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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May 01. 2023

아이의 수학 문제집을 함께 풀며.

어제부터 딸의 수학문제집을 함께 풀고 있다. 이제 겨우 이틀 됐는데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행복하다. 이상하다. 올해 담임선생님은 참 좋은 분 같다. 딸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매주 수학문제집을 풀어오라는 것이 숙제인데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지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학 학원에서 올커버 암보험처럼, 풀커버를 해주는지는 모른다. 나도 딸이 수학 앞에서 떠는 모습을 보며 잠깐 학원에 보내야 되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 마음을 싹 지우고 내가 하루에 1시간 정도를 딸에게 할애하고 있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핸드폰 보고 빈둥거리던 시간을 딸에게 쏟는다. 딸과 교자상에 나란히 앉아서 수학문제집을 푸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30여년전 아버지께 수학을 배우던 기억도 떠오르고, 수학 학원 다니고, 과외 받던 생각도 떠오르면서, 딸이 나중에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도 궁금해질만큼.


수학 문제 하나 하나에 표정이 변하고, 내려앉던 가슴을 쓸어올리기도 하는 딸을 보며 과외 선생님 앞에서 기가 죽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 앞에서 기가 죽던 내 모습이 비친다. 수학 문제 하나 더 잘 푼다고 해서 인생이 평탄하게 변하는 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랬다. 수학 100점이 인생 100점을 보장하지도 않는 것을. 그렇게 기를 쓰고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


스터디 플래너에 공부일지를 쓰고 있다. 딸이 먼저 오늘 공부한 소감을 적고, 나도 짧은 코멘트를 남긴다. 그러면서 서로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문제집 앞에 앉은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 것이, 부모 자식 간에 공부로 얼굴이 붉어지고 냉가슴이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금부터 철학을 세워가는 중이다. 함께. 대략 1시간 정도 수학 문제집을 푸는 동안 아들은 옆에서 알짱알짱 거린다. 안아달라고 한다. 여동생에게 엄마를 1시간이나 빼앗긴, 겨우 한 살 많은 오빠의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그 녀석을 강아지 쓰다듬듯 옆에 두고 쓰다듬으며 수학을 가르친다. 늘 코에 콧물이 매달려 있고 오늘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한 초등 3학년 오빠야의 마음도 보드럽게 품어준다.




근로자의 날이라 휴일을 보낸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 요즘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어제는 밤을 새다시피 잠을 못 잤고 오전에 밀린 잠을 잤으며 오후엔 아이들과 치과, 안과에 다녀왔다. 안경점에 가서 아들의 안경을 맞추기도 했다. 그 작은 생명체가 눈에 앞으로 평생 안경을 걸치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서 제일 좋은 안경알로 맞추고 돌아서다보니, 어차피 6개월에 한 번씩 시력검사를 새로 하고, 공놀이도 자주 하느라 그냥 그럭저럭한 것으로 했어도 충분했겠다는 마음이 뒤늦게 들었다. 그래도 그냥 비싼 안경을 맞추고 돌아왔다. 아들아, 청년이 되면 라식 수술 하자. 딸은 먹성이 좋아 무엇이든 잘 먹는다. 점점 배가 볼록해지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딸을 보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정말 건강하게만 커다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 주말에는 내 인생 첫 단편소설을 합평하는 날이었다. 예상했던대로 에세이 같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입문반이 끝나고 나는 기초반으로 들어가서 기초를 닦으려고 한다. 지금은 1인 다역을 하며 사는 중이라 여윳시간이 없는데 그럼에도 소설 배우는 것을 놓고 싶진 않다. 이렇게 기본을 만들어놓는 일, 토대를 닦아놓는 일이 훗날 어떤 역할을 할 지를 생각하며 우선 꾸준히 배우고 소화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퇴직 가능한 시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꽤 자주 생각한다. 그때까지 대략 40여개월 남았다면 나는 앞으로 얼마나 외부 강의를 하게 될까? 빈도가 점점 많아질까? 주말동안 고민하다가 다음번 강연도 수락을 했다. 이젠 첫 번째의 후폭풍보다는 덜하겠지 라는 큰 기대를 안은채. 그렇게 예상컨데 30번 정도의 외부 강의를 하고 나면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한 경험을 갖고 있는 0년차 강사가 되는 것이다. 퇴사하는 그 날엔 나의 저서가 몇 권은 더 있길 바라고, 마음도 철갑처럼 단단해져있길 바랄 뿐이다.


실은 직장인이면서 직장 밖으로 이탈할 계획을 가지고 사느라, 평일엔 직장인이면서 주말엔 소설을 배우러 다니느라,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 읽고 공부하느라, 나는 몹시 지친 상태이다. 몸의 긴장도가 높아져서 정신이 밤까지 쉬지를 못하고 그래서 불면의 밤을 꽤 자주 보낸다. 이것도 감기처럼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가야할까 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는데 우선 버티고 있다. 새벽 1시쯤 잠이 깨는 날은 그때부터 아침까지 다시 잠을 자지 못한다. 4~5시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을 깨워 출근 준비를 해야 할때는 마음까지 두부가 되어버린다. 작은 충격에도 부서진다. 그래도 계속 놓지 않고 어떤 끈을 부여잡고 살아간다. 성장과 꿈, 희망과 간절함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끈을.


그리고 시간을 십 년 단위, 이런 식으로 최대한 길게 보며 사는 중이다. 오늘 하루를 보고 살아가면 나는 지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늘만해도 치과, 안과, 안경점, 음식점까지 아이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전화 예약을 하고 시간을 맞춰가며 얼마나 또순이처럼 살아왔는가. 그러니 지치고 밤에 잠이 달아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루를 고통으로 바라보지 않고, 넓은 시간을 완성해가는데 꼭 필요한 충전과 필수 노동의 시간이라고 여기며 사는 중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다방면에 걸친 근로를 얼마나 응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젠 유튜브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고 내가 어줍잖이 출연했던 영상들을 보며 나를 놀리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뭘 잘 잊어버리는 사람, 허리가 자주 아프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사람, 요리를 잘 못 하는 사람, 화를 참지 못해 버럭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또 이렇게도 알고 있다. 어설프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


소설쓰기반 글친구들로부터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분명 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라는 인격체를 평가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 글은 온전히 내 이야기여서 그런 듯 하다. 요즘 잠이 오지 않고 유독 모바일 증독 증세는 심해져서 내가 쓴 브런치 글을 쭉 읽어봤다. 재밌었다. 내가 정말로, 참말로 열심히 살고 있어서 그걸 읽으며 ‘이 여자 진짜 열심히 사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아 또 웃음이 났다. 글쓰기반 친구들도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여전히 내 책상의 왼쪽편에는 시간관리표가 놓여있고, 거기엔 3개월치의 일정이 늘 한 눈에 들어오게 정리되어 있다. 물론 책상의 왼쪽과 가운데를 제외한 나머지에는 온집안 식구들에게 필요한 온갖 것들이 또 점점 쌓여가고 있다. ‘응. 모르겠는건 우선 엄마 책상에 놔둬.’가 불러온 마법이다. 우선 앞뒤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며 사는 중이다. 가끔은 발걸음을 떼는 것이 안 될 때가 있을만큼 어떤 때엔 벅차다. 혼자 사는 몸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 둘이 딱 버티고 있는데 엄마가 뭘 해보겠다고, 아내가 자리를 비우겠다고 들썩 거리는 자체가 첫 번째 난관이다.


그러다보면 자꾸만 철학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꼭 해야 하는가?

이걸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진짜 바라는,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과정에서 얻고 싶은 것은?

잘 안 된다면 대책은?

이와중에 나를 위로하는 것은?

꿈과 현실말고 그 사이 다른 통로는 확보했는가?

일탈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여러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늘 돌아오는 곳은 한 군데다. 나. 내 자리. 내 마음.

내가 아닌 것 같은 얼굴은 하고 싶지 않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은 품지 않고 싶다. 점점 나다워지는 중이다. 점점 내 진짜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남이 바라봤을 때 멋져보이는 거 말고, 그냥 나로 살았을 때 자연스럽고 편하면서 꽤 기분 좋은 그런 나로.


아이들은 9시가 되기 전에 꿈나라로 곧잘 향한다. 이젠 내 차례다. 요즘은 나를 찾는다고, 꿈을 수놓는다고 더욱 바빠져서 잠을 달게 자지 못한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오는게 사실은 부담스러울만큼. 조용하게 책을 읽고 내세우고 싶은 나 말고, 정말 편안하고 그 자체로 평온한 나를 많이 만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일기장에 뭐라도 끄적일 때도 그렇고 단백한 에세이를 읽을 때도 그렇다. 이젠 나를 만나러 갈 시간. 그냥 나다운 냄새로 나다운 자세로 나답게 잘 자고 싶다. 잘 자고 일어나서 꿈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 그게 요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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