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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Apr 02. 2023

테드로 가시죠.

사내 강사 모집


이 글을 보고 그만 현실에서 허덕거리고 살던 내겐 작은 꿈이 피어올랐었다. 무엇에 홀린듯 지원했고 사내 강사가 되었다. 이미 5년 전 일이다. 그후 나의 첫 강의는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다. 강의 준비부터 마치고 나서 피드백을 받을 때까지 가슴에서 뛰어오르던 생동감을 잊을 수가 없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도 이보다 더 뛸 수는 없을만큼. 천신만고끝에 복직과 적응을 해나가는 중인데 다시 한번 강사 교육을 받았다. 3일간 몹시 긴장했고, 회사 밖에서 하던 강의 경험이 과연 회사 안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지 떨면서 적용해보았다. 결과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망신만 당하는 것은 아닌지, 애 둘과 힘겹게 허덕이며 칼퇴근을 낙으로 살아가는 아줌마가 수년 전 회사에서의 강의 경력을 가지고 아직도 쓸모있는 사내 강사가 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많이 걱정했고 시범 강의에서 완전히 망쳐버리는 머릿속 그림을 힘겹게 지워가면서 참여했다. 마지막 모든 과정을 마치며 준비한 강의를 선보였다. 잘 했고, 잘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과정에 참여한 사람 중 가장 잘했다는 말, 앞으로 내 업무 분야에서 강의가 필요하면 나를 찾겠다는 교육 담당자의 피드백을 받았다. 안심했고, 동시에 감사했다.


최근 몇 년간은 글 쓰는 것 못지않게 강의 잘 하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쏟으며 살아왔다. 천성이 쾌활하고 발랄하지 않아도, 조곤조곤 제 할 말을 강렬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읽으며 말의 본질, 전달력의 핵심에 대해서 연구하기도 하면서 나는 정말 들을만한 말을 하는 사람, 메시지로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현재진행형 꿈이다.


망신만은 면하자라고 덜덜 떨며 준비하던 나는 막상 마이크를 잡자마자 돌변했다. 혹자는 예상 외로 ‘뻔뻔하게’ 잘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고 해준 말이란 걸 안다. 나는 회사에서 여전히 친절한 웃음을 잃지 않고 때로는 고구마 같은 사람으로 대부분 참고, 많은 시간 할 말을 못하며 사는 중이다. 그래도 강의 할 때만은 감사하고 행복하며 기쁘고 자신감이 생긴다. 나와 강의 사이엔 무슨 연결고리가 있길래?


마이크를 잡고 한 명 한 명의 눈을 바라보니 떨렸지만 행복했고, 그래, 바로 이 기분이구나. 코로나 시대엔 느낄 수 없었던 오프라인 강의의 힘과 열정, 현장의 분위기가 이거였어. 하면서 속으로 기뻐하며 입으로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영어 강의를 하는 과정이어서 내 안의 모든 언어 세포를 살려가며 강의를 했다. 마치고 나서는 모두가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있었다.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던 사람이 갑자기 웃는 얼굴로 나와서 메시지를 쏟아내는데 그들도 놀랐을 것이다. 나도 놀랐다. 할 수 있구나, 그래. 이게 하고 싶었던거였어.


마치고는 조금이라도 더 칭찬의 말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후다닥 싸던 짐을 일부러 느리게 싸며 기쁨의 감정을 오래 느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 행동이 느려지기도 했다.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녹았고, 사람들이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듯 다가와서 하는 말이 좋았다. 그중 사내 교수님께서는 다음에 테드로 가야겠다며 농담을 했다. 테드. 정말 가보고 싶은 곳에 대해 듣자 또 조용히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일종의 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나의 상사는 <마법의 꿈지도>를 읽고 ** 과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를 바이올렛이라고 불렀다. 회사에서 나를 바이올렛으로 부르는 사람이 한 명 추가되었다. 그녀는 나를 십 몇 년째 알고 있는 사람이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자세히 이해할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어떤 모습인지, 어떤 얼굴로 직장생활을 했는지 잘 아는 사람이고 그 이면에 얼마나 처절한 고민과 노력을 해왔는지 책을 보고는 많이 놀란듯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회사에서도 꿈지도 강의를 하라고 했고 외부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모두 수락하라고 했다.


감사했고 떨렸다. 며칠 사이 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홀로 외로운 길을 걷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 나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회사 안과 밖에서 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중이라는 걸 따뜻하게 받아들여주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상황이다. 나는 이렇게 되기 위해 얼마나 참고 견뎌왔던가? 작년부터 뚫고 지나왔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호사는 내가 평생을 거쳐 갚아나가도 부족하다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감사함을 의미로 나누고 싶다. 가장 기뻤던 것은 상사 본인의 꿈을 생각해보고 그것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내 책을 읽고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그 점이 가장 기뻤다. 집에 와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이 일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복직하기 전부터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점’을 드디어 보았다. 소설 수업을 듣고 나오던 길에 벚꽃과 봄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신촌과 이대 앞을 총총히 걸었다. 그러다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듯 철학관 건물로 빨려들어갔다. 흰 수염 위에 마스크를 한 도사님 앞에 앉았고 나의 전업작가로의 경력 전환과 성공 여부를 물어봤다. 꿈지도 그리는 사람이 철학관에 간 것이다.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여러가지를 이야기했다. 소상히 적어와서 남편과 공유했다. 남편은 ‘그래서 자기는 벤츠를 탈 수 있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웃었다.


2023년은 또 지금의 자리에서 무척 바쁘게 사는 중이고 연말까지 하고 싶은 일이 짜여져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잘 살아갈 틀을 만드는 중이다. 여전히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옷을 구입하며 주부와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어떤 때엔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내 삶의 심지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깊은 아픔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뼈가 저리는 슬픔이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것을 어떻게 치료하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지가 삶을 다른 모양으로 만든다. 나도 그 과정에 있다. 무척 아팠고 쓰라렸지만 다시 또 웃을거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여전히 종이에 일정관리표를 쓰고, 회사 다이어리에도 업무 세계를 쌓으며 살아간다. 작은 스케치북 하나를 사무실에 두고 회사에서 만나는 아이템들을 5분 이내에 가볍게 스케치하고 그 옆에 단상을 적는 것도 시작했다. 그 스케치북이 꽉 차면 나는 눈에 많은 것을 담고 퇴사의 시기와 가까워져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 내 눈이 닿는 장면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그림을 좋아한다. 내 눈에 닿는 많은 것이 이전보다 달콤하게 느껴지면 좋겠다. 인생은 쓴 부분과 단 부분이 꽤 잘 어우러져 있다. 쓴 부분을 먹을 때면 얼굴이 찡그려지고 삶은 참 맛 없다고 느껴지지만, 단 부분을 먹을 때는 오늘처럼 두둥실 하늘에 닿은듯 몸이 가벼워지고 입도 역시 가벼워진다. 그리곤 마음속에서 ‘요즘은 왜 이렇게 행복하지?’ 같은 생각이 저절로 피어오른다.


이런 때에도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많은 아픔과도 역시 맞닿아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내가 어떤 이들의 관심과 격려로 다시금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잊지 말아야겠다. 많은 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소수의 진한 인연을 조금 더 굵게 기억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옆에 있어주고 싶다. 아픔을 지나온 사람, 괴로움을 이야기해도 괜찮은 사람, 동시에 수줍은 꿈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 옆에 있는 어항 속 물고기가 자꾸만 밥을 달라고 입을 뻐끔거린다. 그렇게 물고기도 나도 잘 살고 싶어서 제 몫의 노력을 한다. 물고기 밥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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