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랜드를 입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나를 입었던 그 때
하노이에서 계같은 백수생활 하고 있습니다.
어감이 좀 그렇기는 한데 그 어감이 맞습니다. 정말 계같아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진짜 계처럼, 두고보면
언젠가 한번 큰거 터질 것 같기도 해요.
곗돈 모으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계가튼 백수생활을 공유해볼게요.
[다섯번째 도전, 싸구려 옷만 사도 괜찮아]
고등학교 때, 그러니깐 겉멋에 취해버렸던 그때 동대문에서 ZOOYORK 후드를 산 적이 있다. 당시 동대문이란 ‘손님 맞을래요’라는 분위기가 만연했던터라 웬만한 깡이 없으면, 그러니깐 나같은 찐따는 사장놈의 패기에 짓눌려 사기 싫은 옷도 사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고등학생이니깐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친구와 동대문을 찾았다.
두려움에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침착한 척 매장을 둘러보다가 주욕 후드를 발견했다. 마음엔 드는데 2XL 사이즈였다. 참고로 당시 나는 M 사이즈 정도가 넉넉한, 젓가락같은 몸매였다. 그런데 샀다. 친구가 그거 타블로가 입은거라고 바람을 넣었고, 그 말을 들은 사장놈이 말했다.
“손님, 이 옷은 원래 크게 입어요”
크게 입는다는 것과 맞지 않는다는 건 엄연히 다르다. 예전에 재수학원을 다닐 때 농구선수 출신의, 키가 2미터가 넘는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내 주욕후드를 빌려 입으며 “이거 내 사이즈네?”라며 흡족해 한 적이 있다. 난 170cm인데.
그런데도 말도 안되는 사이즈를 당시 20만원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기뻤다. 물론 호구가 호구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옷을 본 엄마가 몹시 화를 내며 사장놈을 욕했다. 그 옷을 산 나보단, 그 옷을 판 사장놈이 더 나쁘다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큰 옷이었다. 얼른 가서 환불하고 오라는 엄마에게 “엄마가 뭘 알아!! 요즘 애들 다 이렇게 옷 입어!!”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 엄마가 그렇게 말한 이후부터 그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자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동대문에서 산 옷을 환불받는 일은 상상도 해본 적 없다. 차라리 그 옷을 안 입는 편이 낫다. 그래도 이미 큰 돈을 지출한터라 학교에 당당하게 입고 갔고, 말도 안되는 사이즈라서 오히려 친구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보다 몸이 큰 친구들이 자꾸 옷을 빌려달라고 했고 부담없이 빌려줬다.
이 사건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하노이에서 생활하다보니 옷 욕심이 많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옷 욕심보다는 브랜드 욕심이 많이 사라졌다. 내가 어떤 행색을 하고 있더라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무슨 옷을 입어봐야 그들에게 난 그냥 외국인일뿐이다. 아예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다면 조금 다른 반응이겠지만, 한국에서 유명한 도메스틱 브랜드를 입어봐야 베트남 현지인에겐 그냥 옷이다.
그러다보니 옷을 사더라도 편안함이 최우선이다.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지 고민하는 과정은 생략된다.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라지만, 한국에서 내게 옷이란 보여지고 싶은 나를 표현하는 장치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내가 멋있어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브랜드를 소비한 것이지 그 브랜드의 가치와 기능에 대해서 고민한 적은 별로 없다. 내가 브랜드를 입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나를 입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보여질 지 고민하지 않으면 옷뿐만 아니라 음식, 음악, 책 등 거의 모든 일상에서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유명한 맛집을 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좋고, 요즘 유행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맛집을 다녀와서 주변 지인에게 ‘먹어봤지만 내 입맛은 아니었다’며 쿨한척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맛있으면 나만의 행복이고, 맛없으면 나만의 경험으로 남을 뿐이다.
이곳에선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많은 것들이 정말 내가 바란 것인지,
타인에게서 비롯된 욕망인지 구분하기가 쉬워진다.
베트남에서는 누구도 내게 요즘 유행을 경험해봤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주변에서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유행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도,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거나 열등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가끔 한국에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행인 건 지금 이 기분을 알기에 돌아갈 곳도 알고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게 뭔지 알게되면, 유행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진다. 불편함을 한 번 느끼면, 결국 편안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전에는 이 편안함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끊임없이 타인을 따라하며 불안했던 것 같다. 내가 진짜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꽤 자유로워진다.
인터스텔라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동대문을 찾은 고등학생의 나에게 책장 뒤에서 고함쳤을 것이다.
“야이 병신아, 그거 사지마 개호구니?! 와, 저 아줌마 진짜 양심 어딨음???!"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옷은 아직도 버리지 못했고, 내 방 옷장 어딘가에 있다. 여행가면 막 입고 다니기 좋은 20만원짜리 츄리닝이 돼 버렸다. 아, 고등학교 시절 나름의 플렉스였구나.