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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오발 Nov 21. 2016

코끝이 시려 올 땐 프라하 한잔

발음만으로 설레는 프라하 이야기

 프라하의 겨울은 춥지만 아늑하다.


요즘 같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프라하에 가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다 마쳐도 밖은 어둑어둑하다. 

호텔 문을 나서면 코 끝을 때리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준다. 

거리 곳곳에는 흰 눈이 길 옆으로 쌓여 있고, 빨간 트램이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지나간다. 

관광지에는 따뜻한 코코아와 와인을 노점에서 판매하는데 거기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할까? 


겨울이 시작될 무렵 프라하 성을 오르면 단단히 무장을 마친 근위병이 각 초소안에 밀랍인형처럼 서있다.

그들도 추위를 대비하는지 털모자와 장갑을 낀 채 코 끝을 붉게 물들이고 관광객을 맞이 한다. 

프라하성 정문 

프라하성은 구시가지 외곽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항상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꾹 참고 오르면 비로소 프라하의 겨울 아침을 내려다볼 수 있다. 

북적대는 여름과는 달리 도시 전체가 대부분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다.

하얀 눈이 덮인 색색깔의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분 좋은 장작 냄새와 함께

사람 사는 기분이 든다. 


내가 가본 곳 중 최고의 스타벅스


사실 프라하 성을 오르면서 기분이 좋은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스타벅스가 있기 때문이다.

성의 정문 앞 광장에서 유심히 찾아보면 스타벅스 깃발을 볼 수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그 스타벅스 마크가 아니라  조금 유심히 살펴봐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경치 좋은 지점이 아닐까 한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다. 

(보통 프라하 성 정문에서 길거리 악단들이 공연을 하는데, 대부분 그들 덕에 넋이 나가 있다.)

창가에 있는 자리에 앉아 창 밖으로 프라하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곳에 앉아 하루 종일 꼼지락 대는 상상을 하게 된다. 

하루는 그곳이 너무 좋아, 프라하성 일정이 끝나고 구시가지까지 내려갔다가 

일행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다시 올라갔던 기억도 있다. 

나에게는 책이 술술 넘어가는 도서관이자, 와이파이를 빵빵하게 쓸 수 있는 pc방이며 

카페인을 보충하는 커피숍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고마운 지점이다. 

스타벅스 프라하성 지점
창가 자리에서 보이는 모습


이곳 스타벅스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회복 한 뒤 프라하 구시가지까지는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다. 아니 꼭 걸어서 가야만 한다. 

구시가 까지 이어져있는 '네루도바' 거리는 과거 귀족들의 거주 지역으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특히 집집마다 문패 역할을 했던 심벌이 건물에 새겨져 있는데, 그것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 글을 잘 모르던 사람들을 위해 표시를 해두었다고 추측한다. 

열쇠 모양, 순무 모양, 말발굽, 마차 바퀴, 뱀 등등 다양한 상징물들이 건물 곳곳에 박혀있다. 

지금은 대부분 각국의 대사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서 다양한 국기가 펄럭인다. 

(참고로 한국 대사관은 이곳이 아닌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00번을 봐도 또 보고 싶은 야경


프라하의 야경은 유럽 전역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물론 단연 1등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라고 하지만, 못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특히 까를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본인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며 속상해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여름철에는 대략 9시가 조금 넘어가면 까를교 위에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저 멀리 프라하성에도 불이 켜져 로맨틱함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과 김주혁의 키스신을 찍었던 까를교 입구에는 

키스신을 떠올리며 따라 하는 커플들도 자주 보이니, 솔로들은 주의하도록 하자. 

프라하 까를교의 야경


유럽에는 소원을 비는 장소들이 꽤 많이 있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 바르셀로나 몬세랏의 검은 성모마리아상, 바티칸의 베드로 상 등 

하지만 가장 약빨(?) 좋은 곳은 프라하 까를교의 얀 네포무크 동상에서 비는 소원이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곳이다. 

2007년 총 3가지의 소원을 빌었는데 모두 다 이루어졌다. 

물론 실현 가능한 소원들이었다. 우주정복, 로또 당첨 이런 건 아니었다. 

떠올려보면 소원을 빌었던 덕에 그것들을 목표로 더 열심히 뛰어오지 않았나 한다. 

다시 한번 네포무크 신부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뭐니 뭐니 해도 프라하 구시가지 


명칭이 참 이쁘다고 생각한다. 

'구 시 가 지 ' 

영어로는 올드타운이라 표현하지만, 구시가지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도로도 울퉁불퉁하고 복잡하지만 곳곳이 세월을 담고 있다. 

신시가지라는 새로운 곳이 생겨났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구시가지를 더 좋아한다.

오래되었다는 말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구시가지 천문 시계탑 앞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즐겁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 덕에 인종 전시장을 보는 듯하다. 

특히 매시 정각이 되면 시계탑 내부의 인형들의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마구 모이는데 여름철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많다. 

유럽의 3대 허무라는 타이틀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허탈감을 안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만 해도 체코는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았다. 

유럽 기차를 편하게 탈 수 있는 유레일패스도 물론 사용이 불가했다. 

도시의 치안은 그리 좋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여러 명의 일행이 소매치기를 당했다. 

특히 구시가지 천문 시계탑! 매시 정각에 모이는 사람들 틈으로 소매치기들도 합류한다. 

곳곳에 경찰들도 나타나지만 그들의 손은 눈보다 빠르다. 

때문에 프라하 여러 곳의 경찰서 위치도 알게 되고 한국에서도 가지 않는 경찰서를 

자주 들락 거렸다. (소매치기를 당하면 분실 증명서를 경찰서에서 발급받아야 보험처리가 된다.) 

가끔 주말이면 구시가지 광장에서 조그만 마켓이 열린다. 

마켓에서 빠질 수 없는 먹거리들 (핫도그, 트레데닉) 등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자.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속내는 따뜻한 체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짧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어쩌면 좀처럼 느끼기 힘든 행복함이 그곳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구시가광장


필살기가 있다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프라하에 나의 필살기가 하나 있다. 

조용하기로는 단연 최고! 전망은 둘째 가라면 서럽다.

블타바 강 근처이긴 하지만 번화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하지만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다. 

이름하여 '비세흐라드'  (가는 법은 구글에서 도와줄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도 잠시 등장했던 나름 유명한 장소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많이들 찾지는 않는다.

오래전 체코의 조상들이 프라하 지역에 처음으로 자리 잡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그때 쓰던 성곽은 아직 남아 있어 거뭇거뭇 때가 탄 거처럼 새카만 벽들을 보고 걸을 수 있다. 

성곽 안에는 산책하기 좋은 길과 멋진 공원이 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눈길을 끄는 늠름한고 화려한 성당도 있다.

그리고 체코의 유명 인사들이 잠든 무덤도 함께 있다. 

무덤이라고 무서워 말라, 우리네 무덤과 많이 다르다. 

색색깔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기발한 모양의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체코의 자랑스러운 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가끔 이곳을 갈 때는 꼭 그들의 음악을 미리 준비해 듣곤 한다. 

무덤을 지나 공원을 지나 전망대에 간다면, 때마침 그 시간대가 해 질 녘이라면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나의 조국 몰다우' '유모레스크'의 멜로디가 당신의 감수성을 자극할 것이다.

 

비세흐라드 전망대의 해질녘



코 끝이 시려오니 프라하가 간절하다. 

춥지만 포근한 그곳, 오늘 같은 날은 덜컹이며 달리는 트램을 타고 

바삐 걸어 다니는 프라하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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