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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준 May 22. 2021

푸생과 라파엘로

'프랑스의 라파엘로'라 불렸던 화가의 이야기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1594-1665)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 태생으로 로마에서 죽음을 맞이한 화가입니다. 나이를 세어보니 무려 일흔 하나. 그의 작품을 그토록 아꼈던 루이 14세만큼이나 오래 살았네요. 그가 죽음을 맞이한 뒤로 그에게는 “프랑스의 라파엘로라는 호칭이 붙습니다. 1520 사망한 라파엘로가 로마에서 완성한 서양미술의 중심이 프랑스로 옮겨간 셈이라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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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재라 불리는 전 세계 모든 유망주들이 그러하듯이 푸생에게도 이 호칭은 부담감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는 살아생전 “프랑스의 라파엘로”라 불린 적은 없지만 몇 가지 일화를 살펴보면 그에게 거는 후원가들의 기대치는 라파엘로의 것 못지않게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640년, 푸생은 후원가 중 하나인 Cassiano dal Pozzo로부터 작품 주문을 받습니다. 성서와 관련한 일곱 이야기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일이었는데, 푸생은 이를 위해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을 위해 만들어진 라파엘로의 걸작 « Actes des Apôtres » 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라파엘로의 작품(왼쪽)과 그것을 참고한 푸생의 작품(오른쪽)


 1642년, 왕실 건축 총감 (Surintendant des Bâtiments du Roi) François Sublet de Noyers는 푸생에게 편지로 ‘라파엘로의 마돈나(성모 마리아)’ 와 같은 ‘푸생의 마돈나’를 만들어 달라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탄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작은 취소된 모양입니다.)

 1643년, 푸생은 친구 Chantelou로부터 그의 수호성인인 사도 바울에 관한 그림 주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Chantelou는 친구의 그림을 그가 최근에 시중에서 구한 라파엘로의 그림과 같이 걸어두려 했나 봅니다. 이때, 라파엘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존재라 여기며 부담감을 느낀 푸생은 친구를 만류하려 하지만 결국 이 두 거장의 작품은 Chantelou의 집에 함께 걸리게 됩니다. 두 작품의 동일한 구성과 사이즈를 살피면 Chantelou는 결국 푸생을 설득하는데 성공을 한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디테일을 확인하면 라파엘로와 비교받기 싫었던 푸생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라파엘로의 작품 "에제키엘의 환영"(왼쪽)과 푸생의 작품 "성 바오로의 황홀경"(오른쪽)


먼저, 라파엘로의 작품 속에선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황금빛 하늘에서 속세로 내려온 천상 세계의 인물들이 보입니다. 반면 푸생의 작품은 푸른 하늘에서 사도 바울이 승천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죠. 등장인물들의 시선도 모두 정 반대의 구도로 그려졌습니다.


 이렇게 그려진 푸생의 작품 “성 바오로의 황홀경”의 추정가는 라파엘로 작품의 5분의 1 정도인 300 리브르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가 죽은 지 약 30여 년 뒤인, 1694년 라파엘로의 작품이 3000 리브르로 평가받았는가 하면, 푸생의 작품은 2800 리브르로 평가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후대에 « 프랑스의 라파엘로 »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참고서적

« Poussin et Dieu », sous la direction de Nicolas Milovanovic et Mickaël Szanto
Édition HAZAN, Musée du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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