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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Jan 11. 2023

루다의 고향으로

벵갈루루, 인도


드디어 루다를 만나러 간다.




인도에 입국한 지 며칠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델리 여성 전용 호스텔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와 친구가 되고 헤어질 때 말했다.


‘내가 만약 세 달간 여행을 무사히 마친다면 너의 고향인 벵갈루루에서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인도에 입국하기 전에는 천재지변에, 입국하고 나서는 폭동에, 설상가상 물갈이까지 된통 걸려 하루종일 호스텔에 의도치 않게 갇혀있다가 끼니만 때우려 겨우 델리 여행자 거리만 전전하던 시기였다. 가장 의욕이 넘쳐야 할 입국 초반에 굉장히 의기소침해졌고 체력도 바닥났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수많은 우려를 물리치고 이곳에 온 건지.


때마침 루다를 만나면서 여행의 활력이 돌았다. 루다는 한국 드라마와 BTS 좋아 자막 없이 그것을 즐길  있을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했고 한국 문화를 사랑했다. 안내원의 실수로 그녀와 침대가 겹치면서 우리는 말을 트게 되었는데 서로의 나라에 대한 궁금증으로 밤새 수다가 이어졌다.


다른 친구들이 다 잠든 와중에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그녀의 침대에 마주 보고 앉아서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루다의 유창한 한국어 덕택에 인도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쏟아내었고 이에 대한 답변을 현지인에게 들을 수 있다니, 꽤나 구체적이고 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감격에 벅찼다.






꼭 루다를 루다가 사는 동네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  달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있을까?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지쳐서 돌아가고 싶은 것을 대비하기 위해 리턴 티켓도 날짜 변경이 가능한 항공사로 결제해 놓은 상태였다. 그만큼 나는 인도에서 101일을 보내겠다는, 보낼  있다는 확신이나 용기 같은 것이 없었다.


세 달 전과 후를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다. 처음 입국 초반에는 호스텔 밖만 나가도 누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일념 하에 저녁 7시 전에는 숙소에 돌아오는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혹여나 발걸음이 늦어져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이 7시 10분, 15분이 되면 마음이 너무 불안했고 걱정스러웠다. 발걸음을 재촉해 호스텔에 도착하면 여성 전용 8인 도미토리에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가장 일찍 도착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도 부지기수였고(그때마다 친구들이 숙소에 데려다주거나 다 같이 묵는 숙소에 함께 들어갔다) 누군가 나를 해친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동행들과 동선이 달라지면 헤어져 혼자 슬리핑 기차나 버스를 타고 새로운 곳을 가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혼자 슬리핑 버스를 타고 벵갈루루로 온 나는 너무 평온하다. 정말 여행자 체질인지 버스에서는 꿀잠을 잤다. 남인도라 그런 것도 한몫한다. 북인도보다 남인도가 더 잘 잘살기도 하고, 덜 관광지인 곳이 많아서 사기꾼이나 삐끼의 걱정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 여유롭고 경계를 해야 할 사람들이 적었다.


게다가 다름 아닌 현지 친구 루다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닌가! 두려울 게 없었다.





루다는 자동차를 몰아 내가 머무는 호스텔에 나를 데리러 왔다. 거의 정확히 3개월 만의 재회였다. 믿기지 않았다. 인도에서 3개월이나 보냈다는 사실도 루다를 본 지 3개월이 됐다는 사실도. 감회가 새로웠다. 3개월 간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채로운 경험을 했고 또 바뀌었다. 이 많은 걸 다 말할 수는 없었고 그저 반가웠다.


나를 데리러 온 루다는 바로 벵갈루루의 한식당으로 향했다. 평소 루다도 가끔 간다는 곳이었다. 베지테리언인 루다는 비빔밥을, 나는 매콤한 국물의 김치찌개를 시켰다. 인도에 있는 동안 수없이 먹은 한식이지만 루다와 먹으니 또 달랐다.





벵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부르는 첨단 IT 산업도시여서 직장인들이 많았다. 인도에서 사는 한국 직장인들도 그곳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관광지가 아닌 그들의 삶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아 루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 다음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발리우드!


호스텔에서 루다와 만나기로 한 쇼핑몰까지 40분 정도였다. 벵갈루루 시내도 구경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북인도에서는 길거리를 건너는데도 심호흡이 필요했다. 혼자 건너지 못했고 길을 건너는 모르는 현지인들 옆에 바짝 붙어서 기회를 틈타야 했다.


인도에 적응이 된 건지 길을 건너는데,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와 번접한 거리를 보는데도 무섭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벵갈루루는 남인도에서도 잘 사는 부유한 대도시여서 그런지 몰라도 인도에서 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니. 예상치 못한 변화에 놀라고 약간은 스스로가 기특했다.





약속한 장소와 시간에 루다가 없었다. 네팔에서 인도로 다시 입국한 이후 나는 인도 유심칩을 사지 않았다. 한국과의 연락을 최소한 하고 여행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그만큼 인도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핸드폰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나는 루다에게 연락할 방법도, 루다의 연락을 받을 방법도 없었다. 몰 안에도 들어가 서성여도 보고 이십 분쯤 흘렀을까, 루다와 만났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던 것.





루다가 사주는 팝콘은 꿀맛이었다. 인도의 대형 쇼핑몰은 한국과 너무 비슷했다. 사실 그냥 한국이었다. 팝콘도 네 가지 맛이나 있었다. 기본과 캐러멜 맛은 물론이고 치즈와 초콜릿 팝콘도 팔았다. 영화관 내부도 cgv라고 해도 믿을 인테리어였다.


루다와 나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동갑에, 흔치 않은 외동딸이었다. 무엇보다 가족이나 일, 연애에 대해 생각하는 게 비슷했다. 얼굴색과 언어, 종교와 문화가 이토록 다른 사람과 이런 사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서로가 통한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모두 루다가 한국말을 능통하게 해서 가능해서가 첫 번째였지만 낯을 가리지 않고 루다는 첫날부터 ‘너’라고 하면서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날 대했다. 과하게 배려하지도 않았고 한국인이어서 잘해주거나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나를 진짜 친구로서 특별하게 대해주었다.


루다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인지 몰랐다. 그것도 그녀의 동네에서!





그녀가 한국을 방문하는 날을 고대한다. 같이 한복을 입고 떡볶이를 먹으며 인생 네 컷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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