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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pr 15. 2024

로봇심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봄과 함께 야구의 계절이 시작됐다. 금년에는 류현진의 국내 무대 복귀와 만년 꼴찌 한화의 파격적 7연승으로 개막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이런 경기 내적 요인 말고도 올해 처음 도입된 새로운 시스템 또한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관심의 주인공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Automatic Ball-Strike System), 일명 야구로봇심판이다. 로봇심판이 모든 구장에서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이 새로운 시스템이 실제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없을지 등이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KBO 홈페이지 화면 캡처


로봇심판의 작동 시스템은 비교적 간단하다. 각도 별로 설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한다. 스트라이크 존은 미리 확보한 선수들의 신장에 비례하여 유동적으로 설정된다. 스트라이크 상단의 경우 선수 신장의 56.35%, 하단의 경우 신장의 27.64%가 기준이다.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면 무전기를 통해 주심에게 음성 신호로 전달되고 음성 신호를 들은 주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외치게 된다. KBO는 로봇심판의 본격 도입 전 충분한 검증 기간을 거쳤고 테스트 결과 성공적으로 작동한다고 밝혔다. 시범 경기 때 로봇심판을 경험한 선수들의 반응도 일단은 호의적이다. 


우선 판정 정확도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로봇심판을 경험한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 중 판정의 정확도를 의심하는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로봇심판은 사람심판이 결정하기 힘든 구역으로 날아든 공도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판정 정확도에 대한 신뢰가 늘어나면 판정 시비는 자연스럽게 줄어들다가 결국 없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은 일차적으로 시스템 정확성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봇심판은 사람심판과 달리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또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즉 기술의 결과물이 납득할 수준의 결과를 보여 주면 그다음부터는 사람에 대한 기술의 상대적 우위가 시작된다.  


물론 아직은 로봇심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지 채 한 달이 안 됐기 때문에 시스템 전반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좀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올 일 년 동안은 로봇심판의 판정을 섬세하게 분석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 년 후 어느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다시 사람심판의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어 보인다. 로봇심판이 혹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심판이 그동안 보여준 잘못된 판정, 그리고 잘못된 판정으로 야기된 경기 파행보다는 로봇심판의 일시적 오류를 더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 일시적 오류는 글자 그대로 일시적으로 끝나고 로봇심판은 학습을 거쳐 더 스마트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크다. 


그동안 스포츠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이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인 이상 실수 할 수밖에 없다는 불완전성에 대한 동의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판단을 인정해야 게임이 진행된다는 현실에 대한 수용이다. 이런 불가피함을 사람들은 받아들였고 대범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통 큰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오심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독배일 수밖에 없었다. 잔을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히 오심으로 보이지만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했다가는 그라운드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심판 도입 (서울=연합뉴스)


다행히 인간의 오심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고 이제는 적어도 심판의 오심을 걱정하지 않고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일부 오심은 존재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좋아졌고 개선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축구의 경우 VAR(Video Assistant Referees)로 인해 오심이 80% 감소했다는 발표도 있다.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VAR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7%가 오심인 반면, VAR을 사용했음에도 오심이 발생하는 경우는 단지 1.1% 뿐이라고 발표했다. 8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인간 오심률은 비약적으로 축소되기 힘들지만 VAR의 이 수치는 앞으로 더 줄어들 수도 있어 VAR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 심판의 업무는 오랜 경험과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졌고 그 일은 경험 많은 전문가만 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 전문가의 판단이 오류로 결정 나도 판정에 동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판정이 옳아서가 아니라 다른 솔루션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봇심판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여기에 있다. 인간 결정에 대한 신뢰는 결정의 주체가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대안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대안이 여럿 있다면 선택지 중에 하나인 인간 솔루션이 선택받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종 결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로봇심판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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