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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Nov 25. 2024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시국선언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다시 시국선언이 붐을 이루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가천대에서 시작된 시국선언은 한국외대와 한양대, 숙명여대로 이어지고 국립 전남대와 인천대로 확산되고 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지난주 목요일에 있었던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전에 많이 발표되었다가 기자회견 이후로는 좀 잠잠해지고 있다. 시국선언의 주요 내용은 주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실패와 그에 따른 탄핵 요구 및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 수용 등 현 정부 실정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요약된다. 앞으로 윤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의 대응에 따라 교수 또는 전문직들의 시국선언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MBC 보도 화면 갈무리


 교수들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또는 무기명으로 정치 현실에 대해 분명하게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 정치적 의사 표시인 투표에서부터 SNS를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 등은 모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자유의사에 의한 투표, 자발적 SNS 활동 등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주요 원칙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는 허위 사실 유포 등 거짓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라면 가능한 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 이런 의미에서 특정 상황에 대한 적극적 의사 표현인 시국선언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사회 발전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순간에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나왔고 그 선언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사회 개혁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4.19 혁명 발발 며칠 후에 발표된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다. 선언문에서 교수들은 3.15 선거는 부정선거라며, 공명하게 정·부통령 선거를 실시할 것과 3.15 부정선거를 조작한 주모자들은 중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당시 민심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고 이 선언은 대학생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 국민이 주권자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도 교수, 성직자, 전문직들의 시국선언은 계속 이어졌다. 국민들의 정당한 정치경제적 요구를 불순분자의 거짓된 선동으로 오도하며 폭력적 탄압을 자행할 때, 소수의 지식인은 예상되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시국선언문에 서명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3월 28일 고려대학교 교수 28명이 시국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과 언론·사상·표현의 자유를 요구한 이후 5월 중순까지 29개 대학에서 785명의 교수가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했다. 이런 선언들이 모여 6월 항쟁으로 연결되었다. 폭력적인 전두환 정권 시절에 시국선언 동참은 신분상의 불이익은 물론 신체적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실존적 결단이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가 물러가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은 그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언론의 자유와 관련이 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언론이 공안기관에 의해 사전 검열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특정 정치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철저하게 사전 통제를 했다. 당연히 국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었고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된다. 이때 지식인들은 그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언론사들이 시국선언의 내용을 정확히 보도하지는 못할지라도 시국선언 관련 기사를 통해 국민들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즉 미디어 측면에서 본다면 당시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시국선언에서 찾은 것이다. 만약 언론이 통제당하지 않았더라면,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은 위험을 무릅쓴 결단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의사 표시로 인정되었을 것이다. 지금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시국선언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되고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SNS가 일상화면서 이제 누구라도 자신의 정치사회적 견해를 직접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 시국선언에서 보여주었던 그 비장감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지식인의 시국선언보다는 SNS를 통해 형성되는 집단 지성의 파워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집단 지성과 포퓰리즘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이 모호성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지금은 실질적인 대중정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정보가 SNS를 통해 생산, 유통, 소비되고 사람들은 조회수 또는 좋아요,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수시로 발표되고, 정치권은 늘 긴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식인들은 시국선언을 계속하고 또 어느 시기까지는 이어지겠지만 이미 그 영향력이 반감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비장한 시국선언에서 표현의 자유가 일상화된 SNS 시대로 이미 들어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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