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제 내 프리다이빙 히스토리를 곁들인
렙업하니 왠지 마음이 시작부터 돌아보고 싶어졌으니 처음부터 쭉 얘기해 볼게. 쓰다 보니 서론 매우 길다.
처음 다이빙을 시작한 건 내가 좋아하는 (전 회사) 팀장님이 회사 프리다이빙 동호회를 만들 건데 들어오겠냐고 꼬셔서. 항상 바다를 좋아했고 수영도 좋아했고 물속에 있고 싶어 했고 프리다이빙도 한번 배워보고 싶었기에 회사 사람들이랑 수영장을 가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도 이겨내고 동호회에 들었다. (난 대중목욕탕도 찜질방도 싫어함… 엄청난 용기였다 진짜로…)
그렇게 프리다이빙에 빠졌고 개처럼 일하던 와중에도 겨우겨우 휴가를 내 혼자, 아주 무리해서 보홀에 갔고 SSI Level1(=AIDA L2) 자격증을 땄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짜릿한 기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마도 이것이 지금까지 다이빙을 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강해져…
아무튼, 이 레벨만 있으면 버디들끼리 해양에 나갈 수 있었고 나는 바다에서 놀기 위해 자격증을 딴 거였으니까 더 이상의 레벨 업은 생각도 안 하고 열심히 놀러만 다녔다.
자격증을 딴 건 2018년, 프다 붐이 불기 전 제법 초반이었다. 동호회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우리끼리 보홀이랑 모알보알도 다녀왔다. 정말 행복했지. 다시는 없을 마법의 가을 같았던 여행. 같이 술 마시면서 별을 보던 시간까지 생생하다 흑흑 그리워…
하지만 다들 퇴사를 하고 나도 이직을 하고 삶이 조금 달라지면서 같이 모이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나는 다이빙을 계속하고 싶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바다에 가고 싶었다. 혼자서 보홀은 여러 번 갔고 다른 곳들은 혼자 가기에 좀 어려워서 올해 3월에는 처음으로 다이빙 투어에도 참여해 봤다. 두마게티로 갔던 투어가 생각보다 너무 좋았고, PB 20m도 찍었다! 20미터는 내 레벨로 갈 수 있는 최대 수심이었는데, 왠지 좀 더 가고 싶었다. 갈 수 있을 것도 같았고 같이 간 강사님들이 레벨 업을 해보라고 꼬셨다… 나는 귀가 너무 얇아… 그래서 렙업을 조금 생각해 보고 있었다.
투어를 갔던 블페가 좋아서 여기서 렙업을 해볼까 했지만 풀장은 넘 멀고… 사실 바다만큼 재밌지도 않고… 투어 타이밍은 계속 안 맞고… 이래저래 미루고 있던 상황. 와중에, 구 동호회 분들이랑 가을에 다이빙을 가기로 약속을 해서 신나게 어디 갈지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업계를 옮겼지만 다른 네 분은 계속 같은 업계에 계셨고… 결국 모두 휴가를 못 내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
혼자.. 혼자 가야지.. 하고 슬프게 그리고 좀 급하게 알아보다가 일본 미야케지마 돌고래 투어를 가기로 했는데 1. 오염수 방류 tlqkf 2.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가야 하는데 3. 이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어 취소를 하였습니다.. 엄청난 항공 수수료를 내고… 하…
이미 휴가는 냈고 취소하고 다시 기회를 보자니 이러다 못 갈 것 같고 그래서 두마게티 이후로 은은하게 생각하던 레벨 업이나 해보자는 결론에 급격하게 도달.
별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ㅋㅋㅋㅋ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지켜보던 제주 프리다이빙스쿨에 바로 연락해서 예약을 잡아버렸다. 이퀄도 잘 안되면서요…
그렇게… 또 급하게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예약을 하고 강사님이랑 연결되고 프렌젤을 연습하면서 조금 후회도 했다. 사실 굳이 레벨 업을 할 필요는 없는데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하고 싶은 이유는 뭘까.
뭔가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요즘 사는 거 좀 지루하고 덕질도 끝났거나 애매하고 이래저래 인생에 도파민이 부족한 도파민 중독자는 뭔가를 지르기 마련이다… 내 인생은 꾸준히 도전과 시험의 연속이었는데 이번에도 돌파구를 도전과 시험으로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렙3를 따겠다는 마음으로 제주도에 왔고 첫 테스트와 비슷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제주바다 트레이닝&테스트 시작.
9/8
트레이닝 시작 전날에 와서 묵는 것을 추천한다길래, 저는 말 굉장히 잘 듣는 학생이라서요… 퇴근하자마자 김포공항으로 달려가서 제주로 왔다. 서해선 김포공항까지 금방 가서 너무 좋았다. 공항에서 맥주 한 캔 마셨고 비행기 탄 시간만큼 버스 타고 서귀포 숙소 와서 바아로 취침. 도미토리인데 나흘 내내 혼자 썼다.
9/9 첫 트레이닝 데이
시작은 이론 수업이었다. 12시에 바다를 나가야 해서 수업은 8시부터 시작했다 ㅋㅋㅋ 주말인데 8시부터 수업 듣기. 하 근데 왜 좋냐고…
아이다3 이론시험이 강사 과정 포함해서 제일 어렵다고 했다. 정말 어렵더라. 전에 자격증 딸 때 봤던 이론은 당연히 기억도 안 나고 특히나 유독 어려운 내용이라니. 그치만 나 이런 거 좀.. 질 수 없어. 시험에서 떨어져? 말도 안 되죠 자존심 겁나 상하죠… 한방에 붙어주마. 눈에 불 켜고 들었어요 (진짜)
이론 수업 끝나고 드디어 첫 제주바다에 나갔다.
제일 처음 놀란 건 아니 여기 걍 다이빙 동네임. 시스템이 엄청 체계적이야!!! 필리핀은 배에 사다리만 있어도 신식이라고 좋아했는데 (사다리 없으면 팔힘으로 배에 올라와야 함. 어깨 빠진다 진짜) 여긴 엘리베이터가 있어……. 자동으로 올려줘 진짜 미쳤다….
바다는 악명을 꽤나 들었다. 제주바다가 세상에서 제일 터프한 바다라길래 걱정을 좀 했다. 나는 온화한 필리핀 바다에만 익숙한, 곱게 자란(..) 프리다이버라서
아니나 다를까 조류가 꽤 셌다. 어우 이러다 라인 휘겠는데, 걱정했는데 다른 분들이 오늘 바다 컨디션 너무 좋다고 거의 최상이라고 했다.
오… 이게요? 그렇군요…
첫 바다는 12:00pm 섶섬 수온 28도 조류, 너울 셈
3mm 투피스슈트(배럴) 허리웨이트 2.5kg (부족)
허쌤(허멘!) 앤 버디: 기은님
FIM으로 10미터, 15미터 감. 중성부력 찾기는 실패
CWT로 15미터, 18미터
테스트는 15m 암 온리 테스트 - 성공!
15m 세이프티 테스트 - 성공!
15m 노마스크 테스트 - 성공!
나는 바다에서 눈 뜨는 거 전혀 안 무서워해서 자신만만하게 내려갔는데 마스크 벗자마자 얼굴로 물이 확 쏟아지는 바람에 엄청 당황해서 호다다닥 바보같이 올라왔다.. 통과는 했으니 됐다..
첫날 체력 있을 때 풀장까지 호로록 끝내버리기로 하고 풀장에서 STA (숨참기) 2분 47초로 테스트 통과, 다이나믹 (잠영) 55m로 또 테스트 통과.
하루 만에 테스트 절반 통과해 버림. 하하!!!
스태틱 PB 세운 기념으로 맥주 한 캔 했다.
한 캔으로 자제한 나 대단해요
9/10 두 번째 바다 1:00PM
섶섬 앞바다 수온 28도 너울 조류 약간
3mm 슈트, 웨이트 3kg
허쌤, 버디: 종동님
둘째 날은 그야말로 망했다..
10m 가는데도 오른쪽 귀가 안 뚫렸고 12m가 최대였다. 타이밍을 놓친 걸까. 심리적인 문제였을까.
둘 다였겠지.. 이날은 뭐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왔다.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정말 너무너무너무 속상했다. 전날 이퀄 연습도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흑흑..
기절한 다이버 끌고 50미터 가는 토잉 테스트는 수면에서 하는 거니까.. 요거 실시했고, 통과했다.
이퀄 안된 거 너무 속상하니까.. 맥주 한잔함.
이날도 딱 한 잔으로 끝냈다. 다이버 마인드 끝내주죠
(다정이네김밥 개맛있어)
9/11 셋째 날 7:00AM
섶섬 앞바다 수온 27도 조류 0 너울 0 완전 장판
3mm 슈트 웨이트 3kg
허쌤, 버디: 종동님 귀비님
잘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부담 백배되어 나간 바다. 여전히 이퀄이 잘 안 됐다. 10미터 12미터에서 막혀서 너무너무 불안했는데 쌤이 세이프티 다이빙을 시키니까, 15미터를 후루룩 갔다. 엥?
버디 만나러 내가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없었고 걍 갔다. 진짜 엥?
연속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15,16미터를 갔다. 이퀄도 잘 되고… 엥…?
쌤은 내가 본다이빙은 너무 긴장하는데 책임감은 있어서 세이프티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냥 가는 것 같다고, 이퀄이 안 되는 건 심리적 문제 같다고 했다.
그래서 본다이빙 할 때도 세이프티를 간다고 생각하고 가봤다. 내가 구해야 할 다이버가 저 아래 있다.
그랬더니 21미터를 감… 진심 엥?!?? ㅋㅋㅋㅋㅋ
퍼스널 베스트 1미터 늘렸읍미다..
새벽 바다에 나가서 시간이 많이 남았고 다 같이 소머리국밥 먹고 카페 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오후에 이론시험이 있었는데 날씨가 넘 좋아서 미루고 싶었음 ㅜㅜ ㅋㅋㅋㅋㅋ 여튼 벼락치기를 했고 하하핳하하 당연히 통과했죠^.^ 고득점으로 통과~~!
시험을 보고도 시간이 남아서 펀다이빙을 갔다.
세상에 제주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네
벵에돔 아기들은 정말 그림으로 물고기 그린 것처럼 생겼고 열대어도 많이 보였고 돔 종류가 정말 많았다.. 그리고 연산호가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음
펀다이빙 많이 가봤지만 제주바다도 너무 매력적이네
포구 돌아와서도 신나게 놀고 오뎅까지 먹구 마무리
정말.. 행복했다.
바다가 너무너무 좋아요.
바다 두 번 나간 결과: 저녁 8시에 잠들다
9/12 마지막 바다
섶섬 앞바다 수온 28도 조류 0 너울 약간
허쌤, 버디: 종동님, 도니님
워밍업부터 15미터를 내렸다. 10미터 줄을 내리면 그것도 못 가면 어떡하지 하는 부담감이 커서 오히려 못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인데, 역시 그랬다. 바로 16미터 성공.
두 번째 워밍업도 16미터 가고 바로 다음에 cwt로 본다이빙 시도했다. 가기 전에 종동님이 멀리서 화이팅! 해주셨고 쌤도 가까이 와서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줬는데 그 응원들이 마음에 콱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응원의 말을 마음에 담고 충분히 릴랙스 하고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귀가 터져도 가고 말겠다는 각오로 내려갔다.
20미터에서 한번 이퀄 막혀서 끙끙대며 뚫었고 23미터쯤에서 안 뚫려서 몸을 비틀고 인상을 쓰고 뚫었는데 됐다! 그래서 쬐금 더 갔다가 줄 끝 캔디볼 보고 올라옴!!!!!! 올라올 때 제대로 했나 확신이 안 들었는데 세이프티 내려와서 같이 올라가던 쌤이 머리를 툭툭 쳐줘서 아 됐나 보다 했다. 진짜로 너무너무너무너무 기분 좋았다.
이 기분 절대 못 잊어.
올라와서 기록 확인해 보니, 드디어!!!!!!! (테스트 수심 기준은 24미터) 25.4미터를 다녀옴!!!!!!!
홀리몰리!!!!!!!!!!!!!!!!!!!!! 나!!!!!!!!! 렙3 중급 다이버다!!!!!!!!!!!!!!!!!!!!
비록 쌤이 고프로 배터리를 안 가져오셔서 영상은 없지만 ^^ㅎ 물 튀겨서 축하도 받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성취감.. 미쳤죠.. 나는..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 내가 바다 밑으로 25.4m를 가고 숨도 2분 47초를 참는데 못 할 게 뭐가 있겠냐고요. 나는 진짜 이 기분 때문에 트레이닝하고 레벨 과정 하는 것 같다.
라이센스 발급까지 완료하고 나니 정말로 아이다 렙3 과정이 끝났다. 날씨요정답게 바다도 나흘 내내 넘넘 좋았고 강사님도 좋았고 버디 복도 좋았고 너무너무 행복했던 과정. 난 정말 복이 많아.
벌써 바닷속이 그립다.
제주도는 필리핀보다 가까워서 다행이다.
조금 더 자주 바다에 올 수 있을 것 같아. 가까운 바다에 기지를 또 만들었으니, 자주 와야지.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