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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따로 또 같이

by 자낫


미국 TV 시리즈, '프렌즈'를 아는가? 집값이 살인적인 뉴욕에서 2-30대 남자 셋, 여자 셋이 한 집에 같이 살며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 고민에 대한 에피소드를 그린 90년대 초초초 히트작이다. 서울의 호프집에도, 시골 가게에도 프렌즈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힙스터의 상징이었다.


2015년 겨울, 프렌즈같은 낭만을 꿈꾸며 셰어하우스를 알아봤다. 사실 좁은 원룸살이가 지겹고 30평 이상의 최신 아파트에서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프라이버시를 좀 포기하더라도 널찍하게 살아보자, 적당한 돈으로. 그런 마음으로 셰어하우스를 찾았다. 월세 70만 원 내던 원룸의 2년 계약이 끝나가는 시기였다. '피터팬의 방 구하기' 네이버 카페를 열심히 뒤졌다. 몇 군데 셰어하우스를 임장 했으나 젊은 직원(이라 쓰고 영업맨이라 읽는다) 몇을 둔 기업형이었고 당장 입주를 안 하면 자리가 없다는 식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오히려 꺼림직했다. 공동으로 쓰는 거실과 주방이 드넓었고 호주의 백패커 호텔에 묵는 느낌이었다. 침실은 1인실부터 다인실까지 있었다.


그러다 살고 있던 원룸에서 길 건너 바로 있는 10년 된 아파트, 36평의 셰어하우스 입주민 모집 공고를 보았다. 조용한 30대 중반 여성이 올린 첫 입주민 모집 공고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 길고 풍성하고 윤기 있는 머릿결이 인상적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전라도 출신 서비스 교육 강사였다. 거실에 여덟 명의 가족사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청바지에 흰 티를 받쳐 입고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집을 지켜주는 듯했다. 몇 번이고 신중하게 고려해서 쓴 티가 나는 계약서와 생활 규칙을 읽고 사인했다. 나는 조금 저렴한 2인실 방을 쓰기로 했다. 룸메이트는 20대 초반의 취준생이었다. 셋이서 종종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다. 서로의 사정을 알고(신원을 알아야 안심하고 같이 살 수 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불편함도 물론 있었다. 입주 초반에 룸메이트가 자다가 내가 화장실 다녀온 소리에 욕을 뱉었다. 다음 날 티타임을 요청하고 면대면으로 풀었다. 나중엔 그 애가 성냥을 태워 속눈썹을 올려주는 스킬까지 가르쳐주었다.


이윽고 종로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했다. 가진 돈에 맞춰 직장 근처 북촌 한옥마을의 한 셰어하우스에 거처를 마련했다. 첫 셰어하우스 경험이 나쁘지 않았기에 또 셰어하우스를 구했다. 보증금과 월세는 반비례했고 나는 보증금을 최대한 올려 1인실을 계약했다. 그것이 나중에 화근이 되었다. 전세보증금 사기를 당한 것이다.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계약서를 썼다. 후에 알고 보니 부동산을 거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전전세. 셰어하우스 운영자가 집을 빌려 자신이 빌린 집을 또 세로 내놓은 식이었다. 부동산법이 적용되지 않는 구조였다. 뭘 믿고 돈 3천5백만 원을 덥석 걸고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퇴거 후 2년 넘게 피 말리는 법정 싸움 끝에 겨우 받아냈다. 당시 전봇대에 붙은 '떼인 돈 대신 받아드립니다'라는 스티커가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보통 셰어하우스의 보증금은 2~3개월치 월세이고 그 정도가 합당하다. 특히 정식으로 공인 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거래하는 셰어하우스에서 어차피 돌려줄 돈을 그 이상 요구한다면 재정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두 번째 셰어하우스의 끝은 비극이었으나 생활하는 동안 즐겁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10~30대 남녀로 교사, 의사, 회사원, 영화감독,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도 있었다. 같이 밥을 해 먹거나 음식을 시켜 먹었다. 저녁에 집에 오면 사람이 있는 게 좋았다. 사생활과 공동생활이 제법 균형을 잘 이루었다. 당시 썸남이 셰어하우스에 사는 대안학교 청소년과 콘서트에 가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 집에서 사는 멤버들끼리 파티를 했는데 그에게 전화가 와서,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했더니 바로 와서 어울렸고 마침 누군가 공짜 티켓 2장이 있었고, 마침 시간이 되는 둘이 가게 된 것이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셰어하우스는 성행중이다. 규모와 운영 주체는 다양하다. 셰어하우스를 기업형으로 확장한 개념인 코리빙 스페이스도 있다. 월세는 1백만 원 안팎이다. (2022년 기준 투어 후기 참고, 2022년 코리빙 스페이스 비교표) 침실은 따로, 욕실, 주방, 세탁기, 거실(라운지)은 같이 쓴다. 입주민만을 위한 도서관, 영화관, 핼쓰장, 회의실이 있는 곳도 있다.


슬픔의 삼청동 셰어하우스를 뒤로 하고 한 1년 반 동안 세계 여행을 했다. 호텔, 호스텔, 도미토리, 에어비앤비, 가정집 정원에 설치된 캐러밴, 캠퍼벤(일명 캠핑카), 리조트 등 다양한 공간에서 잤다. 프라이버시의 값은 참 비싸다는 사실을 생생히 체험했다. 도미토리와 1인실 비용 격차는 컸다. 독채 리조트는 더 비싸다.


나만의 침실, 나만의 주방, 나만의 거실, 나만의 욕실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차곡차곡 쌓였다. 동거인은 내가 선택하고 싶다, 내가 가진 돈이 아니라.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 더 프라이빗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망이 노크했다.


셰어하우스 시절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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