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판단섬(둘째 날 오후)
"이번엔 패키지여행으로 가볼까?"
정해진 기간으로 일정 짜기가 쉽지 않고 마침 저렴한 여행상품들이 많이 나와서 누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싫어!!"
누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자유여행을 해보니 시간 제약도 없고, 원하는 걸 마음껏 경험할 수 있고, 일정 변경도 자유롭고...."
내가 처음 자유여행을 하게 된 이유들을 누나는 똑같이 나열하고 있었다.
"응.. 열심히 짜 볼게.."
난 다시 우리의 여행을 계획하는데 몰입했다.
판단섬
배를 탄지 30분이 지나 판단섬에 도착하니 커다란 배 한 척이 이미 판단섬 투어를 끝내고 떠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혼다만 섬들을 투어 하는 배인듯했다. 비 때문에 배가 운행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유 부리지 말고 더 일찍 출발할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판단섬에 도착하자 선장님이 우리가 머물 방갈로까지 짐을 옮겨준다. 우리는 몸만 내려서 안내해주는 방갈로로 가면 된다. 비싼 투어 비용에 포함된 서비스겠지만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서비스여서 함께 짐을 옮겼다.
선장님은 식당과 스노클링, 카약 등 판단섬에서의 즐길거리를 설명해주고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신을 부르면 된다고 알려주고 가셨다. 아마도 판단섬 투어를 신청하면 선장님이 개인 가이드를 해주시는 것 같았다.
판단섬 투어를 신청하면 선장님이 개인 가이드를 해주신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시간이 되는 바람에 선장님은 식사부터 하란다. 점심식사는 12시부터 1시까지 1시간 동안 제공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짧았다. 우린 점심시간이 2~3시간 정도는 될 거라 생각하고, 물놀이부터 하다가 배가 고프면 늦은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아마도 섬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엄격한 규정 중 하나인 듯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투어 비용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판단섬 점심 뷔페
늦은 아침으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정해진 식사시간 외에는 음식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식당부터 찾았다. 식당엔 우리보다 앞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이미 줄을 서있었다. 뷔페라고 해서 줄을 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뷔페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우리가 너무 여유를 부렸을까..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식당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식당을 찾았을 때는 기대했던 것보다 음식이 많이 초라했다. 물론 우리의 배를 채워줄 만큼의 음식이 남아있긴 했지만 남아있는 음식의 양도 종류도 유쾌하지는 않았다.
판단섬에서 푸짐한 뷔페 식단으로 배 터지게 먹을걸 기대했다가 점심시간에 제약이 있는 걸 알고 나서 아침을 늦게 먹은걸 아쉬워했었는데.. 막상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니 아침을 늦게 먹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뷔페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판단섬 즐길거리
점심을 먹고 방갈로에 돌아오니 섬에 도착했을 때 구매했던 소라와 게가 손질을 끝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섬에 도착해 방갈로에 자리를 잡으면 해산물을 파는 분들이 다가와 해산물을 직접 보여주며 판매하는데 그때 구매한 해산물이다.
점심식사 비용으로 해산물을 사 먹는 게 이득이다.
배가 불렀지만 먹어보니 맛도 좋고 한국에서 맛보지 못하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어 만족도는 점심식사보다 해산물 요리가 훨씬 좋았다. 매표소에서 판단섬 입장권을 끊을 때 점심을 포함할지 여부를 물어보는데 점심을 빼고 그 비용으로 해산물 요리를 사 먹는 게 더 이득일 것 같다.
먹을거리를 모두 해치운뒤 판단섬 여행의 메인인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선장님을 찾았다. 잠시 후 선장님과 함께 배에 올랐던 젊은 가이드가 튜브를 하나 가지고 와서는 튜브에 붙으란다. 그리고 나무판자로 만든 오리발을 신더니 튜브에 매달린 누나와 매형, 조카를 끌고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판단섬에서의 스노클링은 정말 최고였다. 왜 혼다베이 호핑투어 중 판단섬을 최고로 꼽는지 스노클링을 하고 나서야 공감할 수 있었다. 판단섬은 물이 맑고 물고기도 많아서 스노클링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점심식사의 아쉬움도 날씨로 출발이 늦어진 것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가이드의 안내로 제법 수심이 깊어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도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었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 후 잠시 쉬고 있으니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카약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 물어보니 바로 카약 배와 노를 갖다 준다. 판단섬에서의 카약은 대여 비용이 없다. 타고 싶으면 빈 배를 찾아서 지칠 때까지 타면 된다.
스노클링과 카약으로 시간을 보내다 섬을 떠날 시간이 되어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겼다. 선장님은 시간이 된다면 섬 뒤편도 구경을 해보라고 했는데 저녁에 포트 바튼으로 이동해야 하는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판단섬은 환경 보호 때문에 비누와 같은 세면용품을 사용할 수 없다. 간이 샤워실이 있는데 대야에 담겨있는 물을 떠서 소금기와 흙만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판단섬에서의 스노클링이 지금처럼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판단섬의 스노클링이 즐거운 이유는
세면용품 사용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배안에서 선장님이 귀한 선물을 주셨다. 젊은 친구에게 가이드를 맡기고 어디서 쉬고 계신가 했더니 풀 공예품을 만들고 계셨던 듯하다. 이 정도면 팔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다.
우리가 판단섬을 선택한 건 프라이빗한 공간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 효과가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판단섬의 바다를 우리만 사용하는 기분이었다. 좋지 않은 날씨가 여행을 망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상황이었다.
우린 공예품 선물을 주신 선장님과 즐거운 스노클링을 안내해준 가이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음 일정인 포트 바튼을 향해 움직였다.
여행 참고
1. 판단섬 여행 준비물
수건 - 샤워 후 물기를 닦는 데 사용
여분 옷 - 샤워 후 갈아입을 옷(래시가드로 이동이 불가할 경우를 대비)
스노클링 장비 - 선장님께 얘기하면 스노클링 장비를 준비해 준다.(추가 비용은 확인 필요)
물안경 - 스노클링 장비가 없어도 물안경만 있어도 스노클링은 가능하다.
물 - 섬이라서 물이 귀하기 때문에 물은 필수다.
팁 - 필리핀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팁을 줄만큼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2. 판단섬에서 안 되는 것
세면용품 -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비누, 샴푸 등은 사용할 수 없다.
선크림 -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을 못한다고 알고 갔는데 제지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