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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Nov 19. 2024

스타트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팀장의 조건


나의 모교엔 이런 큼지막한 현판이 있었다.


어디서나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라

고등학교 3년 내내 매일같이 등굣길에 봐서 그런지 몰라도, 자연스레 나의 기준이 됐다. 자아가 형성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어딜 가서나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꽤나 많은 곳에서 실제로 그래 왔다(라고 나는 믿고 싶다).


아주 작은 동아리에서부터, 큰 모임에 이르기까지 늘 나의 존재감이라는 걸 갖고 있었다. 단순히 감투를 쓰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남이 보든 보든 똑같이 일하기, 필요한 말은 꼭 하기,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기  아주 기본적인 태도와 성실성을 장착하고 생활했더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선배나 후배나 나를 인정해줬다. 나도 그 타이틀이 내심 뿌듯했다.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게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스타트업 팀장 1년차.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요구를 받는다.

"종훈 님이 없어도 팀이 잘 돌아가도록 만드세요. 그게 팀장의 능력입니다"


??? 

여태까지 나의 '대체 불가능성'을 증명하면서 3n년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걸 버리라니. 어딜 가서도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려고 애썼는데, 이제 한 순간에 그 자리에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되라니.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팀장을 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없어도 되는 조직은 도대체 무얼 갖춰야 하는지 고민이다.  


한편, 메타(페이스북)의 크리스 채 님은 이런 말을 했다. 


팀장은 실무에서는 손을 떼고, 팀 빌딩에만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팀장이 지금 그 팀장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 실무적 스킬을 뒤로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팀원들을 교육하고 서포트하는데에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완벽한 팀 빌딩, 조직 문화와 관계, 명확한 피드백 등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한다. 아니 여태까지 잘해왔던 걸 다 버리고 모두 새로 배우라고요? 이런 막막함은 모든 팀장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도 든다. 

내가 팀장으로서 일을 해내서 결국 없이도 팀이 돌아가게 되면, 그때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토사구팽 엔딩?? 


토스의 디자인시스템을 총괄하는 디자이너 강수영 님은 이렇게 말한다.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대체할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그래서 장렬히 사라지는 것이 목표라고. 


저는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디까지 많은 임팩트를 미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그건 저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토스의 디자인시스템이) 저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다른 팀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그것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까지 대체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 그리고 장렬히 사라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래 영상 최후반부에 등장)


이 영상을 보고 느낀 점.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결코 대체되지 않을 거 같다. 아니, 절대 대체될 수 없을 거다. 이토록 커다란 시스템을 설계해본 사람은, 결국 어디서도 그 이상의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남고 다른 이에 의해 굴러가더라도, 그는 어딘가에서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을 거다. 그래서 그는 평생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조직의 팀장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팀장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서, 팀이 잘 융합되고 성과가 나고 팀장 없이도 원활하게 업무가 돌아가는 수준에 이른다고 치자. 그 팀장은 더 큰 역할을 맡게 될 거다. 더 큰 임무를 맡게 될 거고, 더 복잡한 프로젝트가 주어질 거다. 그의 대체 불가능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팀에 없어도 되는 팀장이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아닐까.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다. 


나는 3년 전, 회사에 들어오면서 목표를 정했다. 전문가로서 더 뾰족해지기보다는, 리더로서 더욱 깊고 넓어지기로. 이제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느낌으로 하반기를 맞는다. (팀장 1년 만에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적극적으로 위임하기, 개인의 역량을 파악하기, 새롭게 역할을 조합하기, 부드럽게 피드백하기. 생전 처음 시도하는 일들이라 무섭지만.. 앞으로의 목표는 이거다. 최고의 팀을 만들기. 최고의 팀워크를 만들기. 내가 없어도 되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공감 능력부터 키워야겠다. ISTJ는 어떻게 공감력을 키우는지 알려주실 분 구함.

ISTJ는 어떻게 팀장해야 되는지 알려주실 분 구함



사실 이 글을 쓴 건 약 4개월 전이지만 지금에서야 다듬어서 꺼낸다. 예전에는 여물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아니면 발행할 기회가 없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오늘을 기점으로 내가 맡았던 팀이 사라졌기 때문. 다음 화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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