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마데카솔도 아니고
9월. 창을 여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역대급이었던 여름이 지나갔음을 실감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매년 더 더워질 일만 남았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듣긴 했지만, '설마'하며 애써 한 귀로 흘린다. 내년은 그래도 올해보다는 괜찮은 여름일 거야 하면서.
한낮에 밖을 나다니기 두려워질 만큼 더운 여름이었지만, 주말만 되면 아이들은 밖에 나가자고 성화였다. 몸속에서 계속 솟아나는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해서일까. 주중에 일하느라 너덜너덜해진 몸을 소파 속에 파묻은 채 저 깊숙이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아빠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 그런 마음 따윈 꿈에도 생각 못할 때가 인생의 호시절이다.
이리저리 팔을 붙잡고 흔들어대는 성화에 결국 더 게을러지지 못하고(!) 함께 밖으로 나서곤 했다. 일요일 두세 시, 함께 동네 놀이터에 나가고, 공원을 누비고, 배드민턴을 쳤다. (얘들아 왜 꼭 하필 꼭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을 고르는 거니… 낮잠이라도 자면 좋으련만.)
그러던 여름의 중간이었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나가기로 했다. 뉴스레터를 쉬는 동안 이제 마감 없다 신난다 콧노래를 부르며 글쓰기를 아예 놓아버린 아빠와 달리, 둘째는 그동안 맹렬한 연습 끝에 네발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는 데 성공했다. 오빠는 3학년 때나 두발자전거 탔는데 저는 1학년인데 벌써 두 발자전거 탄다며 의기양양해진 그녀는 집 앞을 벗어나 멀리 공원까지 타고 가자고 졸라댔다.
그 후로 종종 아이들과 동네 자전거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서 시작해서 주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반환점인 공원 편의점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컵라면, 또는 떡볶이 한 그릇을 사 먹고 돌아오는 한 시간 나들이 코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마주하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줬고, 공원 속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줬다. 별다른 이벤트 없는 여름 주말 오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자전거 타기만 한 것도 없구나 싶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부라보콘 하나를 입에 물고 자전거에 올라탔는데, 첫째가 “아빠…!” 하고 불렀다. 뒤를 보니 아이 무릎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편의점에서 제 자전거를 타러 나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 좀 컸다고 울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아이고야…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소독약과 후시딘, 반창고를 받아서 간단히 처치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상처 부위가 넓어서 다시 연고를 바르고 좀 더 넓은 드레싱 밴드를 붙여주었다. 아이가 커가니 무릎이 성할 날이 없구나… 하면서.
그리고 얼마 후에 아이 무릎을 보니 검붉은 흉터가 생겨났다. 그것도 꽤나 크게.
속이 상했다. 아들이라고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걸까. 후시딘 바르는 정도로는 커버가 안 되는 꽤 깊은 상처였던 걸까. 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나. 아이들 크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 하고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던 건가 싶어 어느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의 피부에 생긴 상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모기 물린 곳을 벅벅 긁어대는 통에 이곳저곳 흉터가 남곤 하는데, 팔다리에 있는 크고 작은 흉을 볼 때마다 내 몸의 흉처럼, 아니 내 몸에 있는 흉터보다 더 보기가 아리다. 그런데 이번엔 길이가 꽤나 긴, 두껍고 짙은 흉터다. 습윤밴드를 썼어야 했나. 흉터관리 연고를 계속 쓰면 좀 나아지려나.
아이의 몸에 있는 흉터를 다 내 몸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 옮겨주고만 싶다. 차가 긁힌 거라면 감쪽같이 덴트라도 할 텐데, 몸에 남은 세월의 흔적은 완벽히 지울 방법이 없다. 어릴 적 한문 시간에 배웠던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외웠던 그 문장이 이제야 피부로 와닿는다.
아이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아이가 다치면, 부모는 더 아프다.
보드라운 모습으로 아이가 태어났던 순간을 부모들은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이 다치면 그걸 보는 부모들은 못내 속이 상한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속은 그야말로 새까맣게 타들어갈 게다.
관절이 혹시 상했을까, 혹시 자라면서 흉터가 더 커지는 건 아닐까 하여 늦게나마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건 아니라고, 지금은 그저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부모를 안심시켰다.
더는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기를.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 아이들 헬멧을 씌워준다. 아이들은 “더운데 안 쓰면 안 돼?” 하고 귀찮아라 하지만, 그래도 “안돼.”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턱끈을 너무 헐겁지 않게 조여준다. 다치지 말라고. 혹여나 다치더라도 아주 쬐끔만 다치길 바라면서.
마흔이 넘어서 그런지 피부에 생채기가 나면 예전만큼 빠르게 회복이 안된다. 얼마 전 다리에 긁힌 상처도 그 모습 그대로 흉터가 생겼다. 발목 위로 길게 난 흉터를 보며 그제야 아차 싶다. 모친에겐 되도록 보여드리지 말아야겠다. 흰머리가 점점 늘어가는 자식도, 부모 눈에는 여전히 어제 낳은 것만 같은 자식일 테니.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썬데이파더스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