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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준 Sep 23. 2020

19세기 에펠탑 논란 정리

누군가에겐 공장 굴뚝만도 못했던 에펠탑의 그 시절...

(사진제공 : Wikimedia Commons)


    파리의 에펠탑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료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명소다. 에펠탑이 유명해진 데에는 탑을 둘러싸고 있는 파리의 아름다운 전경도 한몫을 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경을 보는 건 개선문에 올라가는 게 더 이쁘긴 한데, 아무래도 더 높은 곳이 끌리기 마련이니 에펠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에펠탑에서 바라본 파리 전경 (사진제공 : Wikimedia Commons)

    그렇다고 굳이 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 1-2층(한국식 2-3층)까지만 올라가도 충분히 높고, 충분히 다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1-2층에는 멋진 뷰와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도 있다. 아마 에펠탑을 이미 다녀온 이들이라면 이곳의 식당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에펠탑 1층의 어느 식당에선 프랑스 유명 작가 중 한 명인 Guy de Maupassant(모파상, 1850-1893)이 식사를 주로 즐겼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기자가 다가와 질문을 던진다. "굳이 이 곳에서 식사를 즐기고 계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는 대답한다. "이 곳에 있어야만 에펠탑이 보이지 않아요." 모파상은 에펠탑 건립에 가장 강력히 반대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펠탑이 완성되고 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다 결국 에펠탑 1층에 오게 된 것이다. 실제 그의 몇몇 작품 속에서는 에펠탑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구절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일부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특히, 당시 파리에 거주하던 많은 작가, 예술가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탑이 세워지기로 결정된 1887년부터 한데 모여 성명문을 내고 에펠탑 건립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게 된다. 아래 내용은 파리의 저명한 일간지 중 하나였던 Le Temps에 실린 글이다.


    Alphand 위원장에게,
    파리의 무구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작가,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우리는 위협받고 있는 프랑스 역사와 예술을 지켜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파리 한복판에 지어질 볼품없고 쓸모없는 에펠탑 건립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이 탑은 겉보기에 좋은 의미로 포장된 듯 보이지만 실은 일부 사람들의 욕심으로 빚어낸 바벨탑과 다를 바 없습니다.

1887년 2월 14일 자 Le Temps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의 해인 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만들어질 건물이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무려 47명의 문예인들이 반대의견을 표시한 것이다. 이 중에는 모파상뿐만 아니라  Alexandre Dumas fils, 그리고 파리 오페라극장을 탄생시킨 Charles Garnier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못마땅해한 것은 에펠탑이 지어진다는 사실보다는 이 탑이 20년 동안 철거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래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에펠탑이 변화시킬 파리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첫 번째, 그들은 에펠탑이 '프랑스적이지 않다'라고 말한다.


    국수주의적 관점을 떠나, 파리는 위대한 도시임에 틀림없으며 우리는 이를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파리의 골목, 넓은 대로와, 감탄할만한 강변로, 그리고 아름다운 산책로 위에는 인류가 빚어놓은 위대한 문화유산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파리는 그야말로 프랑스의 영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혼은 석조건축이 만들어낸 화려함 속에서만 빛이 날 것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더럽혀지게 내버려 둬야 할까요? 파리는 이제 엔지니어들의 탐욕스러운 상상력에 의해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고 이 도시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에펠탑은 아메리카의 상인들조차 원치 않는 파리의 불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모두가 하는 이야기들을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누구나 우리처럼 생각하고 있고, 우리와 같이 말하고 있으며, 우리처럼 깊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람회가 열린 뒤 외국인들의 반응을 상상해 봅시다. 그들은 놀라며 분명 이렇게 소리칠 것입니다. "이 끔찍한 건 뭐지? 과연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내놓은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그들의 비웃음은 결코 잘못된 게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고 있는 도시는 더 이상  예전의 파리가 아닌 Gustave Eiffel(구스타프 에펠, 1832-1923 : 에펠탑의 건축가)의 파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1887년 2월 14일 자 Le Temps

   

    그들은 두 번째 이유로서 에펠탑이 얼마나 볼품없는 건물인지 묘사하기 시작한다.


    한 번 상상해보시죠. 파리를 덮어버릴 정도로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탑이 세워질 것입니다. 이는 마치 컴컴한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 굴뚝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야만스러운 모습에 Notre-Dame(노트르담 대성당)과 la Sainte-Chapelle(생트 샤펠 성당), Saint-Jacque(생쟈크) 탑과 Louvre(루브르 박물관), Invalides(앵발리드)의 돔, 개선문의 모습이 모두 묻혀버릴 것이며, 이러한 위대한 건물을 탄생시킨 건축가들을 욕보이게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어리석은 꿈 때문에 우리의 모든 위업과 위인들이 사라질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에펠탑은 지난 몇 세기 동안 격동의 세월을 보낸 도시 전체를 어둠으로 뒤덮을 것입니다.

1887년 2월 14일 자 Le Temps


    이 이상으로 에펠탑을 비난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만큼 이 항의문은 그들이 철골 구조물에 보인 거부감이 상당히 컸다는 것을 말해 준다. 철골 구조는 이미 오랜 전부터 프랑스에서 사용되었지만 뼈대를 만들거나 천장 유리와 같이 창문을 설치하는 데나 사용되었을 뿐이지 겉으로 드러나게 지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프랑스 여러 도시에서는 집을 짓는 데에 점토로 만든 벽돌과 석재를 깎아 만든 재료만 허용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몇 백 년간 이어진 전통이다 보니 에펠탑 건립은 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1889년 에펠탑이 완성되었을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 : Wikimedia Commons)


    하지만 구스타프 에펠은 이에 굴복하지 않는다. 어차피 에펠탑 공사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였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일간지 Le Temps은 항의문을 올린 그 날, 그를 취재하여 그의 인터뷰도 함께 공개한다.


    나는 이 탑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략) 네 모서리에서 뻗어져 나오는 곡선은 치밀하고도 정교하며, 이는 커다란 아름다움을 표현해낼 것입니다.
    그리고 곡선이 그려내는 거대한 기둥의 표현은 지금까지 전혀 구현된 적 없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는 마치 피라미드가 인류의 상상력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친 것과 같다고 할까요? 또 적절한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중략) 이 탑은 인류가 그동안 세운 적 없는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것입니다. 이 정도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이집트에선 놀랍다고 말하는 것들이 파리에선 우스꽝스럽고 추하다고 평가받는 것일까요? 나는 아직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이제는 프랑스가 즐거움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술자와 건설가들을 보유한 나라임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중략) 어쩌면 에펠탑은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1887년 2월 14일 자 Le Temps


    그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미래의 에펠탑이 가지게 될 영향력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예언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에펠탑은 오늘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다. 심지어 에펠탑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전 세계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음에도 그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에펠탑은 만국박람회 개최일인 1889년 5월 15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다. 본래 20년 뒤, 철거 예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등장해 버렸다. 구스타프 에펠은 위 인터뷰와 같이 에펠탑이 미래에는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 예언 또한 보기 좋게 적중한다. 파리가 어느 날부터 송전탑을 필요로 하기 시작한다. 파리의 탑은 하나뿐이었고, 그렇게 에펠탑 꼭대기에는 송전탑이 설치되어 없어선 안될 건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문예인들이 낸 반대의 목소리는 자연스레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 반대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밖에 없었던 충격적인 결과 때문이다. 에펠탑이 외국인들에게 흉물처럼 보일 것이라는 그들의 예언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많은 외국인들이 에펠탑에 몰리게 되면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소문으로는 에펠탑을 만드는 데 빌렸던 돈을 1년도 안되어 갚을 수 있었다고 하니 그들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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