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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Apr 12. 2024

식당에서 최애 노래가 흘러 나올 때

“거 자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개강이 유감이었다. 동네에 활기가 돌아서 내 고요한 봄날이 끝났다. 창밖에 우글대는 대학생들은 시각화된 소음이었다. 스타벅스 3층도 평소보다 일찍 시끄러워졌다. 겨우내 여기저기서 옹그리고 있던 말들이 새싹처럼 재잘재잘 터져나온 듯했다. 청각화된 싱그러움에 미소지어지는 것과 별개로 시끄러운 건 질색이었다. 스타벅스에서 배경음악으로 풀어둔 빠른 템포의 팝송도 그럭저럭 참는 중이었다. 너희는 봄의 노래를 합창하듯이 팝송에 재잘재잘 어우러졌다. 내가 없는 곳에서 너희가 활력 돋았으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곳 인프라는 너희를 위해 만들어진 정도는 안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났다.


마스크라도 쓸 걸 그랬다. 거리로 나왔을 때 저 멀리 산이 희뿌옜고, 점심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쏟아져 그야말로 인(人)사태였다. 익명의 무더기들은 말을 뿜어대며 부글부글댔다. 아직 부모님 등골을 빨아 먹을 수 있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대책 없는 안도감과 비현실적인 희망으로 그득한 말거품들이 하이톤의 웃음으로 톡톡 터졌다. 돈으로 된 아지랑이가 자영업자들의 훈기를 간질거릴 것과 별개로 무질서한 건 질색이었다.


중앙 도서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앙 도서관이야말로 너희를 위한 인프라였지만 정작 너희가 잘 사용하지 않아서 내 최후의 안식처였다. 적진 중심에 내 천국이 포로처럼 잡혀 있는 형국이었다. 지역 주민으로서 비용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얻었지만 남의 집 가는 기분이어서 스타벅스만큼 마음 편하지는 않았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유비의 아들을 품에 안고 조조의 정예 호표기를 관통하는 조운 자룡의 비장함을 떠올렸다. 내가 품은 것이 망국의 군주가 될 유선이라면 굳이 도서관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캠퍼스 안으로 5분쯤 걸어들어가자니 귀찮다는 거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이른 점심을 먹었다. 예상보다 1시간쯤 일찍 나왔기에 평소보다 가볍게 먹으려고 KFC에 갔다. 햄버거는 간식과 끼니 사이의 음식이었고, KFC는 대학 정문 옆 도서관 가는 길에 있었다. KFC 손님들은 북적북적, 죄다 남자였다. 햄버거가 제육볶음 같은 것이었나, 허버허버, 쿰척쿰척, 군대 같았다. 우리는 공존하되 묵은 우비 냄새 같은 찜찜함을 공유하지 않았다. 각자 허기 지우는 미션을 개별적으로 수행할 따름이었다.


내 몫의 햄버거 세트를 들고 창가에 앉았다. 아이돌 음악이 쿵쾅댔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k-pop인 정도는 알았다. h.o.t나 s.e.s 때부터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아서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똥 피하다 설사 만난 꼴이지만 애초에 식당은 시끄러운 공간이어서 대수롭지 않았다. 대학가 식당들은 대체로 k-pop을 틀어댔다. 내 입장에서는 환기되지 못한 실내 소란에 더해진 공간 오염이었지만 저렴한 식사에 지불하는 부가세 정도로 생각하면 감내할 만했다. 어차피 너희들 공간에 내가 기생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거만하기만 주제에.”



28년. ‘시끄럽다’는 이질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거만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닥치고 내 말 들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곡 전주를 들은 순간 찌릿했다. [시대유감]은 내 말이었다. 내가 영혼을 실어 좋아한 연예인은 서태지가 유일했다. 며칠 전 들었던 에스파의 리메이크곡이겠거니 했다. 에스파 버전은 별로였지만, [시대유감]은 그 자체로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서태지 버전이었다. 뜻밖의 선물에 완벽하게 저격당했다.


옛날 노래는 그 시절의 향수를 담고 있다지만, [시대유감]에 향수는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할 당시는 조금 특별해서 호감 갔던 가수였고, 1999년에서야 앨범을 사 모았다. 1996년생 [시대유감]을 1999년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노래방에 갈 때 꼬박꼬박 불러오고, 지금도 종종 듣는 노래라 [시대유감]에는 멈춰버린 시절이 없었다. 늘 내 진행형이지만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노래가 대학가 KFC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곳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았다. 28살.


이어폰 밖 공공장소에서 타인과 함께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태지가 대단했다고 해도, [시대유감]은 대중에게 알려진 곡도 아니었다. 외국도 아니고 밀림을 헤매다가 한국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징글징글한 초록 무더기 속에 내려진 유일한 구원, 나도 세상에 읽힐 수 있는 가능성, 내가 이곳에 있다는 깊은 실감, 먹던 것을 멈췄다. 노래를 나지막히 흥얼거리자 세상이 고요해졌다. 너희들의 소리가 [시대유감]과 합주되는 한, 너희는 나의 우리였다.


겨우 노래 하나가 그날의 색깔을 뒤집어 (뚜루룬 뚜룬) 새로운 (뚜루룬 뚜룬) 세상이 (뚜루룬 뚜룬) 왔다. 스타벅스와 KFC에 들끓던 역병의 색깔까지 [시대유감]으로 도포되었다. 오후에 일어날 일도 같은 색깔일 것을 확신했다. 그날은 그냥 좋은 날이었다. 먹지 못한 설렁탕을 바닥까지 비운 운수 좋은 날이었다. 간주 들어갈 때,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햄버거는 세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음식이었다.


내가 좀 더 많은 노래를 좋아했더라면 세상은 좀 더 안온해졌을 것 같았다. 적이 우리가 되는 가장 부드러운 방법, 노래였다. 노래는 영혼의 유전자였다. 이질성에 배타적이고 동질성에 우호적인 것은 본능이므로 노래를 공유하는 것으로 타인과 영혼의 근연도를 높여나갈 수 있다. 남자 아이돌에 대한 거부감이야 유전자 수준에서 작동하는 반응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뉴진스와 르세라핌 멤버라도 구분할 줄 알았더라면, 아이유나 임영웅 노래를 들었다면, 나도 좀 더 큰 ‘우리’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너무 좁다.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너희를 제거한 소리야말로 내 삶의 끝에서 들려오는 내 삶을 포기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노래를 다 듣고 나서 다시 걸어도 되었지만, 이미 완충된 기분이었다. 신규 학생 학부모님이었다. 전날 수업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당신들의 소리 덕분에 내 삶이 포기되지 않음을 안다. 공간에 퍼지는 노래 하나로, 바로 오늘이 두 개의 봄이 떠오르는 날이다. 내 가슴에 맺힌 독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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