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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Aug 29. 2022

새큼달큼 청귤이 익어가는 집, 선흘별채

올해 4월, 일찍이 휴가지로 뉴욕을 점찍어 놨었다. 항공권과 숙소, 스냅까지 예매했는데 출발을 2주 앞두고 그만 사정이 생겨 취소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우린 금세 방향을 틀어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급하게 결정한 여행인 만큼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바다에서 실컷 물놀이하기! 그래서 스노클링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김녕해수욕장 인근의 에어비앤비를 찾았다. 지도를 한참 뒤적거리다 내가 발견한 곳의 이름은 '선흘별채'.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후기는 거의 없었지만 에어비앤비 사이트의 리뷰가 칭찬일색이었다. 게다가 프라이빗한 독채, 감성적인 인테리어까지 갖췄으니 이 정도면 훌륭했다.


휴가 당일, 강풍으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나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다시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속소에 도착하고 보니 집에서 출발한 지 약 10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 정도면 해외여행 아닌가?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의 문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훅 끼쳤다. 미리 에어컨을 켜 두신 덕분이다. 곳곳에 전자 모기향도 켜져 있고 편안한 재즈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이제 긴장을 풀라는 듯. 비행기 결항으로 당황한 나를 다독이던 사장님의 목소리처럼 따뜻한 첫인상이었다.


깜깜한 밤이었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사장님의 센스가 남다르다는 걸. 숙소에는 아마도 출신지가 모두 다를 법한 감각적인 소품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마루 위에 자리한 유리병, 현관 옆 의자, 벽에 걸린 조명 등 시선이 닿는 데마다 볼거리가 많았다. 심지어 거실에는 플래시가 있었는데 디자인이 너무 예쁜 나머지 우린 새로 나온 빔프로젝터인 줄 알았다.


거실에는 밖으로 향하는 문이 3개 있다. 하나는 현관문, 나머지 2개는 야외 데크로 향한다. 데크에 서면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코앞에는 초록빛 청귤이 주렁주렁 열린 귤나무가 가득하다. 마침 숙소에 요가 매트가 있어서 나는 아침에는 스트레칭을 하고 밤에는 별로 가득 찬 하늘을 감상했다. 서울과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을 보고 있자면 행복이 차올랐다.


귤나무밭 산책을 하다가 멋진 풍경을 만났다. 늠름하게 우뚝 선 나무는 옹기종기 자리 잡은 귤나무들을 보살피고 지켜주는 듯 보였다. 이렇듯 자연도 사람도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야겠지. 가만히 보고 있으니 뾰족한 가시가 돋았던 마음도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숙소에 있으면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풀벌레 소리만이 들린다. 가끔씩 스테이 옆 주인댁에 사는 강아지가 월월 짖기도 하지만 워낙 조용한 동네라 그 소리마저 유쾌하다. 가게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나 차들의 경적, 귓가에 꽂은 에어팟에서 벗어나 고요히 머물다 보니 새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소리에 둘러싸여 사는 지 깨닫는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행위가 뇌를 쉬게 하는 것처럼 가끔은 정적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기대 이상의 휴식을 경험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실내 공간은 크게 거실 겸 부엌, 침실, 화장실로 나뉜다.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부엌은 보기도 좋지만 취사가 가능해 실용적이다. 게다가 모카포트와 다도세트부터 파스타 냄비와 알레시 스퀴저 등 온갖 조리 도구를 갖춰서 여유가 된다면 요리에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여행 둘째 날, 사장님께서 테이블에 올려두신 청귤로 에이드를 만들어 먹었다. 입 안 가득 시큼함이 기분 좋게 맴돌았다.


내가 꼽은 선흘별채의 메인 스폿은 바로 침실이다. 머리가 향하는 벽을 제외하고는 모두 큰 창문이 나 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마치 액자 속 그림을 보는 느낌.


아침이 오면 눈뜨자마자 김녕해수욕장에 가서 실컷 물놀이를 하고 오후에는 사각거리는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빔프로젝트로 넷플릭스를 봤더랬지.


여기는 침대 맞은 편의 마루. 엎드려서  보기  좋은 아늑한 공간.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로 화장실 역시 먼지   없이 깨끗했다. 게다가 세면대가 2개나 있고, 세면대 / 변기 / 샤워실이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  사람이 동시에 씻고 준비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선흘별채에 머무는 동안 투숙객 모두 편안할  있도록 살뜰히 살핀 대목이다.


사장님께서 우리를 날씨 요정이라고 부를 만큼 선흘별채에서 지내는 4일 내내 날씨가 좋았다. 덕분에 한여름 햇살의 따뜻함을 가슴 가득히 채웠다. 차가 좁은 골목을 빠져 나가는 동안 백미러로 양손을 흔드는 사장님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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