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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텅 May 05. 2020

[계같은 도전](3)유식하지 않을 용기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데 그걸 왜 모르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모르겠다

하노이에서 계같은 백수생활 하고 있습니다.
어감이 좀 그렇기는 한데 그 어감이 맞습니다. 정말 계같아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진짜 계처럼, 두고보면
언젠가 한번 큰거 터질 것 같기도 해요.
곗돈 모으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계가튼 백수생활을 공유해볼게요.


[세번째 도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기]


베트남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 두 가지가 있다.


khong hieu 이해할 수 없어요 / khong biet 몰라요


현지인이 내게 길을 물어볼 때,

매장 직원이 나를 응대할 때,

그랩 기사가 내게 무언가 말을 할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나는 저 두 문장을 외친다.


다만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우리 가족은 내가 베트남에서 어학당도 다니고

언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됐을 땐

‘아직 배우는 중’ 이란 변명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런 변명을 하기엔 오랜 시간이 흘러서

최대한 말을 아낄 뿐이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저 두 문장만큼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게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마스크 없이

공공장소를 활보하는 것처럼.


저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아닌 강박도 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 할 때를 놓치고

밤새도록 끙끙 앓으며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걸 아는척했다가 괜히 일만

더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처음부터 모르겠다고 말한 뒤

나름의 답변을 찾았더라면 될 문제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엔 나 자신도 모르는 게 뭔지,

모르는 걸 왜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아는 척을 한 뒤 적당히 뭉개버릴 수 있는 경우도 많고

모르는 걸 재차 물어본다면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주제로 넘겨 버리면 그만이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정리해서 다시 알려주겠다고 답하면 된다.

그리고 돌아서서 부랴부랴 대충

비스무리한 정보를 취득하면 된다.


그렇게 꽤 유연하게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며

많은 상황을 잘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돌아보니,

내가 모르는 걸 알면서도 대충 넘어간 사람과

내가 모르는 걸 알기에 재차 물어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내가 발가벗은 임금님이었다는 걸

정확히 인지하게 된 건 하노이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뭔가를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하는 게 맘 편하다.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시장 상인과 흥정을 할 때뿐이다.


근데 그마저도 결국 티가 나기 마련이라

흥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이라는 입장을

구구절절 호소하는 방법뿐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간에 힘 빡주고, 눈에 핏대 올려가며

아는 척해봐야 득되는 건 별로 없었다.


얻을 수 있는 건 내 알량한 자존심과

수박 겉핥기식의 습자지 같은 지식뿐이다.


되려 모른다고 말할 때

타인의 호의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의 호의와 도움을 받아

감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가서 모른다고 하면

눈탱이라도 맞을까봐 걱정했는데,


어차피 아는 척해도 눈탱이 칠 사람은 다 친다.

원데이, 투데이 외지인 상대하는 분들도 아니다.
무지함은 미간에 주름잡는다고 가릴 수 없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도전인

내 삶이 애처롭기는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부끄러움은 안다.

모르는 게 부끄러우면 공부하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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