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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황도광과 광공해

들어가면서

최초로 DDT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고발한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의 저자 레이첼 카슨.

1964미국의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은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티푸스와 말라리아로 고통받던 인류를 일거에 구원해준 기적의 물질 DDT가 사실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DDT는 이전의 살충제와는 달리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생물이나 햇빛에 의해서 잘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한번 뿌리면 수개월이나 살충 효과를 보이는 이상적인 살충제였다이 때문에 사람들은 DDT를 비행기를 이용하여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거나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의 몸에 직접 뿌려주기도 하는 등 쓰면 쓸수록 좋은 물질로 여겼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해되지 않는 DDT는 먹이사슬의 위로 갈수록 점점 쌓이게 되었고 DDT가 살포된 지역에서 수많은 야생동물의 사체가 발견되었다카슨은 그녀의 저서에서 이와 같은 생태계 교란이 DDT 때문이며지금과 같은 화학물질의 무조건적 남용은 언젠가 인류에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였다.

독일의 한 학교에서 어린아이에게 직접 DDT를 뿌리는 모습.

카슨의 책 한 권은 지금까지 인류가 과학을 바라보던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당시까지 과학은 인류가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하지만 DDT의 감추어져 있던 위험성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그렇기에 과학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가 피해를 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황도광

황도광과 은하수. 이미지 중심의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빛이 황도광이다. <출처 : APOD 2016 September 1>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날씨가 맑은 밤마다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시간이 흐를 때마다 별이 뜨고 지는 모습그리고 한 해마다 조금씩 위치를 바꾸는 행성들의 모습은 내게 감동으로 다가왔고특히 여름마다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강원도 시골에서 보낸 학교생활은 지금까지 천문학을 공부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돌이켜보면 그동안 정말 많은 천체를 보고또 사진으로 남겼으며 때로는 연구해보기도 했다그러다 보니 대학교 3학년쯤 되어서는 이제 한국에서 보이는 밤하늘이 너무 익숙해져 더는 예전 같은 흥미를 느끼기 힘들어졌다.


그런 나에게 변화의 계기를 준 것은 지난겨울에 다녀온 호주 여행이었다서호주의 중심도시 퍼스에서 차로 8시간 동안 사막을 가로질러 도착한 캘굴리(Kargoorlie)는 서호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는 통계가 무색하게 모든 마트가 7시면 문을 닫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그런데 캘굴리의 밤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야경보다도 아름다웠다너무나 또렷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구름처럼 보이는 은하들은 도시의 네온사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조화로웠다무엇보다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태양계 천체 개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먼지 티끌들이 만들어내는 황도광이었다.


황도광이란하늘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를 따라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티끌들이 마치 태양빛을 흩뿌려 하늘을 파랗게 만드는 지구 대기의 작은 입자들처럼 태양빛을 산란시켜 빛나는 것이다이렇게 흩뿌려져 있는 빛은 태양 근처에서 가장 밝기 때문에 주로 태양이 진 직후나 태양이 뜨기 직전에 잘 보인다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이를 태양이 지고 나서도 남아 있는 태양빛을 이르는 박명에 빗대어 가짜 박명이라 불렀다그렇다면 황도광을 만드는 티끌들은 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서 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일까그것은 태양계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

태양 역시 다른 별처럼 우리 은하의 나선팔에 위치한 가스 구름들이 수축하면서 뭉치게 되어 만들어졌다그런데 가스 구름을 이루는 분자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축을 중심으로 회전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한 점으로 수축하지 않고 얇은 원판 모양으로 수축하게 된다이 과정을 통해 중심에 태양이 만들어지면 남은 티끌들이 자기들끼리 뭉쳐 소행성과 행성이 된다소행성과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면서 인근의 티끌들을 끌어당겨 몸집을 불리게 된다그런 과정을 거치고도 여전히 남은 티끌들은 그 원판 위에 얇고 넓게 퍼져서 태양 주위를 돌게 되고이것을 우리가 하늘에서 봤을 때는 태양이 하늘에서 지나가는 길을 따라서 길게 퍼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태양계의 형성 과정. A. 수축하기 전의 가스 구름 상태 B. 중심부는 수축하고 가장자리에 원반 형성 C. 행성이 형성되고 남은 먼지 티끌들이 고리 모양을 이룸 D. 현재의 태양계

태양 방향의 티끌만 빛나는 것도 아니다태양 반대편의 티끌도 빛나고 있는데 이를 대일조(gegenschein)이라고 한다태양 방향의 티끌들이 태양빛을 퍼지게 해서 빛나는 거라면 태양 반대편의 티끌들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빛나는데그렇기에 대일조는 길게 늘어진 황도광과는 달리 황도 위태양의 맞은편 지점 근처에서 엷게 빛나는 구름처럼 보이게 된다.

대일조의 모습. 밤하늘 중간에 떠 있는 엷은 구름 모양의 대상이 대일조이다.  <출처 : APOD 2012 December 2>

이처럼 황도광과 대일조는 태양계에 분포하는 미세한 티끌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을 연구하면 그러한 티끌들의 분포를 짐작해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태양계의 생성과정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현상이다. (밴드 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이에 관련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는 이렇게 신비로운 현상을 관측할 수가 없다그것은우리의 밤하늘이 너무 밝아져 잔잔하게 빛나는 황도광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불면의 밤


전등의 발명은 인류의 시간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예로부터 해가 저무는 시간은 일과의 끝을 의미하였지만전등이 발명되고 나서는 일과라는 개념이 더 늦게까지 연장되게 되었고더 나아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일출과 일몰 시각에 상관없이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이에 따라 인류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그로 인해 증대된 생산성은 20세기 기술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또한인류가 건물 밖까지 불빛을 밝힐 여유가 생기면서 밤거리는 예전보다 더 안전해졌고음지에 있던 밤이라는 시간이 양지로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이렇게 밝아진 도시의 불빛은 아래의 사람들과 거리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었다인공조명에서 나온 빛이 대기의 수증기를 통해 퍼지게 되면 마치 태양빛이 하늘을 파랗게 물들이는 것처럼 밤하늘을 더 밝게 만들기 때문이다특히 대기 중에 오염물질이 많아지면 이러한 오염물질들이 빛을 더 퍼지게 하므로 어두운 밤하늘을 가리게 된다이렇게 밝아진 밤하늘은 천문학자들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1910년 리글러는 도시의 인공 불빛이천체관측에 방해가 됨을 지적한 바 있으며 그것은 얼마 안 가 사실로 드러났다대표적인 예시로 허블이 은하 관측을 통해 우주 팽창을 발견한 윌슨산 천문대는 그 당시보다 6배 밝아진 로스앤젤레스 때문에 1985년 문을 닫아야 했다. 1970년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광공해 (light pollutio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고, 1985년 핼리 혜성이 근접했을 때 일반인들도 도시의 불빛이 그동안 당연하게 볼 수 있었던 밤하늘을 가리게 되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마치 DDT의 부작용이 일부 생물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던 것처럼 광공해로 인한 피해도 천문학자들만의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도시 불빛으로 인한 광공해. 위에 있는 무지개색 불빛은 도시 불빛을 분광한 것으로 연속적인 햇빛과는 달리 띄엄띄엄 빛이 나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조명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우리가 밤에 대한 승리로 여겼던 도시의 불빛에 대한 시선이 바뀌기 시작하였다무엇보다 조명에 의한 생활 패턴의 변화가 인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음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태양빛은 연속 스펙트럼인 데 반해 형광등 빛은 몇 개의 수은 방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두 가지 빛 모두 하얀 빛이지만 우리 몸은 그에 다르게 반응하면서 형광등이 켜져 있음에도 이를 암흑 상태로 인식하게 되고생체 시계의 교란을 가져와 금세 피로해지고또 편두통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또한밤에 분비되는 이로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에도 영향을 주어 암 발병률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하고 지나치게 밝은 빛은 스트레스와 불안심지어는 정신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 점점 밝혀졌다.


더 나아가서이러한 광공해는 수질오염이나 대기오염처럼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는 연구 역시 계속 발표되고 있다호수 근처의 강한 조명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에 영향을 주어 조류의 발생을 억제하지 못하게 하고 그로 인해 녹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또한이러한 조명들은 새나 곤충의 야간 비행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특히 철새의 경우 도시의 불빛에 의해 방향을 찾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불을 켠 빌딩에 부딪혀 죽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달의 주기나 낮의 길이와 번식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생물들 역시 주변의 조명에 의해 생체주기가 교란되면서 번식의 기회를 놓치고 종 자체가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이처럼 밝은 밤하늘은 우리에게 쏟아지는 자연의 프레스코 천장 벽화를 뿌옇게 덮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자연의 생존에도 적지 않은 위협이 되는 것이다.


전 세계 광공해 지도. <출처 : APOD 2016 June 30>

다시, 침묵의 봄.


침묵의 봄에서 레이첼 카슨은 살충제의 긍정적인 영향을 부정하지 않았다단지 우리가 잠재된 장기적 위험에 고개를 돌린 채 자만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했을 뿐이었다전등 역시 인류의 발전에 쉽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공헌을 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발전에 적지 않은 숨은 비용이 들어갔다는 것이며 이제는 우리가 이 비용에 대해서 재고해봐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어쩌면 밤하늘에서 사라진 황도광은 그 비용의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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