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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Jul 08. 2019

어떤 글을 써야할까

2년 만에.

브런치를 크롬의 즐겨찾기 탭에 넣어둔지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접속은 거의 하지 않았다. 글을 써야지, 써 나가야지, 라고 다짐한 마지막 저장 일시가 2017년 여름으로 되어 있었다. 업데이트가 없는 와중에도 꾸준히 구독자가 늘었고,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참으로 감사한 코멘트까지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에, '아, 뭔가 적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2017년 여름, 그쯤에 무얼 하려고 했었냐면, 한국 회사 생활의 경험을 살려서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려고 했었다.그러나 심각한 금전난에 부딪히고, 역시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더 달라고 말하지 못해서, 일본에서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고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동안 나는 점점 더 지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도 정신의학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외국생활'에 턱턱 목이 막혀오고, 글쓰기는 멀어졌다. 일본어를 빨리 익히고 배워서, 일본에서 빨리 적응해서 살기 위해 한글 소설책도 읽지 않았고, 한국 음악도 한동안 듣지 않았고,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1년만에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무사히 취득했고,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는 일본인 후배를 일본어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어를 빠르게 배웠다. 


그렇지만 '자 이제 해 볼까?'하고 돌아와 한글로 글을 쓰려니-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졌다. 페이스북에 간간히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 글을 쓰긴 했지만, '예전같지 않다', '호흡이 짧아졌구나'라는 평을 들었다. 이젠 글을 쓰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감정을 해소하며 안정을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행위-한국어로 수려한 문장을 적어내는 일이, 과제이자 어려운 일, 조심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브런치를 계속해서 외면했다. 




그리고 당시의 괴로움과 고통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걸 왜 썼을까'하고 후회해서 몇번이고 브런치를 없애려고도 했다. 하지만 남겨둔 이유는 만약에라도 내가 우울증이 원인이 되어 자살하게 된다면, 이 글들이 조금이라도 남은 나의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내가 이만큼 글을 쓸 수 있었었구나'하는 자료이기도 해서, 없애기엔 아깝기도 하고.




2017년 12월, 도쿄에서 치바현으로 이사를 했고, 일본어학교를 졸업해 2018년 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일본에서 번역을 하려고 했었다. 사실 그것은 내가 국문학 전공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정한 것이다. 부전공은 실용문화디자인학(정식 학과명칭은 이것이 아니지만, 학교가 드러날 것을 우려)이었지만 정식으로 디자인과는 없는 종합대학인지라 그 학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끔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 콜라주를 만드는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은 내 급여 밖의 일이었다. 또한 '글도 쓰면서 포토샵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모 사업자와 계약해 혹사에 가까운 일을 무급여로 해내고서 일주일만에 계약해지를 한 적도 있었다. 미술은 참 어릴 때부터 했었고,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만화가가 되려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염원은 이뤄지지 못하고 나를 계속 괴롭혀왔다. 미술은 내게 아픈 손가락이다. 고교 입시 때문에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울면서 귀가한 것이 16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여년 뒤,  현재 도쿄 도내의 2년제 디자인 전문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과에서 편집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2학년이기 때문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일본에서 '디자이너'로 구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 일본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적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생각들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히 현재 살고 있는 '일본'이라는 환경이고, 글을 쓰려면 당연히 일본에 관한 글이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지금까지 써온 글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의, 어쩌면 조잡한 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브런치의 독자분들이 기대하는 글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적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약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정도에 그쳐야겠다, 정도.


 브런치에 '일본'이라고 검색만 해봐도 가득 나온다. 유쾌하고 즐겁고 유익한 글들이 많다. 그러니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요?' '일본에서 취업하려면 어떻게 해야해요?'등의 답변을 위해서는, 그분들의 글을 읽는 편이 권한다.




일본에서의 정신과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느냐면, 사실 한국보다는 진척이 없다. 밥을 잘 먹는지, 잠을 잘 자는지만 묻는다. 약을 달리 더 주거나 빼거나 하지도 않고, 가끔은 그냥 약 처방전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억지로 병원에 가는 기분이 들 정도다. 언어의 장벽은 둘째치고, 일본의 병원은 애초 약을 잘 주려고 하질 않는다. 프로작도 주려고 하질 않아서, 한국 병원으로부터 받아서 먹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많다. 조금이나마 다행인 점은, 내게 잘 맞는 약을 찾았고, 그 약은 잠을 잘 자게 해주고 잘 일어나게 해주는 약이다. 작년부터 쭉 장기복용 중이다. 잠을 잘 자는 습관을 통해서 환청이나 악몽, 불면이나 알코올 의존은 거의 사라졌다. 


우선 가장 괴로웠던 환경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2015년-2016년 당시보다는 굉장히 많이 호전되었다. 농담에 웃기도 하고, 좋아하는 활동을 찾아 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주 나아진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몸은 둔해지고 체력은 금세 닳았다. 디자인 계열 일을 시작하면서 컴퓨터와 책상에 붙들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더욱 더 몸은 빠르게 망가졌다. 


몸은 계속해서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주는 것만 같다. 숙제를 완벽히 해낸 것도 아닌데도 숙제를 준다. 숙제는 쌓인다. 몸을 나는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없고, 정신은 안정적인 궤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다시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위협을 끊임없이 주고 있다. 


즉, 일본에서의 정신과 상담과 의료에 대해서는 도무지 쓸 말이 없다. 치료일지를 쓸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굳이 이어간다면, 이 브런치는 아마도 '연습장'이 될 확률이 높다. 페이스북에 가볍게, 지인들을 타겟으로 적던 글을 여기로 옮겨와서, 조금 더 다듬어 윤문을 하고, 업데이트하는 방식.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리겠지만 적잖이 화풍이 바뀐 그림이 될 것이다. 취업활동 중이기 때문에 활발한 업데이트도 장담할 수는 없다. 


나는, 3년전의 나처럼 글을 쓸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글 솜씨가 떨어지는 것은 매우 슬프고 부끄럽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글을 읽고 싶다고 말해주시는 분들, 들러주시는 분들에게서 감동과 기쁨을 얻었다. 오늘이라도 브런치를 열어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글을 써야할 지 모르겠다. 전보다 좋은 걸 내 놓을 수 없다면, 여기서 그만두는게 나을까. 


위잉위잉.

우울증을 앓는, 일본 재주 2년차 한국인.

아무래도 뭔가의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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