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직도 이 브런치에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정말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제야 숨을 고르고, 모처럼 한글로 글을 적어봅니다.
2015년부터, 유서를 남기는 심정으로 적기 시작한 이 우울함 투성이의 투병일지를 2016년까지 적었습니다. 그 후로 2017년 3월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살기 시작하며 간간히 생활 이야기를 적겠다고 한 것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브런치에서는 정제한, 단정한 문장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우울증의 기록을 다시 들추어보는 것은 괴로웠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적응하는 것에 온 정신이 팔려서 글을 쓸 여유 조차 없었음이 그 핑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저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해서만 볼 수 있는 페이스북에서, 개인적인 근황 보고를 겸한 짧은 일기만을 썼습니다.
인사의 글에까지 우울한 이야기를 적게 되어 정말 죄송하지만, 사실은 일본에서 4년 동안이나 제가 살아남을 거라곤 생각치 않았습니다. 우선 한국과는 정신과 치료 방식과 처방가능한 약물이 너무나 달랐고, 예상했던 대로 인생이 흘러가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예상보다 내가 너무나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니, 살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일본에서 먹고 살 돈이 떨어지면 신변정리를 하고, 시골이나 섬에 들어가서 먼지처럼 실종되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뭔가 아쉽고 막막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일본어학교를 졸업하면 죽어야지'가 '전문학교 졸업하고 나면'이 되었다가, 덜컥 취직이 되어버리고, 지금은 '퇴직금이 나오는 연차까지만 일하고 나면'으로 연장되었습니다.(일본은 퇴직금 제도가 회사마다 다른데, 지금의 회사는 3년 근속하면 퇴직금이 발생합니다.)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변함없이 매일 합니다. 연말연시에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병을 얻었고, 꿈 속에서도 회사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고 울다가 꿈에서 깨어납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하루에 만 번 정도 죽고 싶었다면, 지금은 500번 정도 죽고 싶습니다. 과연 이것이 나아진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한차례 이사를 해버려서 정신과 병원을 또 옮겨야 하는 상황이니, 나중에 새로운 전문가와 상담해봐야 알 일입니다.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며 한국에 가는 길이 막혀버리고, 일본의 상황은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처럼 편집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인쇄물의 수요가 확 줄어 들어버렸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차단되었습니다. 특히 외국인인 제 입장에서는 일본어 회화를 할 기회가 줄어서, 심적으로 답답한 일들이 늘어났습니다. 외국에 산 지 4년. 고작 4년. 아직 책을 술술 읽기도 어렵습니다. 죽으려고 외국에 온 사람이 어쩌저찌 어떻게든 뛰어넘어왔던 여러 허들보다-지금은 더욱 높은 허들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괴로우니 퇴직금이 나오기 전이라도 지금이라도 죽어버리자고 생각하니, 소액이지만 갚아야할 빚도 있고, 이 타국에서도 소중한 것들이 생겼고, 티끌만하지만 살고 싶은 이유들이 스멀스멀 생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렁뚱땅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지처럼 맥아리없이 스러져버린 1년의 부스러기를 줍다보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우선 브런치를 다시 찾게 되었는데, 여전히 이 글들을 읽어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브런치 계정을 어떻게 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두 지우고, 위잉위잉의 이름으로 새로운 글을 쓰자니, 그건 이 브런치를 구독해주신 분들이 읽고 싶은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계정 자체를 지우기도 다소 아까웠습니다. 외국에 살며 글쓰기 연습을 하지 않아 문장력이 많이 떨어진 지금에 비하면, 저에게 이 글들은 꽤 공들여 열심히 쓴 문장들이기 때문에 참고자료로 쓰기 위해서라도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이야기를 해버려서 죄송하지만, 나중에 정말로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이 브런치의 기록들이 '대체 위잉위잉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차마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가족이든, 친구든 스승님이든 누군가에게 마지막 변명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따로, 새 브런치를 개설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다른 이름과 다른 색깔, 다른 톤과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과연 얼마나 꾸준히 쓸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달에 2, 3편은 쓰고, 그림도 좀 더 그리고 싶다고 욕심만 내고 있습니다. 이 답답함을 껴안은 채 어두운 방에서 칩거하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으니, 예전보단 뭐라도 좀 더 하지 않을까요.
뭔가 대단한 성명문같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글을 써도 길어지는 것은 습관인가 봅니다.
모자라고 괴로운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방금 계정을 갓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지만, 주소만 남겨두겠습니다.
이 곳의 글을 조금 옮겨놓기도 할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eitacreative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도 우울해지게 만드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괴롭고 우울한 글을 남겨두고, 여전히 우울한 글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부디, 모든 분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