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인도를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바가지다. 인도의 상인들은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제값의 2~3배를 올려서 물건값을 받는다. 속아 넘어가면 이득이요, 그렇지 않아도 본전을 찾는 장사니 이들에게 손해 될 것은 없다. 그런데 타국의 여행자들에게만 소소한 사기를 치는 줄 알았더니 재밌는 건(?) 이들이 자국의 여행자들에게도 그런다는 것이다. 함께 델리 여행을 했던 루다와 뿌자와 함께 릭샤를 탈 일이 있었는데 뿌자는 본래 가격보다 몇 배나 부풀려 받는 릭샤꾼 때문에 기사 아저씨와 목청을 높여 싸웠다. 릭샤꾼도 지지 않고 뿌자에게 맞섰는데 얼마나 열렬했는지 그쯤 되니 누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득바득 깎으려고 하는 우리가 못마땅한 릭샤꾼이 도리어 성을 내는 건지. 어쨌든 뿌자 덕분에 바가지는 면했지만 가는 동안 가는 내내 냉랭한 분위기로 릭샤가 1분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나마 본국인들은 원래의 평균 금액을 안다고 하더라도, 타국의 여행자들은 그럴 리가 만무. 대략 감으로 그 물간의 원래 판매가를 짐작한다. 보통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일단 절반이나 삼분의 일 가격으로 깎아서 시작하라는 암묵적 룰이 있다. 옷을 파는 상점에서건 릭샤꾼에게서 건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인도 여행을 떠나기 전, 수많은 배낭 여행기와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 인도 상인들 앞에서 코웃음을 치며 ‘감히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가소롭다는 마음으로 물건을 사는 상상을 했다. 절대 나는 당하지 않을 거야. 흥정을 하며 제값을 주고 사는 멋있는 나.
현실은 달랐다. 막상 현지 상인 앞에서 호기롭지 못했다. 그가 100루피를 부르면 30루피나 50루피를 부르는 것이 정석이거늘, 나는 우물쭈물하며 겨우 50루피를 조용히 읊조렸다. 그는 택도 없다는 표정을 하며 80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좀 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70에 해달라고 조르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찝찝한 기분과 표정으로 75루피에 물건을 들고 왔다. 흥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웃돈을 더 얹어주고 나온 듯한 아이러니.
‘이거 얼마야?’라고 물으면 ‘얼마를 원해?’라고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없으면서도 재밌는 인도만의 거래 방식이다. 이것이 묘미라면 묘미일 수 있겠지만 난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재치 있게 원하는 금액을 부르고 흥정하는 맛을 보는 것은 상상 속의 나. 하지만 돈값에 어둡고 타인의 마음에 민감한 현실의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기 일쑤다. 너무 가격을 높게 부르면 내가 손해고, 너무 낮게 부르면 상대가 기분이 상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늘상 조심스럽다.
그들이 연기가 무르익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멋모르는 철없는 여행자여서였을까 내가 제시한 가격을 듣고 어이없어하거나 억울해하는 모습도 본다. 그럴 때면 마음이 참 복잡스럽다.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훨씬 저렴하다. 그들이 처음에 부르는 금액도 사실 한국에 비하면 높은 액수가 아니다. 실랑이 끝에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가져온다고 해도 그리 기분 좋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값을 깎으려고(한국 돈으로 계산해보면 500원인 경우도 있다) 서로 날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면 허탈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책으로 배운 흥정법을 당당하게 써먹지 못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값을 알지도 못하는 여행자가 무턱대고 값을 깎다가 실례를 범하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례한 여행자로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앞으로 올 여행자들을 위해서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실랑이가 생길 것 같으면 그냥 살까… 라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아니면 물건을 내려놓거나.
인도에 갔다와서 한참 뒤, 유튜버 원지의 하루를 보다 알게 됐다. 원지는 릭샤꾼과도 가게 주인과도 흥정으로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다. 한국 돈으로 얼마 안되는 금액인 것을 안다. 그는 그냥 좋은 일 한다는 셈치고 속아준다. 그리고 그 일로 룰루랄라 기분 좋아하는 그가 보인다. 신선했다.
그 영상을 보고서 머리를 댕하고 맞은 듯했다. 여태 내가 보아왔던 책과 영상에서는 모두 현지인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서로 화를 내고 기분이 상하는 모습만 줄곧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야만 하는 게 맞는 일인 줄 알았다. 나도 귀찮거나 이 정도는 속아 넘어가도 괜찮을 정도의 가격에는 가끔 그런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곧바로 내가 손해보는 것은 아닌지 셈하거나 아쉬워했다. 그의 주머니 사정과 나의 주머니 사정이 다를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는 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값을 깎았다기보다 쉬워보이지 않는 여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손해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한 것이 더 맞았다.
나도 그처럼 그냥 가끔은 손해봐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도에서 매번 그런 자세로 여행을 하며 지낼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으로 현지인들을 대했으면 조금 더 넉넉한 품으로 그들과 어우러지는 여행을 했으리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