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ONGYOON_HAN / 2015년 2월 여행 중
언제부터 호프집 안에서 금연이 익숙해졌는가. 언제부터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야구 중계를 보는 것이 당연해졌는가. 당연시 여겨졌던 문명의 이기는 배낭여행이 오래될수록 그 당연함이 소중함으로 바뀌게 된다. 하물며 좋지 않은 시설의 호스텔을 전전하면서 찔끔찔끔 나오는 물에 몸을 씻기를 반복하던 중, 새로운 여행지의 숙소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할 때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인데.
나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그간 여행에서 부족했던 풍요로움을 채울 수 있었던 곳이다. 여행지를 선정하면서 굳이, 특별한 사전 지식도 없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체 여행자들이 왜 추천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장시간 버스를 타고(12 hrs) 아침에 내린 부에노스아이레스 터미널 밖 풍경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문명화'된 장소였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도로, 고층 빌딩, 여느 유럽의 스카이라인과 비교해도 못지않은 이 곳은 마음속으로 그리워했던 '익숙한' 장소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간의 피로를 마음껏 풀기로 했다.
우선 아르헨티나는 공식 환율과 암환율의 차이가 컸다. 경제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망해버린 탓에, 공식적으로 판매되는 환율은 USD 1당 8 Peso라고 한다면, 암환율은 50%도 더 넘는 13 Peso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USD를 보유하고 있으면 같은 값의 재화와 서비스를 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여행자들은 암환전을 통해서 풍요로운 아르헨티나 여행을 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소고기 스테이크'가 떠오른다. 세계 소고기 수출 1위 국가답게 현지 가격도 원체 저렴한 소고기를 암환전을 통해서 더욱 싸게 구매하다 보니, 과장을 조금 보태서 국내 가격의 1/10에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매일같이 소고기 스테이크가 식탁에 올라올 수 있었고, 제대로 된 몸보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와인 가격도 저렴하다 보니 비싼 와인을 남기기 아까워서 맥주만 마시던 이전의 여행과 다르게 와인 또한 매일같이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배낭여행이 오래될수록 음식이 부실해지기 마련인데, '문명화'된 도시에서 몸보신까지 하게 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문명이 발전하는 목적은 당연히 인류에게 편안함, 행복감을 높여주기 위함이다. 물론 최빈국가의 행복 지수가 여타 선진국보다 높고, 세계 제 1의 IT 국가인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은 분명히 문명의 발전의 방향이나 여러 제도의 문제점이 있겠지만(필자는 신자유주의에 그 탓을 돌리고 싶다), 이미 선진화된 문명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익숙함이 주었던 편안함은 분명 소중하기 마련이다.
어디에 탓을 돌려야 할까, 선진화된 문명에서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