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 -
연애와 결혼 사이 공황장애 매거진 (brunch.co.kr) 매거진에서 시리즈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주선자 언니에게 까인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다. 여느 주선자가 그렇듯 언니는 좀 더 기다려봐라, 애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 등의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10번 전후의 소개팅 경험에 따져봤을 때 집에 잘 들어가라는 연락이 없는 데서부터 이미 이 소개팅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만난 지 하루가 지나서 애프터 신청을 한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한창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후 4시쯤 됐을까. 부르르르 휴대폰이 울렸고 노란색 카톡 창이 떴다.
그였다. 약 17시간이 지나고 연락을 한 것이다. 카톡 내용은 뻔했다. '소여 씨, 어제 잘 들어가셨나요?' 그렇지만 이미 첫 만남에 120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준 나로서는 그 뻔한 말마저 반가웠다. 그는 오전에 조카들이 놀러 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했고, 나는 저녁에 성당을 갈 거라며 소소한 이야기를 몇 번 더 주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안 잡았는데 벌써? 이럴 거면 연락은 왜 했지?
도대체 이 남자는 뭔가 싶었지만 약 17시간 만에 재개된 대화를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개팅 때 추천해준 영화 제목을 잊어버렸다고, 다시 알려달라고 말을 걸었다. 물론 나는 영화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빅쇼트'. 그걸 계기로 대화는 다시 이어졌고 남편은 그제야 다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일주일쯤 지나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 데이트 장소는 '횟집'. 겨우 두 번째 데이트에 횟집이라니 조금 생경한 느낌이지만 그가 횟집을 예약해둔 이유가 있다. 내가 여기에 심쿵하고 말았지.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는 토요일은 어때요?' 물었는데 하필 토요일에 중요한 선약이 있었다. 바로 의느님과의 약속이. 그날은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나는 서른 평생을 무쌍꺼풀에 만족하며 살았다. 가끔씩 사진을 찍을 때면 눈이 좀 더 크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길고 매끈한 내 눈이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눈꺼풀이 쳐진다며 쌍수를 하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그만 홀랑 넘어가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싫다고 했을 텐데 뭔가에 씐 듯이.
어쨌든 나의 갑작스러운 쌍밍아웃(예정)에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의 반응은 침착했고 말은 유려했다.
"지금도 충분히 예쁘신데 수술하시면 더 예뻐지실 것 같아요."라는 말로 기분을 띄워주었고 2차로
"수술하면 부을 테니까 전날 음식이라도 담백한 걸 먹는 게 좋겠네요. 회 어떠세요?" 라며 내 컨디션까지 고려해 장소를 정하는 세심함을 발휘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회사 동료들은 박수를 쳤더랬지.
그렇게 그와 횟집에서 두 번째 데이트를 마치고 나는 쌍꺼풀 수술을 했다. 매일 한 시간씩 칼바람을 맞으며 걸어서인지 부기는 빨리 빠졌지만 흰자에 빨갛게 피멍이 들어 토끼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설 연휴에 수술을 하는 바람에 본가에 있는 가족들도 만나지 못한 채 장장 2주간 칩거를 했다. 지루하고 우울한 시간이었다.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쯤 매일같이 카톡을 주고받던 남편이 3번째 데이트를 신청했다. 쌍수 2주 차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나를 배려해 영화관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은 뒤 카페에 가 커피까지 마셨다. 내 피멍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남편 덕분에 나도 마음 편히 외출을 즐겼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