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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준 Sep 27. 2020

'민주적' 사형 도구, 기요틴의 탄생

기요틴은 기요틴이 만든 게 아니다?

        단두대. 어디서든 주워 들었을 법한 단어다. 한자의 의미대로 옮기면 '머리를 끊어버리는 대'라는 매우 직설적인 표현으로 변한다. 이 '단두대'하면 생각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혁명기의 프랑스다. 왕과 왕비가 바로 이 도구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프랑스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함께 떠돌고 있는 소문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단두대를 'Guillontine(기요틴)'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람 이름이다. '기요탱’박사가 단두대를 만드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요틴'을 만든 '기요탱' 박사도 '기요틴'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문이 있다. 재밌는 에피소드 같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분 '기요틴' 탄생한 이후에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 자연사하셨다. 어떻게 이 이야기가 변형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요틴은 이때 개발된 이후로, 1977년까지 약 2세기 동안 프랑스의 사형 도구로 남게 된다.

    그런데 혹시 이 잔인한 도구가 '민주적'인 이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무래도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프랑스 혁명기 만들어진 도구다 보니 얼추 그럴듯해 보인다. 실제로, 기요틴은 혁명 이전까지 시행되어 오던 잔인한 집행 방식을 간소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때는 혁명이 일어난 원년, 1789년 10월의 일이다. 혁명이 터진 지 벌써 3개월이 지났고, 왕을 따돌리고 주도권을 잡은 국민의회가 자유와 평등에 의거한 여러 법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10월 10일 국회가 개회한다. 개회를 알린 지 얼마 안 되어, 한 의원이 연단에 나서게 되는데, 그는 파리를 대표해 참석한 인물로서 의사 출신의 Joseph Ignace Guillotin(기요탱, 1738-1814)이라 불렸다.

    당시 적어놓은 회의록에 따른다면 그가 제안한 ’사형집행방법의 일원화’는 죄수들의 가족들이 껴안을 불명예(l'infamie)를 없애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혁명기 이전까지 집행되었던 사형은 굉장히 잔인했으며 비효율적이기도 했다. 집행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했고, 어느 방법이었든 간에 첫 시도만으로 성공하기란 매우 힘들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의도와는 다르게 더 잔혹한 장면이 연출될 위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요탱은 이런 위험한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을 위해 조금 더 간소화되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단두대'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내 도구를 사용한다면, 머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몸과 분리될 것이며,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한 '내 도구'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기요틴'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스코틀랜드와 이탈리아에서 이미 쓰인 바 있던 'maiden', 'mannaia'의 모습과 유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발명'이라 하기엔 조금 애매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많은 반론이 오늘날까지도 제시되고 있다.

    어쨌든 이 연설이 끝나고, 기요틴이 제안한 내용이 반영되기까지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791년 10월 6일, 마침내 '간소화된 사형 절차'와 '참수형의 의무화'와 같은 내용을 담은 형법 2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792년 3월, 더 많은 의논이 필요했는지, 최선의 사형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의사 Antoine Louis(1723-1792)가 지명된다. 그는 고령의 의사로서 외과 분야에 이미 많은 업적을 쌓은, 그야말로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기요탱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사형 도구에 대해서였다.


    죄수의 목을 자르기 위한 과거의 방법은 간소화된 절차라 하기엔 너무 끔찍해 보인다. 우리는 지난 de Lally 참수 장면을 돌이켜  필요가 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고, 눈은 가려져 있었다. 사형수는 이어 그의 목덜미를 세게 내리쳤지만,  방법만으로는 목을 완전히 분리시킬  없었다. 결국 세네 번을 내리친 뒤에야 몸은 몸통에서 분리될  있었다.
1792 3 22  Le Mercure universel


    그는 이와 같이 자신의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다음과 같이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게 된다.


    기존의 도구를 그대로 유지하되,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새로 제정된 형법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선 사형은 단숨에 집행되어야 한다. 시체나 살아있는 양으로 실험을 먼저 해본다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792년 3월 22일 자 Le Mercure universel


    이렇게 기요틴은 Antoine Louis에 의해 재탄생된다. 그는 기술자들과 협업하여 '업그레이드'된 기요틴을 탄생시키게 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높이였다. 사람이 휘두르는 칼질만으로는 목을 단숨에 끊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중력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14피트(약 4.2m)에 달하는 높이의 기요틴이 만들어졌다.

기요틴의 모습 (사진제공: Wikimedia Commons)

    또한, 평평했던 나무판자에 오목한 홈이 생기면서 목을 올려둘 수 있는 공간도 생겨났다. 그리고 잔인한 장면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처형대는 6피트(약 2m) 높이에 설치되기로 정해졌다. 실제로 이 모든 결과는 죄수들의 시체와 살아있는 양을 대상으로 한 실험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와 관련하여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Antoine Louis가 조언을 얻기 위해 루이 16세 왕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다. 루이 16세는 어릴 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에게 의사가 조언을 요청했고, 흥미를 보인 왕이 제법 신박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음모론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만약 이 루이 16세가 기요틴을 만들었다면 그는 자신이 만든 사형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듣기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알고 있는 단두대의 모습은 이렇게 Antoine Louis박사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그 시작점이 기요탱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기요틴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어 보인다. 최초의 사형집행은 보고서를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일어나게 된다. 1792년 4월 25일 절도 살해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Nicolas Jacques Pelletier가 그 주인공이었다.


    Pelletier라 불리는 이 살해범은 5구 법정으로부터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형 집행은 바로 오늘 Greve광장(현 파리 시청사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이 새로운 형태의 사형 도구는 제법 많은 숫자의 군중들을 불러 모았다. 도구는 약 6피트 높이의 공개 처형대 위에 설치되었고, 나무판자 위에 죄수의 목을 올려놓은 상태로 형이 집행되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군중들은 그들이 서있던 위치 때문이었는지, 그 어떠한 혈흔도 찾아낼 수 없었다.
1792년 4월 26일 자 Le Mercure universel


    실제로, 너무 빨리 끝나다 보니 대중은 사형집행인에게 야유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또 다음날에는, 이를 비꼬는 노래도 탄생하게 되는데, 노래 내용은 '교수대(교수형을 집행하는 도구)를 돌려달라'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약 2세기 동안 기요틴은 프랑스의 공식 사형 도구로 남겨지게 된다. 우리가 아는 '기요틴'이라는 이름은 최종적으로 공식화된 이름이다. 사실, 그 이전에는 다양한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하는데, Antoine Louis박사를 경애하는 뜻에서 'Louisette'라는 이름도 있었는가 하면, '조용한 물레방아(le moulin à silence)', '국가의 면도날(le rasoir national)', '애국을 위한 축소/압축(le raccourcissement patriotique)'과 같은 재밌는 이름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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