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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Jan 13. 2020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일상에서 스러져간 김동준들

[1000자 리뷰 05]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제아무리 자기를 지키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가 훼손되는 느낌은 안다. 안전한 울타리에서 막 벗어났을 때 느끼는 뿌리 뽑힘의 상태, 그 ‘최초의 충격’이 존재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사고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p14)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우리가 먹고, 마시고, 타는 일상의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있었다. 구의역 김군, 기아차 광주공장 김군, 통신업체 홍수연양, 제주도 생수공장 이민호군, CJ 육가공 공장 김동준군은 모두 현장실습생이거나 졸업생이었다.


학교에선 무엇이 잘못된 요구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현장에선 기본적인 노동조건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이들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처해 사고를 당하거나, 폭력과 비인격적 대우에 노출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김동준’에 대한 이야기와, ‘김동준들’에 대한 이야기가 1·2부로 구성돼 있다. 김동준군은 CJ 진천 공장에서 햄을 만드는 현장실습생이었다. 그는 고된 업무뿐만 아니라 잦은 회식과 위계질서가 강한 문화를 견뎌야 했다. 그러다 선임자에게 뺨을 맞는 등 폭행을 당했고, 김군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망 사건의 직접적 계기는 폭행이었지만, 김군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데에는 그를 짙은 무력감에 빠지게 한 환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장실습생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사회생활이 원래 다 그래” “조금만 더 버텨”라는 말들을 들어왔고, 버티지 못하면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생각했다.



“나한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해도 할 것 같아요. 그걸 못하면 제가 일을 못하는 게 되니까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유한고 학생 임현지양 인터뷰 p.181)



사회는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라고 말하며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가기 싫다고 안 가면 ‘부적응자’ ‘낙오자’가 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개근을 모두의 원칙으로 삼고, 쓰러질 때까지 일하고, 폭력을 감수하는 일이 정말 '잘 사는 길'일까. 위험은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일을 책임지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바로 서야 제2, 제3의 김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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