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여 Jul 03. 2022

삶을 퇴사합니다

내 장례식에 놀러 올래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이직을 하게 됐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왔다. 경력이 길지 않았을 때는 친하게 지냈던 이의 퇴사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에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앞으로 그가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한 마디를 꼭 덧붙인다. ‘그 동안 고생 많았어요. 퇴사를 축하합니다.’


어느 날 내가 죽어 장례식을 치르는 날이 온다면, 나는 조문객들로부터 애도보다는 축하를 받고 싶다. 빈 책상을 뒤로하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 퇴사자의 뒷모습에 손을 흔드는 것처럼 생을 종료한 이에게는 그 동안 살아내느라 애썼다 말하며, 죽음을 맞이한 것을 축하하는 분위기였으면 한다.


삶에 대한 인상은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과 기쁨과 연속,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테지. 오늘만 해도 더없이 만족스럽던 인생이  시간 만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수도 있다. 이처럼 인생은 예상 불가하고 변화 무쌍하기에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인간도, 가만히 침대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는 이의 삶도 똑같이 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죽음을 축하하자. 자의든 타의든 생을 종료한 이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기자. 이왕이면 육개장에 수육 같은 장례식 단골 메뉴보다 생전에 고인이 즐겨 먹던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좋겠다. 다만 여러 종류의 음식을 준비하는 건 손이 많이 가니까 내 장례식에는 이거 하나만 꼭 준비 해주기 바란다. 바로 믹스 커피다. 20대 중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게 위로와 힘을 북돋아주었던 소중한 존재이기에 조문객이라면 믹스 커피 한 잔씩은 함께 마셔 주었으면 한다. 다만 단 맛을 아주 싫어하거나 당뇨 같은 질환 때문에 먹을 수 없다면 둥글레차나 카누로 대신해도 괜찮다.


블랙 앤 화이트라는 뻔한 드레스 코드도 탈피하면 어떨까. 최근에 사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옷이든 너무 편해서 몸에 이식하고 싶은 옷이든 뭐든 좋다. 그리고 삶의 종료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웃는 얼굴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기 유령 캐스퍼처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장례식장을 지키고 선 나도 잘 살았다 싶을 테니까.




이 글은 '내 장례식에 놀러 올래요?'라는 주제에 대한 글쓰기 모임 과제로 작성하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