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이전의 우주
우주는 전생에 뭐였을까?
우리의 전생은 최면술사를 통해 재미로 알아볼 수 있다. 우주의 전생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을까? <출처 : Pixabay>우주는 전생에 뭐였을까?
한창 전생체험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호기심에 최면 술사를 한번 찾아가 전생에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최면에 빠져 꿈을 꾸기 시작한다.
“경복궁이 보이고, 신하들이 제게 머리를 숙이고 있어요.”
“고양이가 저를 잡으러 쫓아와요. 도망치고 있어요.”
어느 날 우리 우주가 최면 술사를 찾아갔다. 저는 태어나기 전에 뭐였나요? 확실히 조선시대의 왕이나 도망이나 다니던 쥐는 아니었을 것이다. 빅뱅으로부터 태어났던 우주, 이 녀석은 태어나기 전에 어떤 모습으로 죽었을까?
빅뱅이론이란?
오늘날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탄생했다는 단순한 사실은 과학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알 정도로 보편적인 지식이 되었다.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 법칙을 바탕으로 어제로, 그제로, 저번 주로, 저번 달로… 우주를 과거로 끊임없이 되감아본다. 그러면 마침내 아주 작은 한 점이 될 것이라는 옛 과학자들의 생각이 현대에 이르러서 많은 관측 증거를 통해 증명되었고 ‘표준 우주론’으로 정립되었다. 천문학자들이 열심히 관측, 분석하여 정립한 ‘빅뱅 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빅뱅이 시작되고 난 후 지금까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되어갈지 예측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전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왜일까?
우주배경복사. 빅뱅 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이를 비롯한 여러 증거들 덕분에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 : NASA>아직은 완벽하지 못한 미숙한 빅뱅이론, 특이점 문제
빅뱅이론은 부피가 0이고 밀도는 무한대인 한 점에서의 폭발로부터 우주가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이 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정의하는데, 이곳에서의 상태는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없다. 시공간의 물리적 특질을 기술하는 보편적인 이론은 ‘일반 상대성이론’인데, 이 일반 상대성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다. 바로 매우 강한 중력장에서는 시공간의 곡률이 무한히 크기 때문에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다루는 학문은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을 접목한 ‘양자 중력 이론’인데,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한 이상적인 이론이다. 때문에 특이점 이전이나 직후에 대해서는 특별히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빅뱅이론’은 거의 정설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하고 역설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특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이 미지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까닭도 이 문제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특이점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물리학자들의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빅뱅 이전 혹은 직후의 우주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상대성이론을 부정하는 일이었고, 상대성이론에 대한 부정은 곧 인류가 자연에 대해 지금까지 이해를 시도한 모든 물리법칙에 대한 부정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특이점 문제를 해결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호킹-허틀모델, 루프 양자 중력 이론 등이 그것인데, 하나씩 살펴보며 ‘빅뱅 이전의 우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자.
호킹-허틀 모형
호킹과 허틀은 허수 시간에 대한 개념을 도입하여 특이점 문제를 해결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빅뱅 시점의 최초엔 양자 요동으로 인해서 시간과 공간의 차원이 똑같은 성질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빅뱅 직후는 현재 우리의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의 개념으로 이해해선 안 되며, 시간이라는 특성이 제거된 유클리드 4차원 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플랑크 시간이 지난 후에 공간의 한 차원이 떨어져 나와 지금의 시간 차원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시간 차원이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의 ‘이전’이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이 이론 또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빅뱅 이전의 우주’에 대해 묻는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엔 충분한 것 같다.
호킹-허틀의 모형. 플랑크 시간 이전에 시공간이 ‘반올림’되어 4차원을 이루므로 과거는 유한하지만 시작점은 없다고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에서 시간 변수에 대한 허수 도입을 통해 특이점을 없애는 것이 가능했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
루프 양자 중력 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고전적 연속 구조를 양자화 시킨다. 이 이론에서는 우주가 한 방향성을 갖고 수축 또는 팽창을 하여 끝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순환운동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특이점이란 수축과 팽창 순환의 터닝 포인트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불연속적인 일종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이 고리가 계속 모이고 시공간 에너지의 저장량이 일정량 이상을 초과하게 되면, 어느 순간 고리들은 시공간 에너지를 반대로 튕겨낸다. 그렇게 반대로 튕겨낸 시공간 에너지는 또 다른 빅뱅을 만들어 낸다. 과학자들은 이 수축과 팽창 일련의 과정을 ‘빅바운스(BigBounce)’ 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해서 루프 양자 중력이론은 특이점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루프 양자 중력이론이 맞는다는 가정을 하게 되면, 우리 우주의 탄생(빅뱅) 이전엔 또 다른 우주가 존재했고, 그 또 다른 우주의 존재 이전엔 다른 우주가 존재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우주와 같은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또 다른 쌍둥이 우주 말이다. 하지만 이전의 우주에 대한 정보를 우리 우주에서 관측할 방법은 전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을 ‘우주 기억 상실증’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상상력에 너무 의존한 이론이 아닐까 하고 미심쩍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이론을 뒷받침할만한 직․간접적인 관측상 증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지적과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이 아예 안 될 이유는 없다. 수학적으로 모순되는 것도 아니며, 틀렸다는 관측 증거 또한 없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어느 정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근거 있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빅 바운스. 언젠가 우주의 모든 물질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한 점으로 뭉쳐져, 태초 빅뱅이 일어났던 특이점과 같은 형태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출처 : NASA>물리법칙의 한계, 해답은 신의 영역
두 이론 모두 지혜롭게 특이점 문제를 극복했지만, 이렇다 할 명쾌한 대답은 신만이 내려줄 수 있지 않나 싶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빅뱅 이전의 우주에 대해 묻는 질문엔 ‘현재로썬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답이다. 만약 특이점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빅뱅 이후 플랑크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플랑크 시간이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말하는 △E△t ≥ ħ 의 식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원리에 따르면 이 시간 내에 벌어지는 일은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없다. 적어도 인간의 관측 능력으로는 말이다. 빅뱅 직후의 플랑크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도 알 길이 없는데 그 이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큰 의미가 있을까? 5+5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5*2를 묻는 격이다. 비유를 하자면, 내 이름도 모르는데 전생에 나는 무슨 이름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주의 기원을 찾고자 하여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모두 ‘그럴싸한 가설’을 내놓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니까….
관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하지만 그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해도 인류는 멸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너무도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