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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an 05. 2021

다다익선이 스트레스가 될 때


1. 냉장고에 막걸리 5병이 있다. 막걸리는 발효음료이긴 하지만, 맥주나 와인처럼 무기한으로 저장해 두고 먹을 수 없는 술. 예전 같았으면 친구들 한 번 불러 노릇노릇한 전과 해치우면 그만이겠지만, 코로나 시대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얼마 전 노로바이러스로 된통 앓았던 남편과 술파티를 할 수도 없고, 부글부글 냉장고 속에서 발효되고 있는 막걸리를 언제 먹어야 할까. 어떤 음식과 페어링 하여 먹어야 할까 계속 생각이 난다. 


2. 만약, 이 막걸리를 정해진 기한 내에 마시지 못하면 냉장고에서 썩어져 나갈 것이다.  사랑하는 술이 하수구에 졸졸 버려지는 상상을 하면 끔찍해진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식재료가 썩어 버려지는 일을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바쁜 현대인에게 매일 먹을 식재료를 조금씩 장 봐서 음식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가 있어도 배달앱에 손길이 가는 시대 아닌가. 특히 힘겹게 설거지와 가스레인지 청소를 마쳤을 때, 다음 끼니는 도저히 못해먹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오늘도 배달앱을 켠다. 


3. 그렇게 배달음식의 비중이 늘어나면, 같이 동반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엄청나다. 아직 기저귀를 못 뗀 아이의 기저귀까지 더해진 우리 집의 쓰레기는 늘 상상 초월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보다, 아 이렇게 쓰레기 더미에서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쿠팡과 핫딜 방 사이를 오가면서 '주문 완료' 페이지를 확인할 때의 쾌감, 아이와 함께 '택배 아저씨다' 하고 소리치며 상자를 들고 오는 찰나의 기쁨을 오늘도 놓지 못한다. 


4. 다다익선의 문제는 이 것만이 아니다. 매일 넘쳐나는 업무 카톡, 트렌드다 정보다 하면서 휘발되는 수많은 뉴스들. 너무 많은 텍스트를 활자중독처럼 읽어대고, 짧은 한 줄조차 내 것으로 제대로 남기지 못한다. 노동의 가치는 떨어지고 사람들은 더더욱 광기처럼 '리딩 방'에서 소수에게만 제공된다는 허상의 정보를 추구하러 달려든다. 낭만은 사라지고, 낭만을 즐길 여유는 더더욱 없어진다. 육아로 인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바로 쓸 수 없는 정보를 습득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아이가 잠든 꿀 같은 시간, 서가에 언젠가 사둔 많은 고전작품을 뒤로하고 '억만장자 시크릿'이라는 책을 골라잡았으니. 


5. 나의 페르소나는 이제 한 개가 아니다. '서준이 엄마', 'OOO (회사 영어 이름)', '가계 경제 담당자', '나' 

이 네 개의 페르소나가 모두 균형을 이루어야 나와 내 주변의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책임과 할 일 조차 다다익선인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더더욱 '버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하루 이틀은 괜찮겠지 하며 꾸역꾸역 몸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을 먹더라도 즐거워지는 음식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너무 많은 세상에서 본질과 옥석을 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다다익선의 시대에서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 단언한다. 


6. 어제 처음, 이마트 쓱배송의 무료배송 금액인 4만 원을 넘기지 않고 필요한 계란과 딸기를 샀다. 아이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만 샀다. 물론 좋아하는 과자의 20% 할인을 그냥 넘기진 못했지만. 올해 나의 새해 목표인 '비워내기'를 잘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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