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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준 Oct 20. 2023

[파리전시]마크 로스코 회고전

루이비통 재단 특별 전시 리뷰

19세기 프랑스, ‘문학가들의 먹잇감(Proie des littérateurs)’이 되기 싫었던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비평가들의 비난을 따돌릴 수 있는 새로운 언어(Langage)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려 합니다. 이를 위해 문학가들의 세상인 파리를 벗어나 거처를 타히티(Tahiti)로 옮기고 자연에서 찾기 쉬운 천연색만을 이용해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 속의 이야기를 만들죠.
 우리가 때때로 예술가들을 작가라 부르는게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요? 화가들은 작가처럼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문학가’들처럼 특정한 나라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나 문자로 펼쳐지지 않고, 색이나 형태와 같이 우리에겐 다소 낯선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죠. 때문에 이를 이해하려면 언어처럼 일종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예술가는 되도록이면 많은 이들을 공감시킬 보편적인(universel) 언어로 이야기를 구성해야만 감상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고갱이 자신의 언어를 자연에서 찾은 데에는 이러한 목적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죠.


안녕하세요


오늘의 소식은 파리 외곽에 위치한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의 전시 소식입니다. 바로 미국의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가 그 주인공인데요. 개인적으로 앞서 소개한 고갱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한 화가가 로스코라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제목도 없을 뿐더러, 특정한 대상을 그리지 않고 단순한 형태와 색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죠.


그런 그의 회고전이 1999년 파리에서 치러진 이후로 24년만에 루이비통 재단에서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워싱턴 소재 내셔널 갤러리, 런던 테이트 갤러리 뿐만 아니라 로스코의 후손으로부터 빌려온 작품까지 포함해 총 115점이 모인 이번 전시는 루이비통 재단에서 9월 새시즌을 맞이해 준비한 최대 규모의 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는 10월 18일 시작되었고 저는 어제 19일 다녀왔습니다.


회고전이라는 테마에 맞게 전시는 로스코의 커리어를 연대기 순으로 보여줍니다. 마티스 등의 영향을 받아 뚜렷한 형태보다는 강렬한 색채 중심의 작업을 이어가던 그가 어떻게 추상화가로서의 길을 밟게 되었는지, 총 10개로 구성된 전시실에서 순차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1번 전시실로 들어가기 전, 먼저 어떤 방식으로 방이 나뉘었는지에 대해 아주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보통 루이비통 재단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큐레이팅에 대해 알려주는 경우가 없었는데요. 아무래도 테마가 회고전이기 때문이겠죠?



자화상을 시작으로 등장하는 로스코의 초창기 작품은 평소 ’추상적‘으로만 알고있던 로스코의 삶을 비교적 가까이서 만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어떤 시기를 거치면서 ’비극‘이란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추상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렇게 지하1층의 두개의 방을 감상한 뒤에 나오는 1층의 방부터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로스코의 추상화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와 같은 철학자들의 작품을 접하며 평소 비극에 관심이 많던 로스코는 비극을 접하며 느끼는 감정에 대해 몰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극의 내용이 아닌 비극을 마주하는 우리의 감정에 대해서 말이죠. 로스코는 이를 ’초월적인 경험‘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로스코는 긴시간의 명상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작품은 그의 마음 속에도 존재하며,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말해주죠.


이를 마주하는 감상자의 기분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로스코의 그림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을 스스로 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파리 유네스코 본사에 지아코메티의 조각과 함께 걸릴 예정이었던 로스코의 작품


무엇보다 다른 전시와 달랐던 부분은 제목을 달지 않는 로스코의 방식으로 인해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시회를 찾다 보면 제목을 확인하는 행위가 감상을 방해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런 불편함이 적어서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다만, 너무 다양한 감정의 형태를 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로감이 느껴졌습니다. 현대 미술 감상에는 순간성이 중요하다는데 비슷한 형태의 작품을 수십점 연속으로 감상하니 확실히 한계가 느껴지네요. 두 번 이상은 방문해야만 제대로된 감상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전시기간이 꽤 깁니다. 무려 내년 4월까지 이어진다고 하네요.

파리를 찾는 분들은 꼭 다녀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 전시안내


기간 : 2023.10.18-2024.04.02

장소 : 루이비통 재단

운영시간 : 연중무휴, (토-목)10:00-20:00 (금)10:00-18:00

입장료 : (일반)16유로, (26세 미만)10유로, (18세 미만)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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