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가득한 겨울밤 한가운데, 주위 모든 것이 고요한 어둠에 잠기더라도 두 눈에만은 푸른 별빛이 들어찬다. 까만 하늘의 장막에서 청백색의 광채를 요요하게 흩뿌리는 주인공은 바로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다. 시리우스는 곧잘 다이아몬드로 비유되곤 한다. 이 별이 파르라니 내뿜는 십자가 모양의 광채가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맑은 날에 꼭 어두운 외곽지역으로 나가서 시리우스의 다이아몬드를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찬연함은 뇌리에 깊은 감동으로 새겨질 것이다.
설령 교외로 나가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속상해할 필요 없다. 도시의 밤하늘에서도 여러 빛깔로 반짝거리는 시리우스는 잔잔하게 차오르는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 별을 밤하늘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오늘 밤 잠시 밖으로 나가서, 혹은 집에 돌아가는 밤길에 시리우스를 감상해 보고픈 분들을 위해 그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겨울밤하늘에서 오리온자리를 찾아보자. 오리온자리는 별자리의 대부분이 밝은 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장구 모양이라는 점, 그리고 오른쪽 어깨가 붉은 별(베텔게우스)이라는 점 등 두드러지는 특징이 많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리온자리를 찾았다면 삼태성이라고도 불리는 오리온의 허리띠를 찾아보자. 오리온자리의 가운데에 나란히 세 개의 별이 줄지어 있는데 이 세 별들을 연결한 선을 밑으로 주욱 내려 보자. 오리온의 뒤를 따르는 유독 밝은 별 시리우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우스는 겨울철의 대표 별자리인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은 알파별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사냥꾼 오리온이 데리고 다니던 개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시리우스는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별이었다. 이글거리며 불탄다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세이리오스(Σείριος)’가 바로 시리우스의 어원이다. 뜨거운 여름날을 의미하는 ‘dog days’라는 영어 표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가장 밝은 별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시리우스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예부터 동서양을 아울러 여러 문화권에서 관심을 받아왔다. 우리 조상들에게 시리우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대 중국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시리우스를 ‘늑대별’ 혹은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불렀다. 시리도록 푸른빛이 늑대의 눈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이 푸른 별로부터 개와 늑대라는 비슷한 동물을 떠올렸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시리우스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명은 바로 이집트 문명이다. 시리우스는 이집트 문명의 종교 및 신화뿐만 아니라, 피라미드의 환기창 위치에 시리우스를 고려하는 등 매장 풍습이나 사원 건축에까지 깊게 스며들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이 푸른 별은 성스러운 ‘나일의 별’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시리우스가 새벽 여명 속에 떠오르는 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하고 곧 있을 나일강의 은혜로운 범람을 준비했다. 시리우스를 관측하며 만든 고대 이집트 달력의 영향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은 율리우스력을 개정한 그레고리력이고, 율리우스력은 이집트의 달력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시리우스를 기준으로 한 이집트 달력이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달력의 조상인 셈이다.
이렇듯 각 문화권마다 시리우스의 의미는 달랐지만, 천문학자들에게 시리우스는 너 나 할 것 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가장 밝은 별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천문학자들이 다양한 관측 연구를 해온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시리우스가 현대 천문학 발전에 있어 새로운 문을 연 중요한 열쇠라는 점이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19세기 천문학자들은 별들이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과는 무관하게 별 자체의 ‘고유한 움직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별들의 ‘고유운동’이 반듯한 직선운동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당시 천문학자들은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몇몇 별들의 고유운동을 정밀하게 관측해서 새로운 별 지도를 만들자!” 천문학계는 이 별 지도 제작을 통해 하늘의 모든 별들의 위치와 운동은 물론, 별들의 미래 위치까지 예측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는 당연히 이 새로운 별 지도를 위한 관측 대상 0순위였다.
그런데 웬걸. 천문학자들의 희망은 시리우스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니 글쎄, 시리우스의 고유운동이 꽈배기마냥 꼬불꼬불한 것이 아닌가? 결국엔 별의 미래 위치를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리우스의 이렇듯 꼬불꼬불한 고유운동은 천문학에 있어 쓰디쓴 고배인 동시에 다음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열쇠였다.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은 시리우스의 운동에 대해 “시리우스에 아주 가깝게 위치한 어두운 천체가 있어서 시리우스의 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베셀의 생각대로라면 시리우스 가까이에 있는 어두운 천체 즉 ‘보이지 않는 별’은 빛이 아닌 시리우스의 고유운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빛을 통해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생각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1844년에 베셀이 시리우스 곁에 보이지 않는 짝별이 있을 것이라 예언하고 20여 년이 흐른 1862년 1월 31일 금요일이었다. 아버지 앨번 클라크와 아들 그레이엄 클라크는 망원경 제작자였다. 클라크 부자는 굴절망원경의 색수차를 테스트하기 위한 방법으로 푸른 별을 관측하는 방법을 사용하곤 했다. 그날도 그들은 47cm 굴절망원경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아들 그레이엄 클라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오리온자리를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오리온자리 가까이에 있는 푸른 별을 관측했다. 곧이어 찬란한 시리우스 별 옆에 희미한 별을 발견한 그가 말했다. “아버지, 시리우스에 짝별이 있네요.” 시리우스의 고유운동을 통한 가정으로만 존재했던 시리우스의 어두운 짝별을 실제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이 발견은 정말 우연한 발견이었고 또한 엄청난 행운이 따라준 발견이었다. 시리우스와 짝별이 가까이 붙어있었다면 시리우스의 밝은 빛에 가려 짝별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클라크 부자가 짝별을 발견한 시기는 마침 50년마다 오는 시리우스와 짝별이 멀리 떨어져 있는 시기였다! 또한 시리우스가 지구로부터 좀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이 경우에도 역시 짝별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시리우스는 태양계와 매우 가까운 편에 속한다. 이처럼 여러 조건이 우연히 맞물린 시기에 당시 최고 성능 망원경으로 시리우스를 관측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클라크 부자의 행운이었다. 이토록 로또 같은 행운이 연달아 따라 준 시리우스 짝별 발견 소식은 다음 날 전 세계에 전해졌고 천문학계는 흥분에 휩싸였다.
천문학자들은 밝은 별 시리우스를 ‘시리우스A’, 어두운 그 짝별을 ‘시리우스B’라고 불렀다. 짝별 B는 발견된 후에도 수수께끼의 천체였다. 짝별 B는 너무나도 어두운 별이기에 질량도 가벼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중력을 고려했을 때 시리우스 A의 고유운동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즉 짝별 B는 어둡고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에 비해 질량이 터무니없이 큰 특별한 천체여야 했던 것이다. 밀도가 태양의 100만 배인 물체, 지구 정도 크기에 태양의 질량을 가진 물체, 다시 말해 자동차만큼 무거운 각설탕 크기의 물체를 어떻게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원자들이 100억 분의 1cm 간격으로 붙어있고 우리 주변의 고체들보다 100배는 더 빽빽하게 압축된 물체의 존재를 말이다.
짝별 B가 발견되고 1년 후인 1864년, 분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급부상했다. 분광학이란 별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서 별을 구성하는 물질의 특징이나 온도 등을 알아내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짝별 B의 말도 안 되게 무거운 질량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이 분광학에 기대를 걸었다. 그래서 분광학을 통해 시리우스A와 짝별 B에 얽힌 수수께끼가 풀렸냐고?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분광학을 통해 수수께끼가 더 늘어났다. 천문학자들은 어두운 짝별 B는 온도 또한 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생 끝에 얻은 짝별 B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짝별 B의 온도는 예상외로 낮지 않았다. 뜨거운 별들이 시간이 지나며 온도가 내려가고 어두워질 거라는 당시 천문학의 이론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결과였다. 이렇게 또다시 천문학자들의 희망을 부숴버린 시리우스, 이 별에 얽힌 수수께끼는 이후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수수께끼야말로 천문학을 발전시켜온 원동력이 되었다. 짝별 B가 발견되기 전에도 발견된 후에도 시리우스가 한결같이 불러일으키는 궁금증들은 천문학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시리우스는 보이지 않는 천문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기존의 별에 대한 이론에 의문을 던져주었다. 또한 시리우스에 대한 분광 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고 언제나 분광 연구 대상의 우선순위로 손꼽혔다. 분광학의 발전은 태양과 더불어 시리우스를 향한 줄기찬 관측이 쌓이면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시리우스 A와 짝별 B의 관계는 별이 개별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주위를 공전하는 ‘쌍성계’로서 천체물리학에도 기여했다. 별에게 천문학 발전 공헌에 대한 훈장을 줄 수 있다면 시리우스에게 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짝별 B의 정체가 뭐냐고? 바로 ‘백색왜성’이다. 중간 이하의 질량을 지닌 별은 수소 핵융합 반응을 하다가, 핵융합을 거의 마쳐갈 때쯤 적색거성으로 변한다. 별의 바깥 대기를 이루는 물질은 행성상 성운을 형성하며 방출되고, 결국 10만 도 이상의 뜨거운 중심핵만 남게 된다. 이러니 어두운 밝기에 비해 온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뜨거운 핵이 지구 크기로 압축된 백색왜성이 바로 짝별 B이다. 믿겨지지않는 백색왜성의 엄청난 밀도에 대한 설명도 1920년대 ‘양자역학’이 탄생하면서 토대가 마련되었다.
시리우스의 짝별 B를 발견하기부터 거성으로 커졌던 별의 핵이 지구 크기로 압축된다는 것을 설명할 이론이 탄생하기까지, 시리우스는 오랜 시간 동안 천문학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문학은 분광학, 천체물리학, 별의 진화 등의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백색왜성과 쌍성계를 이루는 시리우스는 천문학자에게 있어 관측할 가치가 높은 별이다. 이런 시리우스가 태양계에서 5번째로 가까운 별로 때마침 우리 가까이에 마련되어있던 덕에 짝별 B를 발견하고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감사한 별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시리우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천문학의 진보를 위해 마련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밤은 시리우스에게 조금 더 반가운 인사를 건네 보자. 푸른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담아, 그리고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감사도 함께 담아서 말이다. 이제 내게 시리우스는 행운과 감사의 별이다. 당신에게도 늘 겨울밤하늘에서 빛나는 시리우스가 특별한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