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데 그걸 왜 모르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모르겠다
하노이에서 계같은 백수생활 하고 있습니다.
어감이 좀 그렇기는 한데 그 어감이 맞습니다. 정말 계같아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진짜 계처럼, 두고보면
언젠가 한번 큰거 터질 것 같기도 해요.
곗돈 모으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계가튼 백수생활을 공유해볼게요.
[세번째 도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기]
베트남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 두 가지가 있다.
khong hieu 이해할 수 없어요 / khong biet 몰라요
현지인이 내게 길을 물어볼 때,
매장 직원이 나를 응대할 때,
그랩 기사가 내게 무언가 말을 할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나는 저 두 문장을 외친다.
다만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우리 가족은 내가 베트남에서 어학당도 다니고
언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됐을 땐
‘아직 배우는 중’ 이란 변명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런 변명을 하기엔 오랜 시간이 흘러서
최대한 말을 아낄 뿐이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저 두 문장만큼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게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마스크 없이
공공장소를 활보하는 것처럼.
저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아닌 강박도 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 할 때를 놓치고
밤새도록 끙끙 앓으며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걸 아는척했다가 괜히 일만
더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처음부터 모르겠다고 말한 뒤
나름의 답변을 찾았더라면 될 문제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엔 나 자신도 모르는 게 뭔지,
모르는 걸 왜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아는 척을 한 뒤 적당히 뭉개버릴 수 있는 경우도 많고
모르는 걸 재차 물어본다면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주제로 넘겨 버리면 그만이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정리해서 다시 알려주겠다고 답하면 된다.
그리고 돌아서서 부랴부랴 대충
비스무리한 정보를 취득하면 된다.
그렇게 꽤 유연하게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며
많은 상황을 잘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돌아보니,
내가 모르는 걸 알면서도 대충 넘어간 사람과
내가 모르는 걸 알기에 재차 물어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내가 발가벗은 임금님이었다는 걸
정확히 인지하게 된 건 하노이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뭔가를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하는 게 맘 편하다.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시장 상인과 흥정을 할 때뿐이다.
근데 그마저도 결국 티가 나기 마련이라
흥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이라는 입장을
구구절절 호소하는 방법뿐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간에 힘 빡주고, 눈에 핏대 올려가며
아는 척해봐야 득되는 건 별로 없었다.
얻을 수 있는 건 내 알량한 자존심과
수박 겉핥기식의 습자지 같은 지식뿐이다.
되려 모른다고 말할 때
타인의 호의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의 호의와 도움을 받아
감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가서 모른다고 하면
눈탱이라도 맞을까봐 걱정했는데,
어차피 아는 척해도 눈탱이 칠 사람은 다 친다.
원데이, 투데이 외지인 상대하는 분들도 아니다.
무지함은 미간에 주름잡는다고 가릴 수 없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도전인
내 삶이 애처롭기는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부끄러움은 안다.
모르는 게 부끄러우면 공부하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