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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텅 May 31. 2020

[계같은 도전](4)억울해도 억울해하지 않기

억울해도 억울해하지 않으면 억울할 일도 없는 듯?

하노이에서 계같은 백수생활 하고 있습니다.
어감이 좀 그렇기는 한데 그 어감이 맞습니다. 정말 계같아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진짜 계처럼, 두고보면 
언젠가 한번 큰거 터질 것 같기도 해요.
곗돈 모으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계가튼 백수생활을 공유해볼게요.


[네번째 도전, 억울해도 억울해하지 않기]



내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는 중국에서 베스파를 오마주한 전기 오토바이다. 그러니깐 베스파 OEM, 병행수입같은건데 사람들은 이걸 짭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기오토바이는 면허 없이도 탈 수 있는데 속도도 60km까지 밟을 수 있어서 일반 오토바이 대비 딱히 불편함을 못 느낀다. 기름값도 안 들어서 좋다.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당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건 정차 중에 뒤에서 받았다. 왜 사고가 났는지 설명하기 위해선 하노이의 복잡한 도로상황을 어느 정도 설명해야 한다. 오토바이가 일상이 된 하노이는 최근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를 운전하는 대부분이 오토바이처럼 운전을 하니 차선이고, 깜빡이고 뭐고 없다. 심지어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후진을 하는 경우도 다수다.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그랩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지나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4차선 한복판에서 후진을 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냥 경적을 울려댈 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한국도 이러한 베트남의 선진문물이 도입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오토바이 사고가 난 날도 그랬다. 좁은 골목길에서 정차중이던 차가 갑자기 후진을 했다. 내 앞에 오토바이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고, 나도 급정거를 했다. 마스크 뒷편으로 쌍욕을 막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오던 오토바이가 냅다 내 뒷 번호판을 갈겼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기에 한국이었다면 놀란 마음을 추스리며 머릿속에 보험금을 계산하며 흡족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냥 내려서 OK?를 외치고, 그 사람도 날 보며 OK! 하면 끝이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합의금이라도 받기 위해 머리 아프게 번역기를 돌리는 일이 더 골치 아프다. 심지어 한국과 달리 이곳은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인명피해가 없으면 서로 Khong sao(괜찮아) 하는 분위기다. 예전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부딪히며 자동차 범퍼가 주저 앉았는데 한참 서로 살펴보더니 가던 길 가는 것도 몇 번 봤다. 그러니깐 내가 당한 사고는 파리에 물린 정도의 사고다. 

한국이었으면 어땠을 지 생각해봤는데, 아마 범퍼가 무너진 차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현장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그 쿨함에 얼어 붙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혜자로운 차주라고 화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동차 범퍼가 깨져도 지나치는 운전자가 있다?!"같은 제목이 아니었을까. 반대로 이곳에서 차주가 내려 화를 내며 운전자를 몰아붙였다면 또 화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인성터진 자동차 운전자 갑질 논란". 뭐,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난 모른다. 이곳에서 난 화제가 화제인 줄 모르는, 베트남어를 모르는 한국인이다. 


말 못하는 한국인은 슬프다. 오늘은 엘레베이터 벨튀를 하는 아랫집 녀석과 실갱이를 했다. 문이 닫혔다 싶으면 열림 버튼 누르고 튀는 짓거리를 여러 차례 반복하길래 ‘뒤졌다’ 를 외치며 뛰쳐 나갔다.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저 어린 친구 앞에서 만세삼창하듯 “야!! 야!!! 야!!!!” 세 번 외치고 들어왔다. 머릿속으로는 너 어디 사니, 부모님 어디 계시니 등등 수많은 한국어가 지나갔는데 포효하는 것 외엔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이런 사고들을 겪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차라리 말 못하는 한국인이 나은 것 같다.  


말이 통하면 싸울 일도 많고, 억울할 일도 많다. 그런데 그런 과정은 감정소모가 너무 심하고,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모른다. 교통사고 합의금을 받으려고 했는데, 주먹싸움이 될 수도 있고 결국 경찰서까지 가야할 수도 있다. 사실 누구도 피해받지 않았는데,  조금의 상처에도 큰 피해자인것처럼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그게 당연했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 못하고 가만히 있어도 생각보다 내가 얻는 피해는 별로 없다. 오토바이는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엘리베이터도 순조롭게 목적지에 간다. 

억울해도 억울해하지 않으면 억울할 일도 없다. 


정 분을 못이기겠으면 그냥 한국어로 나지막히 욕하면 된다. 아무도 못알아듣고, 들어도 관심도 없다. 나도 베트남어 욕은 알아듣지 못하니깐 서로 그렇게 욕을 외치고 갈 길 가면 된다. 이렇게만 살면 세상에 화날 일이 없겠다 싶은데, 그저 이런 일이 자주 있지만 않길 바란다. 


아, 근데 뒤에서 받은 건 100% 상대방 과실 아닌가. 보험금만 받았더라면………이란 찐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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