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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학의 아름다운 합일

마커스 보그의 고백. 기억에서 회심으로, 그리고 확신으로

by 김홍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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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도미닉 크로산과 공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언젠가는 마커스 보그의 단독 저서를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의 서평을 어디선가 읽고 구매해 추석 연휴 기간에 읽었다.


1942년생이다. 살았다면 우리 나이로 지금 84세. 안타깝게 10년 전인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2014년, 타계하기 1년 전에 나왔다. 영어 제목이 conviction, 확신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가 제목을 conviction으로 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보그에게 신앙과 신학은 둘이 아닌 하나였다. 그 둘은 그의 몸과 마음, 감정과 이성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고 하나의 원칙으로 운동했다.


어느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미네소타의 시골 풍경을 9년 된 MG 2인승 로드스터를 홀로 타고 운전하는 중이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낮게 깔린 엔진 소리와 얇은 캔버스 천으로 된 지붕을 스치는 바람뿐이었다. 세 시간쯤 달렸을까, 굽이가 이어진 고갯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홀연히 빛이 바뀌었다. 빛은 노르스름한 황금빛으로 변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감쌌다. 좌우로 펼쳐진 눈 덮인 들판, 들판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 노랑과 검정의 도로 표지판, 그리고 도로 그 자체까지 모든 것이 빛났다. 모든 것이 경이로워 보였다. 나는 놀라움에 압도되었다. 이전에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평소의 의식 속에 있는 주객 구분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나 자신은 ‘이 안’에, 세상은 ‘저 밖’에 있다고 경험하게 만드는 의식의 ‘돔’이 허물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P 61


보그는 신비 체험을 통해 하느님이 실재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체험이 바로 내세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그는 말한다. 보그는 죽음 후에 또 다른 삶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확신은 천박한 복음주의로 경도되지 않았고, 누구보다 예수를 열심히 공부했고, 연구했다. 역사적 예수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을 남긴 자유주의 신학자였지만, 보수주의 신학도 늘 경청했다. 무신론자가 아니라면, 양식이 있는 신학자라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에 다다른 신학자였다.


책 앞부분 자신의 체험 기록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자유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고, 역사적 예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둘이 절대 모순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성서의 무오성, 성서의 절대 권위라는 생각은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개신교 신학의 발명품이다. P121


성서가 하느님의 무오하고 무류한 계시가 아니라 두 고대 공동체 (고대 이스라엘+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 신앙의 조상들이 남긴 산물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P132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하는 진리는 그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P142


성서무오설에 대한 비판이다.


예수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죽었다는 이해가 유일하게 올바른 해석이라는 주장에는 역사적 문제가 있다. P 182


역사적 예수 전문가의 합리적 분석이다.


성서는 이 세상이 (권력자들에 의해) 구조화되는 방식 자체를 전복하려는 저항의 책이다. P 205


불의한 세상에 대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은 분명히 있다, 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


인생을 잘 살아온 노 목사의 마지막 설교를 들은 느낌이다. 이렇게 살면 좋겠다.


Good bye, Dr. Marcus J. 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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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1. 상황은 중요하다

2. 신앙은 여정이다

3. 하느님은 실재하며 신비이다

4. 구원은 내세보다 여기에서의 삶에 관한 것이다

5. 예수는 성서의 규범이다

6. 성서는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니어도 참일 수 있다

7.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중요하다 - 그러나 우리의 죗값을 치렀기 때문은 아니다

8. 성서는 정치적이다

9. 하느님은 정의를 열망하시며 가난한 이들을 깊이 돌보신다

10. 그리스도인은 평화와 비폭력으로 부름받았다

11.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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