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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Apr 04. 2022

휠체어 탄 사람과 함께 춤추다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을 때 생긴 일이다. 내가 살던 곳에는 아주 큰 운동센터가 있었는데, 회원이 되고 나면 어떤 수업이든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에어로빅 비슷한 춤을 배우는 수업을 신청했다. 강의실에 도착하여 맨 앞에 있는 선생님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의 동작과 삐걱거리는 내 몸동작의 차이가 점점 크게 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강의실 뒤로 가서 주저앉았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수강생들을 보고 있는데, 맨 마지막 줄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신나게 상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 수업은 장애인과 함께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도 않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의 손동작은 정확했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지만 활기찼다. 쉽게 지치지도 않는 듯했다. 나도 용기를 내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함께 춤췄다. 난생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동작으로 춤을 배운다는 것은.


스웨덴에서 경험한 교환학생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종종 이 이야기를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신기했어.” 물론 신기한 경험이지만, 난 지금 한국에 살고 있고, 밥을 먹어야 했고, 출근하고 퇴근해야 했다. 주말에는 평일에 쌓인 피로를 틈틈이 풀어줘야 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자기 전 침대에서 장애인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출근시간에 하는 시위 때문에 할머니의 임종을 놓쳤다는 한 시민의 인터뷰도 보았다. 머릿속에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려는 듯했지만 당장 나는 피곤했다. 내일 출근해야 돼. 나는 억지로 눈을 감고 세상을 깜깜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최근 유튜브에서 ‘원샷 한솔’님의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짜파게티를 끓이는 방법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한솔님의 영상을 여러 번 보자, 내 피드에는 한솔님의 콘텐츠가 틈틈이 올라왔다. 지난 선거 시즌에는 ‘시각장애인이 투표하는 법’을 보았다. 그다음에는 시각장애인은 어떤 꿈을 꿀까? 콘텐츠까지 보게 되었다. 자꾸 보게 되자,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한솔님은 참 밝고 명량하네. 하지만 한솔님이 비장애인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감탄이라는 생각에 반성했다. 많이 접하지 못하니까 작은 것에 쉽게 놀라고, 나와 다른 타인이라고 대상화하게 되는 것 같았다.


지난 3월 27일,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SNS에 ‘불특정 다수의 불편을 볼모로 삼는 시위를 중단하라’며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시위는 2001년 장애인 노부부가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한 사건 이후 본격화됐다고 한다. 20년 넘게 시위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 전국 시내버스 10대 중 7-8대는 장애인이 탈 수 없는 계단 버스다.


그때 스웨덴에서 휠체어에 앉아 신나게 춤추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한솔님의 영상을 클릭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솔님이 없었더라면, 나는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적은 댓글을 보고 공감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더 자주 내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사회 곳곳에 나타나 삶의 지분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몇 년에 한 번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그들을 접해서, 그들을 삶 전체를  완전한 슬픈 눈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 그들 스스로가 만드는 외침을 내 삶의 군데군데에서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의 이동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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