반응을 기대했던 것 같다. 다른 이들도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대’라고 생각했다. 정말 난방비가 줄었냐는 질문을 받으니 ‘아이 뭐야, 깐깐해’ '당연히 난방비가 줄겠지' 라는 마음도 들었다. '아 저쪽에서는 원하지 않는구나'로 순순히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내가 부정당했다' 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너 정말 사고 싶구나) 일주일 후에도 사고 싶은 마음이 변함없다면 사자.’ 라는 말에서 뭔가 내 욕구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카펫을 구매하자'라는 요구는 일시 좌절된 것 같지만, 사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친구들이 꽤 들어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한번 일주일 기다려보자. 당연히 일주일 뒤에도 사고 싶겠지만' 이라고 마음을 달리며 그날의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일주일을 지냈다. 

당연히 일주일 뒤에도 사고 싶겠지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정말 카펫을 사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역시 친구 말처럼 쇼핑에 있어 충동은 제1의 주적이던 것인가. 카펫 대화 이후로 거실의 먼지가 눈에 더 띄었다. 카펫을 샀다는 이유로 청소를 더 자주 해야한다면 그것은 너무 귀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방이라도 빨리 사고 싶은 마음이, 한 템포 쉬고 나니, 꼭 사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고 전환. 난방비 때문이라면 집에 있는 다른 요를 잠시 깔아놓는 것도 방법. 



카톡창을 열어 친구들(식구들)과의 대화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처음엔 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조금 마음이 상했지만, 대화가 계속되면서 내 욕구가 꽤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요구가 아닌 욕구가. 마음이 유들유들해지니 다른 사람이 먼지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 비염에 좋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잘 들려왔다.

내 욕구가 받아들여졌다는 생각에, 내 쪽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욕구가 쓰윽 들리는 상태가 되었던 것일까.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욕구를 마음껏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의 욕구가 충분히 드러나는 대화.

서로의 욕구가 만나고 받아들여지는 대화 속에서  '카펫을 사자'라는 요구 자체는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은 느낌이다.



'일주일 후에도 사고 싶은 마음이 동일하다면 사자.'

'일주일 후에도 진선이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사는 것에 동의합니다.2'

라는 말이 남는다. 이 사람들 좋구나. 고맙구나.   


서로에 대한 안심은, 긴장이 경계가 풀어지는 순간 느껴지는 것 같다. 긴장 혹은 경계가 안심으로 바뀌는 걸까. 서로에게 요구하고 요구받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욕구를 듣고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표현하는 대화. 

긴장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안심을 키워나가는 대화.

매일의 일상에서 그런 것을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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