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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vsigner 비타민찌 Jun 02. 2020

개발자가 짤 수 없는 알고리즘, '창의력'

정말로 인공지능에게 '창의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0]

기술의 탄생은 인간의 두가지 욕구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인간의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경우,

그리고 인간의 신체적, 기능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개발되는 경우다.


간단한 예시로는 시력을 확장 시키려고 안경을 만들고, 카메라를 만들고, 시력이 좋아지는 수술을 하는 것. 또 빨리 달리기 위해 자전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드는 것 등이 있겠다.

그런 관점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를 확장시킨 기술이다.

그래서 인간보다 지능적으로 우월한 것은 당연하다.

TED의 강연자 Sam Harris도 인간 인공지능을 비교했을 때 우리의 장점은 결코 지능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말 인간의 지능은 침팬지와 그 수준이 비슷하다.

그러나 침팬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고, 인공지능은 빠르게 달리는 버스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맹인 노인을 그저 장애물로 인식한다는 인간과의 차이가 존재한다. (비유적인 표현! 물론 사람같이 생긴 것을 인식하면 속도를 천천히 줄이라는 것을 미리 입력하면 되지만, 여기서는 입력한 데이터 외의 Exception 적인 상황을 말한다.)

대학교 1학년때 였던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 되려면 방금 언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들었다. 어렸을 적 논술문제에 꼭 들어가는 주제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 입력한 데이터를 불러오는 것이 아닌 상황대처력,그리고 창의성을 프로그래밍 할 수 있을까? 맹인 노인에 대한 연민과 같은 감정 컨텐츠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을까? 나아가 도덕이나 윤리적 가치라는 컨텐츠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을까?




[0.5]

'도덕감정론'을 쓴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사고는 경험의 다발들을 종합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A때문에 B가 되었다' 라는 인과관계도 확실하지 않다.

어떠한 특정 경험을 많이 하면 습관적으로 그와 같은 인과관계를 형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대한 관념은 단지 습관적으로 인지해버린 '지각의 다발',

또 감정의 다발이라고 했다. 결국에는 자신을 포함한 존재 모두가 위와같은 관념들의 집합체,

즉 지각의 다발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리냐가 아니라 무엇을 진리라고 믿느냐' 라는 말을 남겼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는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라는 우리 인간의 경험의 한계를 표현했고 붓다가 말한 깨달음은 바로 이 동굴을 벗어난 사람의 경험과 같다.

우리는 삶에서 우리의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흄이 말한 대로 우리는 경험의 다발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감정의 다발 이론의 관점과 오늘날 인공지능 신경망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보았다. 

인공신경망이란,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인 정보가 뉴런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에서 이 정보들을 종합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여러개의 뉴런이 연결되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모방해서 만든 알고리즘이다.(출처:네이버 백과)

인간이 감각기관에서 정보를 받아드리듯 인공지능은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를 받아들인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는 한, 선별적인 데이터만을 받아들인다는 점과 이렇게 받은 데이터의 다발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흄이 주장한 인간의 인지론 '감정의 다발 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1]

인공신경망 AI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함수는 인공신경망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수학적 증명, Universal approximation 이론(1989년) 이라고 한다. 이 증명은 오늘날의 인공지능 작곡 소프트웨어 쿨리타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주제를 생각하며 과연 그 작곡이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쿨리타가 작곡한 음악이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창의성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필요하다. 예를들어 달걀과 밀가루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창의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Esdaas'이라는 단어는 창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Esdaas'은 내가 지금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자판을 쳐서 나온 단어다. 여기서 창의적인 것의 속성에는 독창성과 '가치성'도 포함해야만 한다는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 또는 그림은 독창성을 지니긴 하지만, 가치성을 지닌다고 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지과학과 계산 심리학분야를 개척한 '마가릿 보든'은 창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첫번째, 익숙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합쳐보는 것. 원자를 태양계에 비유하는 물리학자를 예시로 들었다. 두번째, 바흐의 음악이다. 그가 작곡한 곡은 기존 고전파 음악에서 약간의 변형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음악사가 되었다는 예시이다. 마지막으로 뒤샹의 샘이다. 마가릿은 개념공간의 변형이라고 표현했다. 기존에 있던 무언가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하얀 도화지에 점 하나를 찍는 것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창의성이 없다고 볼 수 있겠고, 도화지에 그린 사과나무, 포도나무를 합친 사과포도나무를 그린것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대해 긍정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여기서 하얀 도화지에 점을 찍는 인공지능에 대해 더 생각 해보자.


5년 동안 주입식 공부만 한 아이는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있지만 창의적인 아이는 될 수 없다.

단순한 지식 데이터만 입력한 지금의 인공지능은 똑똑한 아이다. 창의적인 인공지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막내 동생이 아주 어렸을때, 어머니께서는 오감을 자극하는 오감발달 놀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려면 이런 놀이를 통해 경험의 다양성을 넓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나또한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합창, 수영, 발레, 피겨, 토론, 악기는 세개정도 배웠던 것 같다. 그때 그걸 왜 했지? 라는 생각이 들만한 것은 다 해봤다. 그러나 그런 감각적이고 추상적인 경험을 하며 얻은 것은 확실히 이후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얻은 지식과는 달랐다. 감각으로 얻는 것들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한 사람에게도 그 때의 시간, 기분 등에 따라 다르다. 5분동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5분 동안 다른 공부를 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방대하고 넓은 지식의 다발을 축적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사람이 가진 양 만큼의 지식의 다발을 입력할 수 있다면 어느정도 창의적인 인공지능의 출현은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IBM 왓슨은 무수히 많은 트레일러 영상 데이터를 모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모건'의 트레일러 영상을 하루만에 제작하였고,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만든 광고와 인간 크리에이터가 만든 광고의 선호도를 조사하는 실험을 진행 했는데 그 차이가 8%로, 다소 미미한 결과를 내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봤을때 아직은 불완전한 창의적 인공지능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완벽한 창의를 목표로 진화되고 있을을 알 수 있다.




[2 ]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창의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입력하는 순간 창의력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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