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프랑스가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200개 중학교에서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물리적으로 금지하기로 했고 현재 시행 중이다. 학교 안에 별도의 사물함을 설치해 등교할 때 보관해 놓았다가 하교 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일단 200개 학교에서 4개월 간 시범 운영하고 평가를 거쳐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모든 학교로 확대해 시행할 예정이다. 디지털 기기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이 정책의 이름은 ‘디지털 쉼표, Digital pause’다. 글자 그대로 디지털 기기를 수업 때만이라도 잠시 멈추겠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을 하면 안 된다는 방침이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국가 차원의 강력한 조치를 추진한 것이다.
이 조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설립한 스크린 사용 전문가 위원회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수립되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청소년들이 스크린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불면, 신체 활동 부족, 비만 및 과체중, 시력 저하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SNS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실제 폭행으로 이어진 13세 소녀 사건 등도 디지털 쉼표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내에서 청소년들의 휴대폰 사용 금지 또는 강력 권고는 여러 나라에서 계속 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교내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연합뉴스TV 제공]
국내에서도 유사한 조치가 시행 중에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그것이다. 「초·중등교육법」에 기초하여 만든 이 고시를 통해, 교육부는 초중등 교사가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교육부 보도자료를 보면, “교육목적 사용, 긴급상황 대응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에 대하여 주의를 줄 수 있으며, 학생이 이에 불응할 경우 휴대전화를 학생으로부터 분리하여 보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프랑스처럼 휴대폰을 물리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금지하게 하고 이를 어길 시 물리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학교에서는 교육부 고시가 있기 전부터 등교 때 휴대폰을 일괄적으로 걷어 하교 때 돌려주고 있었다.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고등학교도 휴대폰을 물리적으로 금지했는데 이 학교 한 학생이 “등교 시 휴대전화를 강제로 제출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작년 11월 “교내에서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이 학교에 권고했지만, 이 고등학교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불수용의 근거는 교육부가 발표한 고시에 있다. 위 학교 외에도 작년 한 해 인권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학교는 개정 권고를 받은 학교 중 24개 학교로 전체 43%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 간판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 인권위는 기존의 판단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10년 동안 인권위가 유지해 온 ‘학교 내 휴대전화 수거는 인권침해’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지난 7일 인권위 회의실에서 열린 18차 전원위원회에서 위원 8대2의 의견으로 수업 중 휴대전화 일괄 수거는 “인권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이번 판단을 위해 전문가 자문을 통해 국외 사례를 확보했다고 한다. 사례 중 하나가 위에 언급된 중학교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한 프랑스 경우다. 이런 사례 연구가 기존 결정 번복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10년 사이에 수업 시간 또는 교내에서 청소년들의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수거가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측은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중요시한다.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고 적절한 환경이 구비된다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수업에 방해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개인의 휴대폰을 수거하는 것은 인권침해는 물론 자율적 판단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다르게 생각하는 진영은 이미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청소년의 휴대폰과 인터넷 중독 실태를 연구해 온 조현섭 총신대 중독상담학과 교수는 청소년의 40.1%가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다고 밝히고 수업 시간 중 청소년의 휴대폰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휴대폰(스마트폰) 과다 사용(PG) (이미지=연합뉴스)
휴대폰 사용을 반대하는 입장은 쉽게 이해된다.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에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대폰 수거를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입장은 좀 더 중층적이다. 휴대폰 안에는 개인의 모든 정보가 보관되어 있다. 그 휴대폰으로 타인과 교류하면서 휴대폰은 개인과 동일시된다. 휴대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부터 생긴 이런 사고 습성은 휴대폰과 개인을 분리시키는 행위를 못 견뎌 한다.
그러나 핸드폰이라는 기기를 잠시 제쳐두고 생각해 본다면, 학교 안에서 수업에 방해가 되는, 또는 될 가능성이 있는 물품을 휴대하는 것에 너그러운 경우는 없었다. 특히 초중고교에는 이 규칙이 더 엄격하게 지켜졌다. 최근 인스타그램이 ‘10대 계정, Teen Accounts’이라는 정책을 만들어 18세 미만 인스타그램 이용자 계정을 ‘비공개’로 일괄 전환한 것도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 피해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특정 공간에서는 ‘디지털 쉼표, Digital pause’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