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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Jan 28. 2020

인간에 대한 이토록 따뜻한 시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북리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부터 유럽의 난민 위기까지, 타자를 이해하고 타자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는 인류의 지난한 과제였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SF를 읽는 이유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그래서 누군가는 왜 SF소설에서까지 타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 ‘골치 아픈’ 문제들과 마주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다. 김초엽 작가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장밋빛 미래를 그려내는 대신 독자들 옆에 서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할지 함께 고민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책에서 타자와의 조우를 다룬 작품은 <스펙트럼>과 <공생가설>이다. <스펙트럼>은 최초로 외계 지성 생명체를 발견하고 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한 희진의 이야기다. 외계 생명체 ‘루이’는 희진을 다른 개체의 공격으로부터 구해주고, 그의 거주 공간에 희진을 들여 보살핀다. 루이는 인간과 외형이 다르고 상이한 언어체계를 가졌음에도 타자를 환대하고 그들의 공동체에 희진의 ‘자리’를 마련해줬다. 김초엽 작가는, 이 최초의 환대가 어떤 기계나 도구의 도움 없이도 서로 다른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생가설>은 신생아의 뇌 속에 외계 생명체들이 일정 기간 공생한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성이 사실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계 생명체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작가의 가설은,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뇌 안에 사는 것이 왜 ‘기생’이 아니라 ‘공생’인지에 대한 대답이다.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해를 입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인간은 외계 생명체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은 인간에게 윤리나 사랑과 같은 가치를 주는 호혜적 관계인 것이다. 사람은 본디 누군가를 돌보면서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돌봄 당하는 존재라는 작가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타자와의 공존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배아를 결함 없는 완벽한 인간으로 개조가 가능한 사회도, 결점이 있는 불완전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신인류’들의 사회도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전자의 세계는 개조인과 비개조인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후자의 세계는 불행이나 고통이 상상 속 개념으로만 존재해 서로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불행을 끌어안고 고통과 직시하는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통해 타자와의 공존이라는 인류의 과제가 쉽지 않은 길이더라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낙관을 드러낸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 할지라도 우리가 항상 차별 없는 사회에 대해 말하고, 차별과 싸운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러한 세계의 가능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가능의 가능성’은 실패하고 무너지더라도 뚜벅뚜벅 두려움에 맞서는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대고 있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속 인물들은 상처를 받을 것을 알더라도 끝내 진실과 마주하고야 마는 공통점이 있다.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안나는 슬렌포니아라는 제3행성에 가기 위해 오지 않을 우주선을 기다리는 170세의 노인이다. 기술 발전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탓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 안나는 결국 슬렌포니아로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구식 셔틀을 가지고 광막한 우주를 유영한다. 


<관내분실> 속 지민도 생전 모성애와는 거리가 멀었던 엄마의 데이터가 분실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해 굳이 엄마의 흔적을 좇는 인물이다. 엄마의 행방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생 유민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디자이너 김은하’에서 ‘지민·유민의 엄마’가 된 그녀의 삶을 추적해간 지민은 마침내 엄마와 딸의 관계가 아닌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를 바라보고 연대하게 된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속 가윤 역시 여성이기 때문에 마주해야 하는 더 가혹한 시선들과 맞서며 우주비행사로서 본인의 목표를 달성해낸다. ‘이모’ 재경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지만 둘의 선택 모두 어떤 억압과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에 맞닿아 있다. 


‘타자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공생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대한 김초엽 작가의 답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토록 따뜻한 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쉬운, 위태로운, 유한한 존재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유한성 때문에 끝없이 탐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담담히 끌어안으며, 비록 부서질지언정 파괴되지는 않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첨단 기술은 스스로 평형 장치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 방향을 정해주는 것은 늘 불완전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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