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낯선 이에게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뉴욕 교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신부님이었다. 마침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 이분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신부님은 기독교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계셨다. 그리고 내게 게스트로 한번 나와달라며 부탁하셨다. 집 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코리아 타운에서 냉면까지 얻어먹은지라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개독해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개독해독은 신 알렌 주교님과 정재욱 신부님(정 프로), 영숙 씨와 썰님이 중심이 되어 한인 선교를 위해 만들어진 성공회 프로젝트다. 난 당시 방송에 나와 관심 있게 공부하던 퀴어 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는 즐거웠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당시 진행과 편집을 맡고 있던 정 프로님은 여러모로 방송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일단 롱아일랜드에서 맨하탄까지 오가기가 힘이 들었고, 가사와 사역 여러 일들이 겹쳤다. 진행과 편집을 누군가가 맡아주길 바랬고, 난 이 일을 내가 맡겠다고 자청했다. 정 프로, 영숙 씨, 썰님 세 사람의 방송은 영숙 씨, 썰님, 쑤니, 홍신해만 네 명으로 새롭게 구성되었고, 사실상 시즌 1.5 체제로 방송을 이어갔다.
정 프로님은 방송엔 출연하지 않았지만, 녹음이 있는 날엔 종종 참여하셨다. 일이 고되었는지 피로해 보였고, 몸도 말라갔다. 그러던 중 정 프로님의 암이 재발했던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프로님은 세상을 떠났다. 한 동안 방송을 하지 못했다. 우린 그냥 내내 울었다.
힘들게 추모 방송을 준비했고, 너무나 큰 공백을 느끼며 방송을 이어갔다. 하늘나라에 있는 정 프로님의 몫까지 열심히 하자고 각오를 다지며, 방송을 만들었다.
개독해독은 연애, 결혼, 정치, 페미니즘, 수도원, 동물권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뉴욕교구의 신 알렌 주교님과 유니온 신학교의 정현경 교수님을 게스트로 모시기도 했다.
상위권 랭크의 방송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지만, 매 에피소드를 꾸준히 청취해주시는 분들이 수백 분이었다. 즐겁게 듣고 있다며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정말 감사했고, 이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사연 많은 1년이 지났다.
난 유니온에서 STM과정을 마치고 시카고 신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다른 패널들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다 함께 모여 방송을 이어가긴 힘들어졌다. 우린 개독해독 시즌1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오늘 마지막 방송 편집을 마치고, 팟빵과 아이튠즈에 업로드했다.
학업을 하며, 방송을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끝나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서운한 마음이 더 크다. 함께한 패널들과의 이별도 많이 아쉽다.
우린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정 프로님 생각이 정말 많이 난다.
사요나라. 1년간 정말 고마웠어요.
개독해독 지난 방송은 팟빵과 아이튠즈를 통해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팟빵: http://www.podbbang.com/ch/9487
아이튠즈: https://itunes.apple.com/kr/podcast/gaedoghaedog-sijeun1/id1054270283?m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