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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Mar 10. 2020

호불호에 대하여

나는 호불호가 강한 편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렇다. 좋아하면 숨기지 못하고, 숨기려고 애써 감추지도 않는다. 싫어하는 경우에도 굳이 숨기려 들지 않고 내가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낸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 여기서 말하는 좋아하는 감정은 낭만적 연애의 협소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짚고 넘어가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 너랑 너무너무 친해지고 싶어! 네가 너무 좋아!’라고 직접 말만 하지 않았지, 거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호감을 나타낸다.


대학생 때는 주로 나의 웃음 버튼을 눌러주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개그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셈. 술자리나 여럿이 모일 자리가 생기면 일단 그 사람 옆이나 앞자리를 사수하고 그의 주변에 꼭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좋았다. ‘와 저 사람 말을 저렇게 하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등등 어떤 경탄의 순간이 오면 그 사람들을 ‘친해지고 싶은 사람 리스트’에 내 멋대로 올렸다.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른 이들과는 나눌 수 없는 것들을 나누며, 무해한 대화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오랜만에 하고 나니 돌아오는 길이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즐거웠다. 좋은 사람을 만날 때엔 만나기 전부터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까지 한껏 가득 차오르는 어떤 그 감정들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집에 오고 나서 문득, 이 사람들도 나만큼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니 이 잡념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와 친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곧 친해졌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 리스트’는 성공률이 높았다. 대체로 연락을 하는 쪽은 나였고, 만나자는 제안도 내가 먼저 할 때가 많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아무렴 상관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만큼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그런 50:50의 관계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므로 조금 외로워질 때가 있었지만 관계가 주는 만족감이 더 컸기에 괜찮았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렸다. 내가 아니라 상대가 내게 먼저 다가온 경우를. 누군가 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드러내면 나는 대체로 거리를 뒀다. ‘이 사람 왜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하지..?’라는 의심부터 했다. 상대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뒷걸음질 쳤다. 아마 적당한 호기심과 약간의 호감이었을 텐데 상대가 무안하리만치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라는 접근금지 의사를 분명히 할 때도 많았다. 어제와 같은 만남에서 상대가 나처럼 행동했다면? 만약 나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헐... 과거의 나 너무하잖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감정의 기복을 잘 드러내지 않고 기분을 태도로 표시하지 않는 이들은 내 기준에서 존경의 대상이다. 나는 기분이 태도가 될 때가 많고, 짜증이나 화가 나면 여과 없이 표정에서 드러나곤 한다. 상대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면들 중에 가장 싫어하는 것이지만 딱히 고치려는 노력을 열심히 하지도 않는 걸 보면 나는 글러먹은 사람인 건가.


어제 느낀 그 충만함은, 그의 다정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버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가, 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조금 더 다정해져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내가 함부로 대해도 될 사람은 없으니(물론 원칙에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한다). 분명 어제 한 다짐인데, 방금 카페에서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기다란 테이블을 외국인 대여섯 명이 장악해버려서, 또 얼굴에 짜증을 한껏 뿜뿜해버렸다. 그래서 글로 남긴다. 다정한 사람이 돼야지. 이 다짐을 잊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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