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 전에, 우리 동네 잡아두기
나는 스무여섯 해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주소상으론 다른 동네지만 나의 주변을 동네라고 부른다면, 같은 동네다. 12년 반은 저쪽 주공아파트에서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진 이쪽 우성아파트에서.
매일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 굳이 눈에 담아두지 않는 그런 익숙함. 내게도 동네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동네를 찍기 시작했다. 이 벚나무 때문에.
우리 동네는 예전부터 벚꽃이 예쁘기로 유명했다. 동네 사람들만의 자부심 일진 몰라도. 나 역시 진해 여의도 다 다녀봐도 역시 여기만 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해 봄에도 어김없이 벚꽃을 보러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 나무를 발견했다. 꼭 벚꽃 신령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큰 벚나무. 높고 넓게 뻗어나간 가지에 빼곡하게 만개한 벚꽃이 하늘을 촘촘히 가리고 있었다. 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나무였다.
한눈에 반한 것이 분명했다. 가장 아름다운 봄날의 모습뿐 아니라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까지 궁금해졌다. 사계를 찍어두면 꽤 멋질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은 의무적으로 바람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를 보러 나오게 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나 어릴 때부터 똑같이 그 자리에 있는 바위나 벤치랄지, 어느새 많이 낡아버린 아파트랄지. 학교 숙제로 명아주를 찾아다니던 우리 집 옆 풀밭과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까먹으며 놀던 잔디밭은 이미 사라져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매일매일 시간이 쌓이고 있었고 이러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십 몇 년 전부터 한다던 재개발도 이제 정말 시작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던 곳들, 여전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공간들의 모습을 찍고 기록하고 모아보려 동네잡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사라지기 전에 잡아두고, 이런저런 모습과 이야기를 잡다하게 기록해본다.
그렇게 지난 일 년간 담았던 그 나무. 봄에 가장 아름답지만 여름, 가을, 겨울에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아름다웠다. 가끔 나무를 찍으러 가면, 나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라고 털어놓고 싶어 지기도 한다.
그 나무 말고도 좋아하는 곳들이 여러 곳 생겼다.
특히 좋아하던 곳. 주황색 지붕과 나무, 길, 종종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합이 좋다. 나무가 많아 계절이 잘 보이는 곳이라 더 좋았다. 오른쪽엔 버스정류장과 큰 길이 왼쪽엔 집들이 빼곡하지만 공원, 때론 숲 속 같은 느낌을 주던 곳. 나무 옆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들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졌던 곳.
사람이 사는 곳이니 내년에는 사람들의 모습도 같이 담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다.
배경은 매일 바뀌지만 (가끔 이불이나 여러 옷가지를 얹고 있을 때도 있지만) 매일 똑같은 의류함도 좋아한다. 귀여워.
올해는 벌써 반이나 지나갔다. 놓쳐버린 동네의 시간은 아쉽지만 하반기에도 또 조금씩 잡아보기로 한다. 매일 다른 내가 매일 다른 동네를 잡는다. 여전히 진행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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